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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서의 기자회견
 일서의 기자회견
 
 1961년11월12일 오전 일본 수상 이케다와 박정희 의장의 정상회담이 끝나자 박정희 의장 일행은 아카사카에 있는 가즈오라는 일본요정으로 옮겼다. 기시 전 수상과 이시이 한일간담회장이 주최한 오찬에 참석했 다. 박정희 의장의 일본어를 들은 일본 지도자들은 '지방출신 일본 국회의원들보다 훨씬 유창한 일본어다'라고 말했다고 한다. 박정희는 일 본어만 유창할 뿐 아니라 일본역사에도 밝았다.
 
 박정희는 예화를 들어 설명할 때도 일본 역사의 일화를 자주 인용하 곤 했다. 김종필도 마찬가지였다. 그의 일본어와 일본역사에 대한 해박 한 지식엔 일본인들도 감탄하곤 했다. 김종필 정보부장이 박정희 - 이 케다 정상회담을 주선하기 위해서 이케다 수상을 만났을 때 이케다는 이렇게 묻더라고 한다.
 
 '대단히 실례지만 지금 연세가 몇이십니까?' '서른여섯입니다' '명치유신 때의 지사를 보는 것 같습니다. 아주 감복했습니다'.
 
 박정희도 방일중 일본 지도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5·16을 명치유신 에 비교하면서 주체세력들이 그때의 지사들처럼 국가개조에 생명을 걸 었다고 역설하여 깊은 인상을 남겼다고 전한다. 박 의장의 방일은 일본 자민당 정권의 실력자들과 인간적인 신뢰를 쌓는 데 성공했다는 점이 가장큰 성과였다. 박정희 정권 18년간 계속된 한일협력체제의 한 요인 은 양국 지도자들 사이의 문화적, 정서적 유대감이었다.
 
 박 의장은 오찬이 끝나자 곧장 주일대표부로 갔다. 대표부 직원들과 재일동포대표들 이 모인 자리에서 박정희는 훈시를 했다. 그는 오전에 있었던 기시 수 상과의 정상회담에 언급하면서 '일본지도자들이 한일회담을 타결하기 위해서 성의와 노력을 다하겠다고 확약한 만큼 우리도 호양의 정신으로 인내심을 발휘하여 회담에 임하겠다. 그러나 낙관도 비관도 금물이다' 라고했다.
 
 영빈관으로 돌아온 박정희 의장은 아래층 로비에서 1백30여명의 기 자들이 참석한 가운데 기자회견을 가졌다. 당시 일본에 상주하던 조선 일보 특파원 김윤환(현 한나라당 의원), 동아일보 이만섭(전 국회의장), 동양통신 한종우(전 코리아 헤랄드 사장, 현 성곡언론재단 이사장)기자 도 참석했다. 첫 질문을 던진 것은 이만섭 기자였다. 그는 5·16 혁명 직후 윤보선대통령의 '조기 민정 이양 희망' 발언을 보도했다가 구속되 어 한 달만에 풀려난 뒤 도쿄 특파원으로 와 있었다. 이만섭은 박정희 의장을 도와주기 위해서 일부러 선수를 쳤다고 한다.
 
 '외국 기자들이 대부분인데 그래도 한국 기자가 질문을 하면 박 의 장이 용기를 얻을 것이라 생각했죠. 외신기자들이 궁금해 하는 것을 박 의장이 자연스럽게 설명할 수 있도록 질문 내용을 생각하여 던졌습니 다. 박 의장은 제 의도를 잘 이해못했는지 표정이 썩 좋지 않았습니다. 답변도 제가 기대했던 것과는 달랐고요. 아무래도 군인이라 그렇구나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이만섭 기자는 세 가지 질문을 했다.
 
 '첫째, 대일청구권에 관하여 이케다 수상이 구체적이 숫자를 제시했 는가. 없었다면 의장을 초청해놓고 제시하지 않은 이유는 무엇인가. 둘 째, 한국정부는 지금까지 대일청구권 문제와 한국에 대한 일본의 경제 협력문제를 분리했는데 그 정책엔 변동이 없는가. 셋째, 금번과 같은 회담이 장래에 도쿄나 서울에서 다시 있을 것인가'.
 
 박정희 의장은 짤막하게 대답했다.
 
 '첫째 질문에 대하여, 대일청구권에 관해서는 구체적인 토의가 없었 다. 그 이유는 아직 실무자 회의에서 진전이 없었으므로 정상회담에서 구체적인 숫자를 제시하지 않는 것이 서로 좋다고 느꼈다. 둘째 질문에 대하여, 변함 없다. 셋째 질문에 대하여, 현 단계에서는 말할 수 없다'.
 
 박정희 의장은 다른 질문에 답변하는 가운데 '일본이 우리의 대일청 구권에 성의를 보인다면 우리는 평화선 문제에 신축성을 보이겠다'는 요지의 발언을 했다. 한일회담에서 주고받을 것에 대하여 큰 줄기를 정 리해준 말이었다. 박 의장은 한일회담의 연내타결 가능성을 묻는 질문 에 대해서 '앞으로 회담의 진행상황을 보아야 말할 수 있다'고 답했다.
 
 박 의장은 또 '이케다 수상과의 단독회담에선 한일문제, 아시아 문 제, 세계정세에 대해서 의견을 교환했는데 대부분의 문제에서 수상과 의견의 일치를 보았다'고 하면서 '대일청구권은 일본에 대한 전쟁 배상 요구가 아니다'고 했다. 박 의장은 한 서양 기자가 경제원조를 받아들 이는 한국의 자세에 대해서 질문하자 세일즈맨처럼 열심히 대답했다.
 
 '한국은 장기 경제개발계획을 이미 만들었고 외국원조와 차관을 효 율적으로 받아 쓸 수 있는 태세를 갖추고 있습니다. 국내 자원을 최대 한도로 이용하여 경제개발 계획을 실천할 수 있도록 준비를 해두었습니 다. 이것들이 우리가 원조와 차관을 요구할 수 있는 조건이라고 생각합 니다'.
 
 UPI의 찰스 스미스 기자가 '국내 정세가 안정되었으니 계엄령을 해 제할 의도는 없는가'라고 물었다.
 
 '경찰이 군대의 힘을 빌지 않고 치안을 유지할 수 있을 때 경비계엄 을 해제할 것입니다'.
 
 약40분간의 기자회견에서 박정희는 짧게 군더더기 없는 답변을 했 다. 이날 저녁 박정희는 정일영 한일회담 대표에게 오후의 기자회견을 거론하면서 자신에게 맨 처음 질문한 기자가 누구냐고 묻더니 '그 놈들, 고국에서도 말썽이더니 여기서도 속을 썩이는구먼'이라고 불평하더란 것이다.
 
 오후 4시40분 영빈관으로 영친왕(고종의 셋째 아들) 이은의 일본 황 족출신 부인 방자여사가 찾아와 박 의장을 만났다. 이은은 뇌혈전증에 걸려 병상에 누워 있었다. 방자 여사와 박 의장의 만남을 주선한 것은 당시 서울신문 도쿄 특파원이던 원로 언론인 김을한이었다. (계속).
 
 (조갑제출판국부국장기자) (이동욱월간조선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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