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일 정상회담
오전 10시 정각, 이케다수상 집무실에는 양측 실무 대표자들과 박 정희 의장 및 이케다 수상이 앉았다. 한국측 대표로는 유양수 최고회 의 외무-국방위원장, 최덕신외무장관, 배의환 한일회담 수석대표, 정 일영대표, 원충연공보실장, 최영택참사관이 배석했고 일본측은 고사카 외상, 이세키 아주국장, 스기 수석대표와 마에다 동북아과장이 배 석했다. 일본측 통역으로 나선 마에다 과장(뒤에 주한대사 역임)은 인천에서 태어나 소학교까지 한국에서 마쳤지만 한국말이 능숙하지못 해 즉석에서 정일영 대표가 양측 통역을 전담하게 됐다.
양측 실무진들이 마주앉아 몇마디 인사말을 한 직후 이케다 수상 은 박의장에게 자리를 옮기자고 제안했다. 박의장이 좋다고 하자 두 사람은 정일영 대표를 통역으로 데리고 옆 방으로 옮겼다. 이날 한일 회담은 실질적으로 양 정상간의 단독회담으로 진행되었다.
이케다 수상은 '정말 잘 오셨습니다. 참 기쁩니다. 이렇게 우리 가 만나야 되지 않겠습니까'라고 서두를 뗐다. 박정희는 '저도 반갑 습니다. 미국대통령의 초청으로 가는 길인데 스기 대표가 수상각하의 초청장을 들고 왔길래 이렇게 들렀습니다. 초청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라고 응답하면서 '지금 밖에서는 실무회담이 진행되고 있는데, 다른 것은 접어 두고 경제협력을 위해 우리가 일본측에 보태 달라고 하는 것이 아니란 점을 확실히 하고자 합니다. 우리는 일본측에게 청구할 것이 당연히 있기 때문입니다'라고 말했다.
이케다 수상은 시종일관 '알겠습니다' '그렇겠군요' '아, 그렇습 니까' '물론 그렇게 해야 겠지요'라는 식의 대답을 하면서 주로 듣는 입장을 취했다. 그러면서 어업관계 등 현안에 대한 한국측 입장을 묻 는 식으로 회담을 이끌어 갔다.
박의장은 이케다 수상이 하는 말을 소상하게 알아들을 수 있어 정일영 대표가 통역하는 동안 대답할 시간을 충분히 벌고 있었다. 박 정희는 자신의 답변 문장을 미리 만들어 두었다가 정대표에게 '…이 렇게 답변할까?'라든가 '…이런 표현이 맞나?'라고 의논까지 해가며 이케다 수상에게 정확한 문장이 전달되도록 했다. 정 대표가 이케다 수상에게 일본말로 통역하는 도중에 박의장은 잘못 선택된 어휘를 찾 아 '그건 이렇게 표현하는 게 좋지 않겠나'하면서 고쳐 주기도 했다.
통역에 임했던 정일영(현 백상재단 이사장)의 회고.
'박의장은 엄청난 책임감을 느끼고 있는 듯했습니다. 처음부터 아 주 점잖게 이야기를 시작했습니다. 일부러 과거사를 들추는 일도 없 었습니다. 말투는 조용 조용했습니다.그러면서도 어휘 선택에 있어서 는 아주 조심스러웠고, 주장할 대목에서는 허식 없이 할 말을 단도직 입적으로 표현했습니다. 일본말을 아주 잘 알고있어 통역이 필요없는 셈이었던 박 의장은 제가 조금 어색한 단어를 쓰면 그때마다 바로 잡 아주곤 해서 저로서는 진땀이 흘렀습니다. 정신없이 통역하다 보니 무슨 말이 오갔는지도 기억에 남지 않을 정도였습니다.'.
두 사람간의 회담은 약 1시간 20분간 계속됐다. 나중에 박정희 의 장은 정일영대표에게 '마, 이 정도로 하지. 좋은 얘기였고, 유익했다 고 하지'라며 끝말을 해주었다.
방에서 나오자 양측 실무진들이 테이블에서 마주 앉아 지루하게 기다리고 있다가 반가운 듯 일어섰다. 정일영 대표가 '여기서는 무슨 얘기를 하며 기다렸소?'라고 묻자 여기저기서 답변이 쏟아져 나왔다.
'오야지(대장)들이 다 말하는데 우리가 할 말이 있어야지요.'.
'술을 마실 수도 없고,이 사람들이 커피만 주니 묵묵히 마시고 앉 아 있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일본 국장들도 다 나와 있고, 위에서 무슨 결론이 날지 몰라 모 두가 초조하게 기다렸습니다.'.
이 날 회담내용은 그 이틀뒤인 11월14일 미국에 도착한 박의장이 미 국무장관 딘 러스크와의 요담에서 박의장의 전속부관 한상국 중령 의 통역으로 전달됐다. 박정희의장이 밝힌 이케다수상과의 회담 내용 은 미국에서 비밀외교문서로 분류되어 오다가 1996년에 공개됐다.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한-일 관계 정상화는 극동의 평화와 안보를 위하여 절실하게 필 요하다는 것이 나와 정부 간부들의 일치된 의견이지만, 한국 국민 여 론도 그렇다고는 말할 수 없다. 국민 감정을 만족시키기 위해서는 양 국 관계의 정상화에 앞서서 몇몇 현안문제가 해결돼야 한다. 이 점에 관하여 이케다 수상과 비밀 단독회담에서 솔직한 의견교환을 했다.
양국간에 외교관계를 하루 빨리 정상화해야 한다는 데 나와 이케 다 수상은 의견을 같이 했지만, 이를 위해서는 해결하여야 할 몇가지 문제가 남아있다. 실무자 수준에서 행정 기술적 세부문제(details)가 다림질돼야만 한다(had to be ironed out). 그러한 연후에 한국과 일 본간의 경제적 관계는 고려해볼 수 있을 것이다. 사실 상당수의 한국 민은 특히, 과거의 역사를 보아, 관계가 정상화되었을 때 있을 수 있 는 일본의 경제적 침략에 대하여 우려를 표명하고 있다.(한국)정부로 서는 일본과의 관계 정상화에 대하여 신중을 다하고 있다.>.
정일영 대표는 이듬해인 1962년에는 주불 공사로 나갔다가 1963년 12월 제5대 대통령선거에서 당선된 박정희 대통령에 의해 외무부차관 으로 발령을 받았다. 1963년 12월 30일 김포공항에 도착한 정일영 차 관은 청와대 대통령 집무실로 직행했다. 정 차관이 인사차 방에 들어 서는 동안에도 박정희 대통령은 책상위에 펼쳐진 지도에서 눈을 떼지 못하고 있었다. 한 손에는 컴파스가 들려 있었다. 머슥해진 정차관이 인기척을 내자 박대통령은 '어, 왔나?'하면서 다시 지도를 보며 컴파 스로 이곳 저곳을 재고 있었다. 가만 보니 제주도와 남해안 다도해가 수록된 해도였다. 박대통령은 지도에서 눈을 떼지 않은 채 이렇게 말 했다.
'정 차관. 이거 말이야. 우리 전관수역을 제주도 서쪽에서 동쪽으 로 127도13분까지만 하면 황금 어장이 우리 수역안으로 포함되는데… 우리 어민들에게 먹고 살게 해줘야 하는데 말이야…요놈을 어떻게 할 수 없나?'.
'예.'.
'이거 될까?'.
'한 번 해 보겠습니다.'.
'그래. 한 번 해 봐.'.
'각하, 그런데 왜 제가 할 일을 직접 하십니까?'.
박대통령이 갑자기 눈을 부라리며 이렇게 말했다.
'누가 할라 케야지. 이거 누가 책임지고 할라고 해?' <계속>
(조갑제출판국부국장기자) (이동욱월간조선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