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조선  |  조선일보  |  독립신문  |  미래한국  |  올인코리아  |  코나스넷  |  라이트뉴스  |  리버티헤럴드  |  뉴데일리  |  뉴스파인더
    
   


기사 확대  기사 축소  

박정희의 기도
 박정희의 기도
 
 일본에 도착한 첫날 밤 박정희의장 일행은 수상 관저에서 이케다 수 상이 주최한 만찬에 참석한 뒤 밤 9시15분 경 영빈관으로 다시 돌아왔 다. 박의장과 회담대표단들은 약 12시간 후 열리게 될 정상회담에 대비 하기 위해 영빈관 1층 회의실에 모였다. 대책회의를 주도한 배의환수석 대표는 내일 정상회담에서 거론될 주요 의제들로
 ①국교 정상화문제
 ② 재산 및 청구권 문제
 ③재일교포 처우 문제
 ④어업 관계
 ⑤문화재 반환 문제 등
 다섯 가지를 요약하면서 브리핑식으로 회담 전략을 설명했다.
 
 '다섯 가지 의제 중에서 국교 정상화 문제는 최종적인 사안이라 나 중에 거론될 것이고, 내일 등장할 의제는 나머지 네 가지가 될 것입니 다. 우리가 중점적으로 거론할 의제는 '재산 및 청구권'입니다. 외교상 Property & Claims라고 표현하고 있지만 실상은 배상 청구권입니다. 기 술적으로 우리가 얼마나 많이 받아내어야 하는가가 우리들의 목표입니 다. 좀 더 욕심을 낸다면 구체적인 청구권 액수의 범위까지도 타협이 될지모르는 기회입니다.
 
 아마 지금 이 시각, 이케다 수상측도 자민당내 중진들과 청구권 범 위에 대한 모종의 협의를 하는 중일 것입니다. 일본측이 적극적으로 제 의하고 나올 것은 어업 관계가 될 것입니다. 자민당의 지지 기반은 어 민들이기 때문에 이케다 수상도 여기에 중점을 두고 회담을 진행하려 할 것입니다. 우리측은 평화선을 침범한 일본 어민들을 현재 부산에 수 용소를 만들어 가둬 놓고 있고, 일본쪽은 밀항한 우리 국민들을 가둬 놓고있으니 만일 어업관계로 대화가 극단화되면 일본 어민과 우리측 밀 항자들을 맞교환하자는 카드를 내면 될 것입니다.'.
 
 약 한 시간 뒤 대책회의가 끝났다. 자리에서 일어나던 박의장은 정 상회담에 우리측 통역으로 활동하게 될 정일영(72·현 백상재단 이사장) 대표를 보더니 '정교수, 나하고 잠깐 올라갑시다'라며 불렀다.
 
 정대표는 스위스 제네바대학에서 국제법을 전공한 뒤 자유당 시절부 터 한일회담에 참석해 일본측의 국제법적 주장에 대한 한국측 입장을 대변해 오곤 했다. 서울대학교 교수이기도 했던 정대표는 1961년초에도 한일회담 대표로 일본에서 활동중 5·16을 맞아 귀국했다. 군사정부가 한일회담 대표단을 다시 구성하게 되자 정일영 교수는 최고회의로 불려 나와 경과보고를 해야 했다.
 
 '그때 서른 다섯살이었던 저보다 열 살이나 많은 박정희 의장을 처 음 보게 되었습니다. 나같이 어린 학자를 단지 한일회담의 외교적 경험 이있다는 이유로 연단에 올려놓고 설명을 듣겠다는 것이었습니다. 한일 회담의 경과를 설명하다가 박의장쪽을 보니까 수첩을 꺼내 놓고 일일이 받아 적고 있더군요. '아, 이 분은 엄청난 책임감을 갖고 있구나'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일본 영빈관에서 정대표를 방으로 불러 들인 박정희 의장은 소파에 앉으면서 이렇게 말문을 열었다.
 
 '자, 내일이 회담인데 이거 어떻게 하노?' '각하, 하시고 싶은 말씀을 먼저 하시죠.' '이 사람들 돈 받아 우리나라 경제발전을 시켜야 하는데. 그런데 이 거 어떻게 말을 끄집어 내야 하지? 무턱대고 배상금 내 놓으라고 말을 할수도 없고, 저쪽에서는 당장 국교 정상화하자고 할 건데 말이야.'.
 
 '각하, 우리가 배상금 문제에 관해 구체적인 이유를 대면서 따지기 시작하면 나중에는 우리가 불리해집니다. 총독부가 발행한 국채도 남북 한으로 갈라져 있어 얼마나 갖고 있는지 우리 스스로가 모르고 있고, 예금액수도 마찬가지입니다. 증거 불충분으로 나중에는 우리가 주장하 는 액수에서 그만큼 깎이게 될 겁니다.'.
 
 '아, 그렇겠네.' '그러니 너무 구체적으로 말씀하지 마시고 개략적으로 하시면 될 것 같습니다. 당연히 받을 것은 받는다는 식으로 말하는 것이 좋을 것 같 습니다.'.
 
 '아, 그래. 그거 뭐, 우리가 당연히 받아야 할 것, 요구해야 할 것 이라고 말하면 되겠구만.'.
 
 박정희는 고개를 끄덕이며 안심하는 표정이었다.
 
 11월12일 일요일 아침 9시. 영빈관 일층 현관에는 한일회담 대표들 이 출발 준비를 마친 채 박정희 의장을 기다리고 있었다. 경호를 맡았 던 최영택 참사관이 2층으로 올라가 노크를 한 뒤 방으로 들어 섰다.말 쑥한 양복차림의 박의장은 의자에 앉아 무슨 생각에 잠겨 있다가 최 참 사관의 출현에 고개를 돌렸다.
 
 '출발 준비는 잘 돼 있나?' '예, 잘 돼 있습니다.' '수행할 사람들은?' '예, 아래 층 홀에 다 대기하고 있습니다.'.
 
 '얼마나 있다가 출발할 거지?' '지금부터 10분후에 출발하겠습니다.' '그래?'.
 
 박의장은 손목시계를 보더니 양복 상의 속주머니에서 반으로 접힌 메모지를 꺼내 펼쳤다. 최참사관이 보니 16절지 절반 크기의 종이에 세 로로 여덟 줄의 문구가 쓰여 있었다. 회담시 거론하게 될 주요 의제로 보였다. 박정희는 자신이 정리한 메모를 조용히 내려다 보더니 숙연한 자세로 최 참사관에게 말했다.
 
 '내, 회담 준비를 하는 데, 회담하기 전에 조용히 머리 속을 정리 좀 해야 겠어. 나 혼자 조용히 있어야 할 것 같은 데, 최군은 좀 나가 서 기다려 주게.'.
 
 '예, 알겠습니다.'.
 
 조용히 복도로 나온 최 참사관은 자신도 모르게 종교적인 엄숙한 분 위기에 휩싸이게 됐다고 회고한다.
 
 '그 날 아침 박의장의 모습은 전날 저에게 '조총련들이 뭐라고 떠드 는 거야'라고 물을 때와는 완전히 딴 판이었습니다. 마치 큰 일을 앞두 고 종교인이 기도를 하려는 듯한 자세였습니다. 아마도 저를 밖으로 내 보낸 뒤 기도를 했을 줄 압니다. 저는 지금도 그렇게 믿고 있습니다.'.
 
 9시20분에 현관으로 내려온 박의장은 일행과 함께 일본 수상 관저로 출발했다. 일본 경찰들이 사이렌을 울리며 사이카로 호위했다. 1961년 11월12일 한일회담이 시작된 이후 최초의 양국 정상회담이 열리는 순간 이었다. ( 계속 ).
 
 (조갑제출판국부국장기자)
 
 
기사목록  프린트하기 

조선일보 | 스포츠조선 | 주간조선 | 소년조선 | 여성조선 | NK조선 | IT조선 | 잡지DB

서울특별시 종로구 신문로1가 163 광화문 오피시아 1729호  |  대표자 : 조갑제  |  사업자등록번호 : 101-09-63091
상호 : 조갑제닷컴  |  개인정보관리 책임자 : 김동현  |  전화번호 : 02-722-9411~3  |  팩시밀리 : 02-722-9414 |
    개인정보취급방침

발행인 : 조갑제 | 편집인 : 조갑제 | 등록번호 : 서울아00945 | 등록일 : 2009/08/24 | 국민은행 360101-04-065553(예금주: 조갑제닷컴)
webmaster@chogabj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