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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카고 유학생들
 시카고 유학생들
 
 12일 오전 11시 40분 박정희의장 일행은 다시 노스 웨스트 여객기편으 로 앵커리지 공항을 떠났다. 시애틀 공항에 도착한 것은 오후 4시20분.우 리나라 전쟁고아들로 구성된 선명회합창단이 애국가를 부르면서 박정희를 맞았다. 공항건물 안에 마련된 간소한 리셉션장에는 유학중인 강문봉장군 도 나와 있었다. 이 자리에까지 따라온 미국 기자들 때문에 억지 인터뷰 를 하게 된 박정희 의장은 기분이 영 좋지 않았다.
 
 한 미국인 기자가 '군사정부에선 교통질서위반자들까지도 엄벌에 처하 고 있다는데 사실이냐?'고 물었다. 박정희는 못마땅한 표정을 지으면서도 모범답변을 했다.
 
 '지켜져야 하는 것이 규칙이다. 범칙자가 처벌되어야 하는 것은 어느 나라에서나 마찬가지이다. 교통규칙은 혁명 전에도 있었지만 지켜지지 않았다. 우리 정부는 이 규칙을 지켜지도록 만들고 있는 것일 뿐 중벌설은 거짓이다.'.
 
 오후 5시50분 노스 웨스트 여객기는 시애틀 공항을 출발, 이날 밤 11 시에 시카고 오헤어 공항에 도착했다. 미 제5공군 사령관, 시카고 시장대 리 이외에 정일권주미대사, 김재춘선발대장을 비롯한 백여명의 재미동포 들이 영접을 나왔다. 박정희 일행이 시카고 시내로 향해서 달릴 때 우리 교민들도 차를 몰고 차량행렬을 따랐다. 고속도로엔 비가 내려 미끄러웠 다.
 
 교민들이 탄 승용차 다섯 대가 연쇄 충돌사고를 일으켜 6명이 부상하 는 사고가 일어났다. 숙소인 드레이크 호텔에 도착하여 이 소식을 들은 박정희는 수행원을 병원으로 보내 위문케 했다.
 
 다음날 아침 드레이크 호텔에선 시카고에서 유학중인 학생들과 교민들 이 주최한 박정희 의장 환영 조찬회가 열렸다. 지금은 약15만 명의 교민 들이 살고 있는 시카고이지만 당시엔 한인회를 결성할 정도의 숫자도 되 지 않았다. 시카고 학생회(회장 김준엽)는 일부 미국 언론이 박정희 의장 의 방미에 대해서 비판적인 기사를 싣자 울분을 느끼고는 박의장에게 초 청장을 냈던 것이다. 시카고 학생회 총무는 노스 웨스턴 대학원 재료공학 과 1학년생 천성순이었다. 한국 과학기술원 원장을 거쳐 지금은 대전산업 대학교 총장으로 있는 천성순(63세)은 이렇게 회고했다.
 
 '우리 유학생들은 박정희 장군이 쿠데타로 집권했다는 데 대한 문제의 식을 별로 느끼지 않고 있었습니다. 조국이 오직 강하고 부자 나라가 되 어야 한다는 일념뿐이었습니다. 미국 텔레비전에 나오는 한국은 고아들이 손을 내미는 장면과 구호기관에 도움을 요청하는 장면 일색이었습니다.우 리는 또 인종차별을 무수히 당하면서 공부하고 있었습니다. 저도 길을 걷 다가 버스에 탄 백인학생이 내 얼굴에 침을 뱉는 모욕을 당한 적도 있었 습니다. 그래서 군사정권이 들어서서 과감한 개혁 작업을 하고 있다는 소 식을 듣고는 자랑스러웠습니다. 박 의장을 만나보니 추진력이 강해보이고 강직한 인상이 꼭 잘 사는 나라를 만들 분이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날 조찬 환영식에 참석한 박정희 의장은 대단히 감동했다고 한다.훈 시를 할 때도 미리 준비해간 연설문을 밀어버리고 즉석 연설을 했다.
 
 '우리는 두 번의 혁명을 치렀습니다. 환자에 비교하면 두 번 수술을 한 셈입니다. 4·19수술은 경과가 좋지 않아 5·16으로 재수술을 받은 것 입니다. 다행히 수술 결과가 양호하여 건강을 회복해가고 있습니다. 수백 년을 내려온 고질을 뿌리채 뽑아버리는 개혁을 단행한다는 것은 우리 혁 명세력의 과업일 뿐 아니라 민족의 과업입니다. 만약 이번 혁명이 실패하 면 다음에 올 것은 공산혁명밖에 없습니다. 케네디 대통령과 회담할 때 우리나라의 경제재건에 관해서 토의할 작정입니다. 경제혁명 없이는 민주 주의는 있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군인입니다. 정치는 모르지만 나라가 망하는 것은 좌시할 수가 없었습니다. 우리는 여러분들이 선진기 술과 학문을 습득하여 귀국한 후 국가재건에 공헌하리라고 확신합니다.'.
 
 학생회 총무 천성순은 박의장에게 의사봉을 선물로 전달했다. 천성순 에 따르면 '가난한 유학생들이라 돈을 적게 들이고 의미가 있는 선물을 생각하다가 박 의장이 국가개조를 하는 데 모든 결정을 이 의사봉으로 땅 땅 잘 처리하라는 뜻에서 의사봉을 마련했다'는 것이다. 천성순은 그 뒤 유타 대학 교수로 있다가 해외두뇌 유치의 일환으로 국내에 들어와 한국 과학기술원 부원장, 원장 등 요직을 맡게 된다.
 
 박정희 의장은 이날 오전에 리처드 J 데일리 시장을 방문했다. 시장 실에서 환담하는데 미국 기자들이 몰려와 북새통을 이루었다. 기자들에 대한 거의 생래적 거부감을 가지고 있던 박정희는 미국에 온 후 국내에서 는 경험할수 없었던 무질서한 취재경쟁에 노출되었다. 박정희는 데일리 시장에게 '신문기자들은 어딜 가나 똑 같군요'라고 농을 했다. 이날 시카 고 시장은 박의장에게 군의장대 사열을 받도록 해주고 명예시민증도 증정했다.
 
 귀국한 뒤 명예시민증을 살펴보니 이름이 엉뚱한 사람으로 되어 있어 되돌려주었다. 케네디 대통령은 박의장 일행의 시카고에서 워싱턴까 지의 비행에 미정부요인들이 이용하는 쌍발프로펠러 전용기 '컨베어'기를 제공했다. 객실은 두 구역으로 나뉘어져 있었다. 뒷쪽은 라운지처럼 꾸민 귀빈실로서 책상과 의자가 놓여 있었다. 박 의장은 여기서 보좌관들을 불러 내일 있을 회담에 대비한 토의를 하고 준비한 문서를 읽었다.
 
 앞 구역에는 미 국무부 한국과장 도널드 S 맥도널드와 미 대통령 통역 관폴 클라인 박사, 그리고 박 의장 담당 미국 경호원이 타고 있었다.
 
 컨베어기는 시카고 공항을 이륙한 지 네 시간만인 13일 오후 4시에 워 싱턴 내셔널 에어포트 군용 터미널에 도착했다. 미 육군의장병이 트럼펫 을 불어 국빈의 도착을 알리는 가운데 박 의장이 내리자 키가 큰 린든 B 존슨 부통령이 맨 먼저 다가와 악수를 청했다. 박정희가 아내를 동반하지 않았기 때문에 마중나온 사람들도 혼자였는데 딘 러스크 국무장관만은 그 8일 전 방한할 때 데리고 갔던 아내를 동반했다. 박정희가 사단장으로 있 을 때 유엔군 사령관이던 라이만 L 렘니처 대장은 당시 합참의장이었다. 그는 5월16일 매그루더 유엔군 사령관이 박정희 소장 일파에 대한 강경진 압 자세를 보일 때 이를 누그러뜨리려고 했던 이였다. 그도 박정희 의장 을 반갑게 맞았다. ( 계속 ).
 
 (조갑제출판국부국장기자) (이동욱월간조선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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