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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희와 영친왕
 박정희와 영친왕
 
 고종이 엄비에게서 난 제3자 이은을 일본측의 강요에 의해 일종 의 인질로 일본에 보낸 것은 합병되기 3년 전인 1907년이었다. 그 때 이은은 열한 살 소년. 일제는 영친왕이라 불리던 이은을 이왕 전하라 부르며 극진히 대우해주는 척 하다가 일본 황족인 마사코(방자)와 결혼시켰다. 영친왕은 일본 육사, 육대를 졸업하고 연대장, 사단장을 역임한 후 태평양 전쟁 말기에는 육군중장으로서 제1항공군 사령관을 지냈다.
 
 광복 후 영친왕과 이승만 정부 사이엔 악연이 생겼다. 영친왕의 저택은 도쿄의 노른자위 땅인 아카사카에 있었다(지금의 프린스 호텔 자리).
 
 대지가 약2만 평에 건평이 500평이나 되었다. 주일대표부가 생길 때 우리 정부에서는 영친왕의 저택을 대표부 건물로 인수하려고 했다. 영친왕은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지금의 나는 재산이라고는 이 집 한 채밖에 없고 해방 후 여러 해 동안 수입이 없이 살아왔으므로 빚도 많아서 그대로 줄 수는 없으니 꼭이 집이 필요하다면 시가보다 좀 싸게 사 가시오.'.
 
 우리 정부와 영친왕의 교섭은 합의에 이르지 못해 주일 대표부는 아자부에 자리잡게 되고 영친왕도 큰 손해를 보고 저택을 일본인에게 넘기게 되었다. 이런 분규 때문에 이승만 대통령은 영친왕을 비애국 자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1957년 영친왕은 서울신문 도쿄 특파원으로 와 있던 김을한을 불러 부탁을 했다. 아들 이구가 미국 MIT공대 건축 과를 졸업하는데 대학 총장이 영친왕 부부가 참석해 달라는 초청장을 보내왔다는 것이다. 영친왕은 한국여권을 좀 받게 해달라고 했다.
 
 김을한 기자는 쉽게 생각하고 주일대표부에 이 건을 이야기했더니 의외로 '경무대나 외무부에서 결정할 사항이다'는 답이 돌아왔다. 의분을 느낀 김을한은 서울에 와서 변영태 외무장관을 만났다. 소신 있는 장 관으로 유명한 변영태도 '이승만 대통령이 영친왕을 못마땅하게 생각 하니…'라면서 난색을 보였다. 김을한은 자유당 정권의 제2인자인 이 기붕 국회의장을 찾아가 대통령께 잘 말씀드려달라고 부탁했다. 이의 장도 '내가 여쭌다고 해도 효과가 있을 것 같지 않다'면서 거절했다.
 
 김을한 기자는 성과 없이 일본으로 돌아가 영친왕의 집을 찾아갔 다. 어떤 할머니가 집을 지키고 있었는데 영친왕 부부가 이미 미국으 로 떠났다고 하는 게 아닌가. 김을한은 궁내청으로 가서 우사미 장관 을 만났다.
 
 장관은 영친왕이 일본여권이라도 내달라고 졸라 영친왕과 방자여 사에게 일본 여권을 내주었는데 그 과정에서 영친왕이 일본국적을 갖 게 되었다고 하는 게 아닌가. 김을한은 영친왕이 야속하게 생각되었 지만 한편으로는 그를 궁지로 몰아넣은 이승만 대통령이 더 원망스러 웠다.
 
 미국에서 돌아온 영친왕에게 김을한은 싫은 말씀을 드렸다.
 
 '아무리 경무대의 처사가 나쁘더라도 전하는 체통을 지키셔야 할 것이 아니오니까. 나라가 있었으면 28대 왕이 되셨을 전하가 일본인 으로 귀화하였다는 것을 알면 태조대왕 이하 열성조의 임금들이 얼마 나 슬퍼하겠습니까.'.
 
 영친왕도 자신의 실수를 알고는 국적을 도로 고쳐달라고 하는 것 이었다.
 
 김을한은 다시 분주하게 일본의 관공서로 뛰어보았지만 거의 불가 능한 일임을 깨닫게 되었다. 오히려 영친왕이 환국하는 것이 해결책 이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그러던 중에 4·19혁명으로 이승만 정권이 무너지고 장면 정부가 들어서면서 분위기가 바뀌었다. 장면 총리는 '지나간 날 본국 정부에서 잘못한것을 다 용서하시고 되도록 속히 환 국하시와 신생 공화국을 위하여 지도와 편달을 해주십시오'란 요지의 편지도 보내왔다.
 
 1961년 5월 영친왕 이은은 앓고 있던 뇌혈전증이 재발, 입원했 다. 장면정부의 퇴장과 함께 추진되던 환국도 중단되었다. 이런 때에 도쿄에 온 박정희의장을 방자 여사가 꼭 만나도록 해야겠다고 생각한 김을한은 이동환 주일 공사를 통해서 면담신청을 냈다. 박정희 의장 은 선뜻 면담 요청을 받아들여 11월 12일 오후4시에 영빈관으로 와달 라고 했다. 김을한이 방자 여사를 안내하여 영빈관에 도착했다. 두 사람은 2층 귀빈실로 안내되었다. 박정희 의장이 절도 있는 걸음걸이 로 들어오더니 방자 여사에게 정중하게 인사를 했다.김을한에게도 담 배를 권한 박정희는 라이터로 불을 붙여주었다.
 
 방자 여사는 모기만한 소리로 '왕전하를 입원시켜주셔서 고맙습 니다'라고 인사했다. 영친왕이 졸도했다는 소식을 들은 박정희는 주 일공사를 통해서 즉시 입원시켜드렸던 것이다.
 
 '뭘요, 당연히 정부가 할 일을 한 것뿐인데 너무 어렵게 생각하 지 마십시오.'.
 
 김을한은 영친왕의 국적이 일본으로 되어버린 사연을 설명했다.신 중하게 이야기를 다 듣고 난 박 의장이 물었다.
 
 '그러면 어떻게 하면 좋겠습니까.' '하루 속히 국적을 한국적으로 환원시키고, 본국으로 모셔다가 여 생을 조국에서 보내시도록 해주시고, 생계비를 충분히 부담해주시고, 덕혜옹주(고종의 막내 딸)도 빨리 귀국할 수 있도록 해주십시오'.
 
 박 의장은 '덕혜옹주는 누구인가요?'라고 물었다. 김을한이 설명 하자 박정희는 '그 이야기는 처음 듣는 일이다'면서 김을한의 부탁을 모두 들어주었다. 요컨대 영친왕의 입원비는 정부에서 책임을 질 것 이고 병환에 차도가 있는대로 귀국하면 환영할 것이며 국적문제는 법무부에 지시해서 해결할 것이고 덕혜옹주의 귀국도 언제든지 환영한다는 것이었다.
 
 그러면서 박 의장은 아침에 이케다 수상을 만났을 때 '왜 이왕전하를 좀 더 잘 보살펴드리지 못했는냐'고 농담삼아 꾸짖었 더니 머리를 긁적이면서 '참 미안합니다'라고 하더란 이야기를 전했 다. 10여년간 풀지 못했던 문제를 단숨에 다 해결하고 돌아가는 차중 에서 방자 여사는 김을한에게 '처음에는 젊은 군인이라 어떨까 마음 이 무거웠는데 막상 만나보니…'라면서 입에 침이 마르도록 박의장을 칭찬하더란 것이다. ( 계속 ).
 
 (조갑제출판국부국장기자) (이동욱월간조선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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