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원한 작별
워싱턴에 도착한 사흘째인 11월15일도 박정희 의장은 바쁜 일정을 소화해야 했다. 아침8시 정각에 케네디 대통령 군사고문 맥스웰 테일러 대장이 박 의장이 머물고 있던 대사관저로 찾아와 조찬을 함께 하면서 한 국군의 현수준 유지와 현대화 문제를 의논했다. 오전 10시 박 의장은 프 리맨 농무부 장관을 방문하여 국토건설사업과 이를 지원할 미국 잉여농 산물 도입을 의논했다.
오전 11시에 박 의장은 다시 맥나마라 국방장관 을 찾아갔다. 여기서는 전날 박 의장이 제의했던 월남파병이 주로 토의 되었다. 이 회담은 점식식사로까지 이어져 계속되었다. 오후에 박 의장 은 핫지스 상무장관을 방문했다. 63세의 노인인 핫지스 장관은 박정희가 기자들에게 불만이 많다는 이야기를 전해들었는지 농담부터 했다.
'기자들 등살에 불편이 많다고 들었는데 좋은 예방법을 가르쳐드릴까요.'.
그는 책상 서랍에서 작은 검정고양이 소상을 하나 꺼내더니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다.
'이걸 드릴테니 기자들을 만나거든 이 놈을 쓰다듬어 주십시오. 그러 면 기자들은 말썽을 부리지 않을 겁니다.'.
박 의장은 선물로 받은 검정고양이를 쓰다듬으면서 모처럼 환하게 웃 었다. 박 의장은 경제개발5개년 계획을 설명하고 민간투자유치에 대한 핫지스장관의 협조를 요청했다. 박 의장은 오후 4시 백악관으로 케네디 대통령을 찾아갔다. 박 의장은 '5개년 계획이 시작되는 내년이 가장 어 려운 해가 될 것 같다. 해외차관의 형태로 특별한 도움을 요청한다'고 했다. 케네디 대통령은 '검토해보겠다'고 했다. 케네디는 박정희가 제의 했던 한국군의 월남파병 건에 대해서 신중한 자세를 보였다(이때는 미국 정부가 아직 군대를 보내지 않고 있을 때였다).
'월남에 대한 우리의 원조는 당분간 경제적 지원, 그리고 장비 통신 같은 부문에 한정될 것 같습니다. 이 이상의 원조가 필요할 것인가 아닌 가는 월남 국민들이 정부를 지지하는가, 자유를 위해 싸울 각오가 되어 있는가의 여부에 달려 있을 것입니다. 만약 월남 국민들이 정부를 지지 하고 자기 몫들을 다한다면 박 의장이 제안한 것과 같은 외부로부터의 도움은 필요하지 않을 것입니다.'.
케네디 대통령은 박 의장의 월남파병 제의에 대해서 일단 '지금 단계 에서는 필요하지 않다'는 태도를 보인다. 그 2년 뒤 케네디 대통령이 암 살되기 한 달 전에 일어난 고 딘 디엠 월남 대통령에 대한 군부 쿠데타 와 이후의 정치불안이 미국을 수렁으로 끌어들인다. 고 딘 디엠 대통령 을 죽음으로 몰고간 월남 군부의 쿠데타 모의를 알면서 지원했던 미국은 고딘 디엠을 대체할 만한 강력한 월남 지도자를 끝내 발굴하지 못하고 월남정부를 대신하여 공산게릴라와의 전쟁을 떠맡게 된다. 이때 비로소 박정희의 월남파병 제의는 새로운 의미를 띠게 되는 것이다.
케네디 대통령은 작별인사를 하기 전에 박정희에게 다음날로 예정된 내셔널 프레스 클럽에서의 연설에 대해서 충고한다.
'기자들은 통상 그랬던 것보다는 아마도 박 의장에게 우호적으로 나 올 것 같군요. 네루 수상도 곤란을 겪었고 흐루시초프의 경우에는 기자 들이 스탈린에 관한 질문을 너무 많이 하는 바람에 화가 나서 방문일정 을 중단할 뻔했거든요.'.
케네디 대통령은 '1951년에 잠시 한국에 머문 적이 있었는데 사실 한 국에 대해서 아는 것이 거의 없었다'면서 '이번에 박 의장께서 미국을 방문하시는 바람에 한국에 대해서 이해를 높이는 계기가 되었다'고 말했 다. 박 의장은 케네디의 방한을 초청했고 그는 '동북아시아로 가는 기회 가 있으면 꼭 들리겠다'고 했다. 케네디는 박 의장의 승용차까지 따라와 서 작별 인사를 했다. 두 사람은 다시 만나지 못했다. 케네디가 박정희 보다 여섯 달 먼저 태어나 동갑나기인 두 사람은 16년 간격으로 현직에 있을때 암살됨으로써 생을 마감했다는 점에서도 같은 운명이었다.
박 의장은 국무부 건물 안에 있는 국제개발처에 들려 해밀턴 처장이 마련한 다과회에 참석했다가 한국대사관저로 돌아왔다. 저녁7시부터 한 국대사관저에서는 박 의장이 미국 요인들을 초청한 만찬회가 열렸다. 러 스크 국무장관, 핫지스 상무장관, 맥나마라 국방장관, 매카나기 국무부 차관보, 그리고 5·16때 박정희 소장의 쿠데타를 진압하려고 했던 당시 유엔군사령과 매그루더 장군(퇴역), 6·25전쟁 때 미8군사령관 밴플리트 장군이 참석했다. 만찬이 끝난 뒤 응접실에서는 한국대사관 무관 안광호 준장의 딸 정숙양의 한국고전무용이 선보였다.
다음날 박정희 의장은 대 사관저에서 케네디 대통령의 경제고문인 로스토우 박사를 맞아 아침식사를 함께 했다. 하바드 대학 경제학 교수 출신인 로스토우 박사는 후진국 개발론에 밝은 사람이었다. 한국의 5개년경제개발계획에 대하여 관심도 많고 대통령에게 정책조언을 할 수 있는 자리에 있는 인물이었다. 박 의 장과 함께 배석한 천병규재무장관, 송정범경제기획원 부원장, 정일권대 사는 로스토우 박사와 두 시간이나 이야기했다.
워싱턴을 방문하는 외국 지도자들이 시험을 치는 기분으로 가는 곳이 내셔널 프레스 클럽이다. 미국 기자협회인 이곳에서 국가 지도자들이 기 자들을 상대로 연설하고 질문을 받는데 자유언론에 노출된 적이 없는 흐 루시초프 같은 독재자들은 큰 곤욕을 치르기도 했다. 내셔널 프레스 빌 딩 13층에 있는 회견장에 박 의장이 도착한 것은 정오. 존 코스크로브 회장은 박 의장을 안내하면서 우선 방명록에 서명하도록 했다.
박의장이 '1961년11월16일'이라 쓰는 것을 보고 코스크로브 회장은 '아, 오늘이 바로 혁명이 일어난 지 여섯달 되는 날이군요'라고 했다. 박 의장이 빙 그레 웃자 그는 또 '아, 웃으시는군요. 의장께서는 웃음을 모르시는 분 이라고 들었는데 사실이 아니군요'라고 했다. 박 의장은 웃기만 했다.
( 계속 ). (조갑제출판국부국장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