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개발 지원 요청
케네디 대통령은 박정희 의장에게 '38선을 통한 공산주의자들의 침투가 이루어지고 있는가'하고 물었다.
·박정희:'그 자들은 온갖 수단을 다 동원해서 38선을 침투하려 고 애썼지만 실패했습니다. 일망타진되고 있습니다.' ·케네디:'북한 사람들의 사기와 정치성향은 어떻습니까.'.
·박정희:'식량소비량과 주민들의 생활수준은 매우 낮습니다.물 론 그들은 기반산업과 지하자원에서는 남한보다 우월합니다. 북한 의 전력생산량은 110만 킬로와트입니다. 남한은 5개년 계획이 끝나 는 해라야 전력생산량이 103만 킬로와트 수준에 달할 것입니다.'
·케네디:'원자력 발전소를 짓지 그랬어요.'.
·박정희:'건설비가 너무 비싸 생각해본 적도 없습니다. 그러나 (웃으면서) 미국이 지원해준다면 고려해보겠습니다. 육군과 해군 전력은 남북한이 비슷합니다. 공군은 북한이 남한보다도 네배가 강합니다.'
·러스크:'그 공군력이란 북한만을 말합니까 아니면 중공과 소 련공군력을 포함한 것입니까.'.
·박정희:'북한만을 가리킵니다. 한국과 일본 주둔 미 공군력을 포함시키면 북한과 대등해집니다. 북한은 지금 산업화에 매진하고 있고 남한은 낙후될 가능성이 있습니다. 본인의 가장 큰 당면과제 는 군사력을 유지하면서 동시에 경제를 개발하는 것입니다. 독일의 경우가 그러합니다만 분단된 국가에서는 경제력이 서로 대등하지 않으면 일방은 다른 여러 부문에서뒤떨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한국은 그런 처지에 빠지면 안됩니다. 본인이 여기에 온 이유는 한국군 의 병력을 현재 수준으로 유지하는 데 있어서 대통령의 긍정적인 뒷받침을 얻기 위한 것이며 경제개혁과 재건에 대한 지원을 요청하기 위한 것입니다. 공동성명서의 취지는 그런 원조가 있을 것이라 는 뜻인가요.'
·케네디:'본인은 박 의장과의 사이에 오해가 없기를 바랍니 다. 이미 본인이 말했습니다만 한국의 안전이 미국에 사활적 중요 성을 갖고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알아두셔야 할것 은 우리가 올해에 원조예산을 (미 의회로부터) 확보하는 데 그렇게 성공적이지 못했다는 점입니다. 의장께서는 우리가 주고싶어도 줄 수 없는 상황에 대해서 이해해주셔야겠습니다.'.
·박정희:'자유세계 개발도상국가들의 자립이 가장 중요하다는 본인의 소신을 거듭 천명하려고 합니다. 원조를 할 때도 최단시간 내에 최대한의 성과를 올릴 수 있는 나라를 중점적으로 지원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케네디:'본인도 동의합니다. 의회와 국민들도 원조가 가장 효 율적으로 쓰이는 나라로 가야 한다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라오 스에는 원조를 많이 했는데 낭비된 경우입니다. 실망스러운 것은 경제적으로 번영하고 있는 유럽국가들이 원조를 분담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그들은 차관을 제공할 뜻은 있는 모양인데 연리 6%를 요 구하고 있습니다. 베를린 위기에 관해서 말씀드린다면 (소련과) 타협이 만족스럽게 이루어질 것이라고 보장할 수는 없습니다. 평화협 정을 맺은 뒤에도 자유세계측에서 베를린에 접근하기가 어려워질지 모릅니다. 우리는 베를린과 월남에서 동시에 어려움을 당하고 있습 니다.'.
·박정희:'대통령의 시간을 너무 많이 빼앗은 것 같습니다. 이 제 작별해야겠는데 혹시 떠나기 전에 본인이 요청한 원조건에 대해 서 '기분 좋은 답'을 들을 수 없을까요.'
·케네디:'우리는 실천할 수도 없는 약속을 하는 것보다는 할 수 있는 것을 약속하여야 할 것입니다. 사실은 누군가가 본인에게 그런 '기분 좋은 것'을 주지 않을까 하고 기다렸는데 의장께서 월 남파병 건으로 본인을 기분좋게 만들어주셨습니다. 아마도 의장께 서는 미국이 우리 모두를 폭파시켜버릴 만큼 어머어마한 원자폭탄 을 보유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는 용기를 얻어셨을 것입니다. 본인은 의장께서 여기 오신 목적을 전혀 달성하지 못하고 빈 손으로 떠나게 되었다고 생각하지 않았으면 합니다. 의장께서는 우리가 직 면하고 있는 문제들이 얼마나 심각한가를 이해하셨을 것입니다. 정 일권 대사께서 이 문제에 대해서 의장에게 잘 설명해주실 것을 바 랍니다.'.
케네디는 박정희와 헤어지면서 내일 한번 더 만나자고 했다. 이 것도 예정에 없던 호의였다. 박정희는 케네디와의 1차 회담 때 원 조를 요청하면서도 무작정 달라고 하지 않고 '자립의지가 있는 나 라에 우선적으로 주어야 할 것이 아닌가'란 식의 논리를 폈다. 박 정희는 농민들을 상대로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고 자조 정신을 강조하곤 했었는데 그런 논리의 연장선상에서 미국에 대하 여도 당당하게 손을 벌리려고 했다.
'자조정신의 발양에 의한 자립 경제의 건설, 자립경제에 뿌리를 둔 자주국방, 자주국방을 할 수 있어야 진정한 통일국가도, 독립국가도 될 수 있다'는 자조-자립- 자주-독립·통일의 논리는 박정희가 죽을 때까지 유지한 국가근대 화 전략의 철학적 기반이었다. 박정희는 이런 생각을 새마을운동 등 근대화 작업에 그대로 적용했다. 새마을 사업을 할 때는 가장 가난한 마을을 먼저 지원하는 것이 아니라 자조정신이 가장 강한 마을을 먼저 지원하여 경쟁을 붙였던 것이다.
케네디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끝낸 박정희 의장은 주미 한국대사 관저로 돌아오자말자 정일권 대사가 박 의장을 위해 마련한 리셉션 에 참석해야 했다. 워싱턴 주재 외교관들과 렘니처 합참의장 등 군 인들이 많이 참석했다. 박 의장 일행은 도중에 리셉션장을 빠져나 와 백악관 근처 블레어 하우스(대통령의 국빈이 머무는 영빈관)로 갔다. 러스크 국무장관이 주최한 만찬에 참석하기 위해서였다. 박 정희는 인사말에서 '본인은 미국에 와서 세 가지 고통을 느끼고 있 습니다'라고 서두를 꺼냈다.
'첫째 고통은 미국과 한국의 시간 차이 때문에 오는 것이고, 둘째 고통은 환대가 너무 정중하여 서너 시간씩 부동자세로 서 있자니 허리가 아픕니다. 셋째 고통은 수많은 기자들의 습격입니다.' (계속).
(조갑제출판국부국장기자) (이동욱월간조선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