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한림의 울분
1군 사령관 시절 친구 박정희의 쿠데타를 만나 옥살이를 한 뒤 미국 산타 바바라 소재 캘리포니아대학에 와서 학생신분으로 공부 하고 있던 이한림. 그는 정일권 주미 한국대사에게 '난 박정희를 만날 수 없어요'라고 딱 부러지게 거절하고 전화기를 놓았다. 자 존심이 강하기로 유명한 이한림 장군은 '분통이 터져 견딜 수가 없었다'고 한다.
그때까지도 옥중에서 얻은 신병으로 고통을 당하고 있었는데 그 고통을 준 박정희를 만나러 샌프란시스코까지 오 라니 화가 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는 '마음을 가다듬고 흥분을 진정시키느라 주기도문을 외웠다. 그리고는 다시 공부를 시작했다' 고 한다(회고록 '세기의 격랑'). 새벽 한 시쯤 다시 전화 벨이 울 렸다. 이한림이 전화기를 들고 '누구시오, 이 꼭두새벽에?'라고 하니 정일권 대사의 상냥한 목소리가 다시 들려왔다.
'박 의장이 나에게 다시 부탁을 하는데 꼭 내일 아침에 호텔에 서 식사를 같이 하자고 합니다.' '갈 수 없습니다.'.
정대사는 사정사정하는 것이었다. 정일권은 이한림의 결혼식에 들러리를 서는 등 두사람은 절친한 사이였다. 이런 인간관계를 잘 아는 박정희가 정일권 대사를 통해서 자꾸 부탁을 하는 것이라고 이한림은 짐작했다.
'박 장군이 숙박할 호텔이 어디요?'.
정대사는 '마크 합킨스 호텔이오'고 알려주면서 '오늘 오후에 호텔에 도착할 수 있소'라고 물었다.
'정 장군을 생각해서 가는 것이니 그리 아시오. 오후 다섯시까 지 호텔에 도착하겠소.'.
1961년 11월19일에 샌프란시스코에 도착한 박정희 의장 일행은 미 제6군 사령관 존 L 라이언 중장 부처가 자택에서 마련한 만찬 회에 참석했다. 라이언 중장은 5·16군사혁명 당시엔 미 제1군단 사령관으로서 쿠데타를 막는 입장에 있었던 사람이다. 이날 만찬 에는 미국측에서 윌리엄 F 딘 퇴역 소장(한국전쟁 때 북한군에게 포로가 되었던 사람)과 한국전쟁 당시 미8군 사령관 밴 플리트 장군도 참석했다. 한국전쟁 당시 전우였던 한미 양측인사들은 밤이 깊은 줄도 모르고 옛 이야기에 꽃을 피웠다. 한국전 동창회 같은 모임이었다. 이날이 마침 라이언 장군의 결혼기념일이라 박 의장은 축배를 들 것을 제의했다.
박정희 의장 일행이 미국에서 환대를 받은 이유중의 하나는 한 국전에서 같이 싸웠던 미국측 장성들의 성원이었다. 다음날 아침 박의장은 마크 합킨스 호텔에서 샌프란시스코-로스앤젤레스 지역 교포 200여명과 조찬을 함께했다. 박 의장은 '여러분이 부모와 인 연을 끊을 수 없듯이 우리는 잘 됐거나 못 됐거나 조국과의 관계 를 끊을 수는 없다'고 했다. 박 의장은 이 무렵 즐겨 쓰던 '하늘 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는 말을 인용하면서 이렇게 강조했다.
'우리가 전력을 기울인다면 10년 이내로 남부럽지 않은 국가를 건설할 수 있고 국토통일도 이룩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 대신 자 주정신과 민족적 긍지가 없다면 미국의 원조도 한강에다가 한줌의 모래를 뿌리는 것이나 다름없게 될 것입니다.'.
오후 5시 박정희 의장은 아시아 협회와 북캘리포니아 세계문제 연구소가 공동 주최한 리셉션에 참석하여 30분간 연설했다. 박 의 장은 세일즈맨처럼 연설했다. 미국 경제인들을 상대로 한국에 투 자해줄 것을 절절히 호소한 그의 연설문을 읽어보면 냉혹한 혁명 가가 아니라 투자유치단장처럼 느껴진다.
'매력적인 민간투자의 기회가 도래하고 있으니 광업, 공업, 식 료품 제조업 등 건전한 경제 발전에 공헌할 모든 분야에 걸친 만 간투자를 환영하는 바입니다. 우리는 여러분들로부터의 민간투자 의 안전을 보장하고 이윤의 자유로운 송금, 세금 및 관세면제를 규정하는 법률을 제정하였습니다. 총주식의 25%를 소유하는 외국 투자기업을 위해서는 그와 경쟁하는 관영기업을 두지 않을 것을 규정하고 있습니다. 외국투자기업은 정부인가, 계약 및 공공사업 에서 차별되지 않을 것이며 법률에 의하지 않고서 기구 자재의 도입은 제한되지 않을 것입니다.
한국내 투자에 관심을 가지신 이들 에게는 샌프란시스코 한국총영사관을 소개하는 바입니다. 동 직원 들은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의 내용이라든가 외국투자보장법이라든 가 여러분의 돈이 가장 유익하게 사용될 수 있는 산업부문이 무엇 인가 등에 관하여 기꺼이 여러분들을 도와드릴 것입니다.'.
박정희는 연설을 하는 도중 기침을 여러번 했다. 연설이 잠시 중단되기도 했다. 피로한 기색이 역력했다. 이날 오후 박 의장이 묵고 있던 호텔에 도착한 이한림은 정일권 대사와 같은 방에서 밤 을 보냈다. 두 사람은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정 대사는 이한림 과는 만주군관학교-일본육사 동기생인박 의장과의 화해를 권했다.
다음날(11월21일) 정일권 대사는 박의장이 묵고 있는 방에 올 라가더니 전화로 귀빈실로 올라오라는 연락을 주었다.
이한림이 방문을 두드리니 의전비서관 조상호(뒤에 체육부장관 역임)중령이 친절하게 맞았다. 생각보다는 큰 방은 아니었지만 전 망이 좋았다. 잠시 후 거실 안쪽에서 박정희 의장이 걸어나왔다.
이한림과 박정희의 눈이 마주쳤다. 이한림은 '불쾌하고 분노가 치솟아 오름을 느꼈다'고 한다. 박정희는 어색한 웃음을 띠고 손 을 내밀며 악수를 청했다. 그 순간 이한림은 분노를 참지 못하고 소리쳤다는 것이다.
'야 이 새끼야, 나를 이 꼴로 만들어 놓고 속이 시원하지?'.
박정희의 안색은 까맣게 변했다. 잠시 어색한 침묵. 박정희는 말없이 방의 한쪽에 있는 식탁으로 이한림을 안내했고 수행원들을 소개시켜 주었다. 식탁 분위기는 착 가라앉았다. 여러 사람들 앞 에서 욕을 들은 박 의장을 앞에 두고 부하들의 목에 밥이 잘 넘어 갈 리가 없었다. 이한림은 박 의장에게 '왜 검은 안경을 끼고 다 니는가'라고 물었다.
'너무 고단하게 뛰어다니다가 보니까 눈이 항상 벌겋게 충혈되 어 있어 끼는 거야.' '난 이렇게 생각한다. 정치는 국수주의자보다는 국제주의자에 게 늘 승리를 안겨준다고 생각해. 국제적인 평가에 대하여 늘 신 경을 쓰는게 좋을 거야.'.
박정희는 이한림의 마음을 풀어보려고 애쓰는것이 역력했다.다 른 부하들은 입을 닫고 있는데 정일권 대사만이 분위기를 바꾸어 보려고 노력하는 것이 애처롭게 보일 정도였다고 한다('세기의 격 랑').
식사를 마친 후 이한림은 박정희에게 작별을 고하고 공항으로 갔다. (계속).
(조갑제출판국부국장기자) (이동욱월간조선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