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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대식 구조개혁
 군대식 구조개혁
 
 혁명직후 상공부 장관이 되었던 정래혁소장에 따르면 부임해보니 민간관료들이 만들어두었던 '중소기업금고안' '석탄개발촉진안' 등 좋은계 획서가 책상서랍에서 잠자고 있더라고 한다. 정 장관은 이런 우수한 인력을 가지고도 왜 이 정도밖에 일을 하지 못하는가싶어서 그 계획서를꺼 내놓고 실천에 돌입했다는 것이다. 자유당, 민주당 시절에 경제개발이나 개혁은 몰라서 못한 것이 아니라 알면서도 정치적인 결단과 지원이 없었 기 때문에 이루어지지 않았던 것이다. 즉, 정치와 권력의 뒷받침이 없었 기때문에 가능한 것도 실천되지 않았던 것이다. 군사혁명은 이런 권력의 뒷받침을 가능하게 했다.
 
 정래혁(뒤에 국방장관, 국회의장 역임)은 '군인들이 비록 경제에 대 한 지식이 부족했지만 의무감과 탐구심, 그리고 사심 없는 애국심으로 밀어붙이니 길이 뚫렸다. 특히 사심 없이 문제를 보니 의외로 쉽게해결 책이 발견되었다'고 했다. 자유당, 민주당 시절의 정치인들과 관료들은 머리는 우수하긴 했지만 당파성과 연고주의 같은 파벌주의, 즉 사심에 휩쓸려들다가 보니까 국익을 지향하는 업무 추진력은 형편없이 떨어졌다 는 얘기이다.
 
 학계에서 5·16군사정권으로 등장한 군엘리트를 국가엘리 트, 그 전의 지도층을 전통엘리트라고 분류하는 것도 행동의 기준을 국 익으로 삼느냐, 당파적 이해관계로 삼느냐에 따른 구분이다. 5·16주체 세력의 국익우선 의식은 이들이 특별한 애국심을 타고났다기보다는 일제 시대엔 나라 잃은 설움을 겪고 6·25전쟁 때는 피로써 나라를 지킨체험 에서 자연스럽게 우러난 것이리라.
 
 군인집단이 주도한 건국·독립·혁명은 세계 역사상 전례가 많지만 (케말 파샤에 의한 터키혁명, 낫셀에 의한 이집트 혁명, 미국의 독립혁 명등) 군인들에 의한 경제개발은 희귀하다. 경제에 대하여 문외한인 장 교들이 의무감, 탐구심, 애국심으로 무장하여 경제를 배워가면서 20세기 의대표적인 성공사례를 주도했다는 점은 연구대상이다. 정래혁 장관이 주도했던 전력3사의 통합에 의한 한전의 탄생 같은 구조개혁사례들을 더 소개한다.
 
 ·농협과 농은의 통합: 농협이 신용업무를 겸할 것인가, 그렇지 않으 면 신용업무를 분리할 것인가.이는 농협이 발족한 이후 계속되던 논쟁거 리였다.1958년에 농협에서 농업은행이 분리되었다. 그 뒤 농은은 순조롭 게 발전했다. 농협은 그러나 자기자본의 부족으로 대부분의 단위 조합이 적자 경영 또는 개점휴업 상태였다. 민주당 시절에 통합 이야기가 다시 나왔다.농림부는 통합을, 재무부는 분리를 주장하여 어떤 합의도 이루어 지지 않았다. 혁명정부는 이 문제를 간단하게 해치웠다. 쿠데타 성공 보름뒤인 5월31일 정부는 '협동조합을 재편성하여 농촌경제를 향상시킨다' 는 방침을 천명했다.
 
 이에 따라 6월15일 최고회의는 농협과 농은을 통 합하기로 의결하고 의장 명의로 농림부 장관에게 '통합처리대강'을 내려 보냈다. 그 내용도 간단 명료했다. '농협과 농은의 자산과 부채는 통합 된 신기구가 인수하며 임원 및 직원은 통합처리위원회의 의결에 의하여 정리한다'는 것이었다. 쟁점이 되는 통합처리위원회 위원장은 농림부장 관,부위원장은 재무부차관이 되고 위원은 위원장과 부위원장이 '필요하 다고 인정되는 자'를 임명하도록 했다. 단, 통합기한은 7월말까지로 못 박았다.
 
 이에 따라 6월19일부터 7월1일까지 8차의 회의를 가진 통합위원회는 신농협법안과 그 시행령안을 만들어 7월3일 최고회의에 제출했다. 7월29 일에 전문 176조 부칙 17조로 된 새로운 농협법안이 공포되고 8월15일에 통합된 농협이 발족했다.
 
 ·수리조합 통폐합: 1군사령부의 심리전 참모로서 쿠데타에 가담했던 허순오대령은 6월5일자로 농림부 산하의 대한수리조합연합회 회장으로 임명되었다. 수리조합이란 물이 잘 들어가지 않는 논에다가 물을 대주는 사업을 하는 기관이었다. 그래서 쌀이 증수되면 그 쌀값으로써 시설비 기채 상환금 및 수세를 물도록 했다. 혁명 당시 전국의 조합수는 695개 였다. 이 조합들이 1,400억 환 이상을 들였는데도 물이 잘 들어오는 논, 즉 수리안전답은 26만3천 정보에 머물러 있었고 외미도입은 여전했다.
 
 허대령은 부임즉시, 기구축소를 단행하여 부정부패자, 무능자, 축첩 자 등 250명을 해고했다. 전직원의 26%였다. 수리조합도 경제규모에 따 르기위해서 1군1조합 원칙을 세워 약700개를 약2백 개로 줄여버렸다. 허 순오 회장은 수리조합의 활동을 규정한 법률이 존재하지도 않는 것을 알 고는 깜짝 놀랐다. 일제 때 만든 조선수리조합 시행령을 적당하게 응용 하고 있었다. 독립한 지가 언제인데 아직도 일본의 지배를 받고 있는 기 분이 들었다. 현실에 맞춰 새 법을 제정하기로 했다. 1962년1월21일부터 발효된 토지개량사업법이 그것이다(수리조합은 토지개량조합으로 명칭이 변경되었다). 민간 정치인들이 무관심하던 것을 허순오 대령 같은 군인 들의 문제의식에 의하여 많은 법률들이 개정·제정되어 법률적 식민지 상태를 벗어났다는 것은 흥미롭다.
 
 ·중소기업은행 발족: 중소기업 금융을 전담할 은행의 설립도 자유당, 민주당 시절에 그 필요성에 대한 논의가 있었으나 실현되지 못했다. 혁 명정부는 그 발상을 신속하게 실천에 옮겼다. 7월1일 우선 중소기업은행 법을 공포했다. 그리고는 농협에 통폐합된 농업은행의 도시 점포를 모체 로 하여 8월1일 중소기업은행을 발족시켰다. 혁명정부는 또 1961년말 서 민금융을 전담할 국민은행을 발족시켰다. 이는 한국무진주식회사가중앙 무진주식회사를 흡수합병하여 탄생한 것이다. 농민을 위한 농협개혁, 서 민을 위한 국민은행 발족, 그리고 영세상공업자들을 위한 중소기업은행 발족은 중하류층 출신이 대부분이었던 혁명주체장교들의 성향을 반영하 는 것이기도했다.
 
 ·산업은행에 투자업무 허용: 산업은행에 융자업무뿐 아니라 투자업무 까지 부여하는 개정법률안이 국회에 제출된 것은 1958년이었다. 이 법안 은 그러나 정쟁의 소용돌이속에서 3년간 낮잠을 잤다.
 
 최고회의는 12월 27일에 이 법률안을 통과시켰다. 최고회의는 또 11월1일에는 '한국은행 통화안정 증권법'을 제정 공포했다. 한국은행법에 규정된 공개시장조작 기능을 법제화한 것이다. 5·16직후에는 별 용도가 없었으나 1980년대부 터 무역흑자 등으로 팽창되는 통화를 환수할 때 통안증권은 전가의 보도 처럼 쓰였다. (계속)
 
 (조갑제출판국부구장기자) (이동욱월간조선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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