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국
11월21일 오후 박정희 의장 일행은 샌프란시스코를 떠나 하와이 호놀 룰루 공항에 도착했다. 하와이 주지사가 마중나왔다. 환영식이 끝난 뒤 박의장은 줄이 쳐진 뒤에서 자신을 환영하는 교포들에게 다가가 인사를 했다. 이때 경호관 박종규 중령이 갑자기 뛰어오더니 박 의장을 밀어 젖 혔다. 그리고는 손으로 군중속에서 삐어져 나온 까만 물체를 탁쳤다. 그 것은 권총같이 생긴 마이크였다. 미국공보원 촬영반이 군중속에서 내민 것인데 박종규가 권총으로 오인한 것이었다. 박정희는 '그럴 때는 또 빠 르네'라면서 씩 웃었다.
공항에서 기자들이 박 의장에게 '호놀룰루에 망명해 있는 이승만박사 의 귀국을 허용할 생각은 없는가?'라고 물었다. 박 의장은 '그런 것은 생각해본 적이 없다'고 대답했다. 다음 날 아침 박 의장은 공식 행사에 참석하기 위해 숙소를 떠나기에 앞서 의전비서관 조상호 중령에게 이승 만전 대통령을 찾아가 인사를 드리도록 지시했다. 조중령은 이일우 호놀룰루 총영사 및 재미 동포 윌버트 최와 함께 이승만 부처가 기거하는 작 은 집을 찾아갔다. 현관에서 조상호 일행을 맞은 프란체스카 여사의 목이 메어 있었다. 거실의 안락의자에 앉아 있던 이승만 전 대통령은 여사의 부축을 받고 일어나 손님들과 악수했다. 얇은 밤색 잠바를 입은 이박사는 무척 수척해 보였고 백발도 더욱 성겨진 것 같았다.
조상호 중령은 양란과 흰 국화를 섞어 만든 꽃다발과 함께 박정희 의 장의 위문의 뜻을 전했다. 이승만 박사의 눈에는 눈물이 맺혔다. 실내는 너무 간소하여 초라할 지경이었다. 등의자가 몇 개 있을 뿐 이렇다 할 가구도 없었다. 탁자에는 당시선 세권이 펼쳐진 채 놓여 있었다. 이승만 전 대통령이 읽고 있었던 것인지 우연히 펼쳐졌는지는 알 수 없으나 이 런 귀절이었다고 한다.
<그윽한 대나무 밭 그속에 홀로 앉아(독좌유황리)/거문고 튕기며 읊 조려도 보나니(탄금복장소)/숲 마냥 깊어 사람들은 알지 못하는 곳(심림 인불지)/오히려 밝은 달이 찾아와 비쳐주네(명월래상조)>.
왕유의 '죽리관'이라는 제목의 시였다. 이승만은 조 중령에게 한국의 실정을 물었다. 조 중령이 혁명정부의 업적을 설명하자 이승만은 '한인 은 뭉쳐야 살아!'라고 말했다. 이박사를 물심 양면으로 도와온 윌버트 최는 '이 박사께서 5·16이후에는 자꾸만 고국으로 돌아가시겠다고 졸라 댄다'고 했다. '호랑이도 죽을 때는 제 굴을 찾아간다지 않는가. 죽어도 고국에 가서 죽고싶다'는 말을 되풀이한다는 것이었다.
다음해 이승만은 짐을 다 꾸리고 귀국길에 오를려고 했으나 혁명정부의 거부로 귀향은 좌 절된다. 재미 있는 것은 이승만은 영친왕 이은을 홀대하면서 그의 귀국 을 막았는데 박정희는 이은의 귀국을 허용하면서 이승만의 귀국은 불허 했다는 점이다.
11월24일 새벽1시45분 박정희 의장 일행은 영국 BOAC항공사 여객기편 으로 귀국길에 올랐다. 이 여객기는 25일 오전5시20분에 도쿄에 도착했 다. 도쿄의 한국 대표부에 주재하던 정보부 국장인 최영택참사관은 도쿄 에서 김포까지의 비행기편을 마련하는 데 애를 먹었다. 대한항공이 특별 기를 보내도록 하려고 했는데 착륙허가를 갑자기 받기가 어려웠다. 할 수없이 미5공군으로부터 전용기 한 대를 빌 수 있었다. 박 의장 일행은 하네다 공항에서 한 시간 남짓 머물다가 미군기에 옮겨 탔다. 박정희는 기내에서 한일회담 배의환수석대표와 최영택 참사관을 불러 그 동안의 경과를 보고받았다. 배의환 수석이 일본 언론보도의 문제점을 꺼내자 최 영택이 가로막았다.
'그 말씀은 드리지 않기로 했잖습니까?' '뭔데 그래?'.
박 의장은 말해보라고 채근했다. 배, 최 두 사람은 일본 외무성의 이 세키 아시아국장이 일본 언론에 회담정보를 흘림으로써 회담을 유리하게 이끌어 가려고 장난을 하고 있다고 보고했다. 박 의장은 다 듣고나더니 최영택에게 이렇게 지시했다.
'내가 이케다 수상과 회담할 때 그가 하는 말이 '나의 오른팔은 자민 당 간사장인 마에오이고 왼팔은 오히라 관방장관이니 언제든지 이 두 사 람을 활용하십시오'라고 했어. 그러니 이 문제를 마에오 간사장 하고 상 의해보지.'.
박정희 의장 일행이 탄 미군기가 우리나라 항공식별구역에 들어오자 F-86 전투기 네 대가 마중나왔다. 박 의장 일행이 김포에 도착한 것은 아침9시경이었다. 이주일 최고회의 부의장, 송요찬 내각수반, 그리고 지 만을 안고 나온 육영수 등 많은 환영객들 앞에서 박 의장은 귀국인사문 을 낭독했다. 기자는 16밀리 필름 두 권에 수록된 '박정희 의장 방미 사 절단 영상기록'이란 1시간10분짜리 기록영화를 통해서 이날의 환영행사 를 간접적으로 체험할 수 있었다. 박 의장은 '방미 결과를 요약해서 여 러분들에게 보고를 드리자면 대단히 만족스럽고도 성공적이었으며 또한 대단히 유익하고도···'라고 인사하다가 상공을 지나가는 전투기의 굉음 때문에 잠시 말을 끊었다가 다시 시작한다.
김포에서 서울로 들어오는 가도는 좁은 비포장도로. 박 의장의 차량행렬이 길을 꽉 채울 정도이 다. 연도에는 동원된 듯한 학생들과 시민들이 태극기를 흔들며 박 의장 을 환영하는데 이 기록필름에 등장하는 일본, 미국의 환영객들과 비교해 서 너무나 남루한 옷차림이 충격적이다. 더 충격적인 것은 그런 옷차림 에도 불구하고 표정이 무척 밝고 힘차 보인다는 점이다. 동원된 군중인 지는 몰라도 박 의장이 지나갈 때 '와 '하고 함성을 지르면서 활짝 웃 는 표정은 동원된 것 같아 보이지 않는다. 전란의 폐허를 딛고 막 도약 하려는 민중의 잡초 같은 생명력을 느끼게 해주는 표정들이다.
박정희로서는 이런 대중적 환영은 첫 경험이었다. 박 의장의 차가 광화문에 이르 러 최고회의 건물(지금의 문화부 건물)로 들어가자 군중들은 밀물처럼 도로 위로 들어와 덮어버린다. 이 화면위로 취주악단의 행진곡이 깔리면 서 해설자의 흥분된 설명이 절정을 이룬다.
'절망속에서 허덕이는 국가와 민족을 위해서 용감하게 앞장 선 박정희 의장은 이번에 가진 14일 동안에 걸친 미국방문의 여정에서는 도약하 는 한국의 새로운 모습과…' (계속).
(조갑제출판국부국장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