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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재석의 브리핑
 정재석의 브리핑
 
 '한강의 기적'을 이루는 데 견인차역할을 한 경제기획원(EPB=Eco nomic Planning Board)이 창설된 것은 1961년7월22일이었다. 초대 원장(부수반)으로는 재무장관에서 영전한 김유택이 임명되었다. 송 요찬 내각수반은 기획원 발족에 즈음한 담화문에서 '과거에는 경제 정책을 수립하여 그 집행을 감독하고 경제부처를 종합조정하는 기관이 없음으로 해서 각부처간에 유기적인 협조가 이루어지지 못하고 가용자원의 효율적인 사용에 많은 저해를 받아왔다'고 지적했다.
 
 그는 '과거의 경제정책이 나열주의에만 그치고 이를 조직화하고 일원화하는 기능이 박약하였던 결함을 거울삼는 한편 경제의 합리적인계 획수립과 강력한 집행, 지속적인 조정, 계획적인 평가의 네 가지 요 소가 실제 운영면에서 반영되어 경제상황이 실질적으로 성장발전되기를 크게 기대해마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이날 최고회의는 유원식 재경위원회 위원을 위원장으로 하고 정소영 등 네 사람의 실무자들 이 만들어낸 '종합경제재건계획'을 발표했다. 최고회의는 건설부, 한국은행, 기획위원회에서 각각 작성한 경제개발계획을 종합한 이 재건계획을 발표하면서 '각계 각층의 기탄 없는 비판을 요망하며 그 러한 비판을 종합하여 최종안을 작성할 것이다'고 했다.
 
 경제기획원은 신설된 것이 아니고 건설부가 확대개편된 것이었 다. 이 건설부는 지금의 건설교통부와는 관계가 없는 부서이다. 이 건설부는 민주당 시절의 부흥부가 혁명 직후 이름을 바꾼 것이다.그 사연은 이렇다.
 
 5·16직후 군사혁명이 성공하고 있는지 미국의 반대로 실패할 것 인지 아직 불투명하던 때였다. 부흥부 장관으로 임명된 박기석대령 (2군 사령부 공병참모)은 조사과장 정재석(69·뒤에 상공부 장관,교 통부 장관, 부총리 겸 경제기획원 장관 역임)을 불렀다.
 
 '방금 군사혁명위원회로부터 내일 아침 여덟시에 열리는 회의에 부흥부를 획기적으로 확대개편하는 방안을 보고하라는 긴급지시를 받았으니 밤새에 어찌 하면 좋겠소?'.
 
 정과장은 내심으로 '이런 중요한 안건을 밤새에 만들어내라니 혁 명위원회란 데가 참으로 무지막지하구나'하고 생각했다. 다행히 부 내에서 이와 비슷한 연구를 해놓은 자료가 있기 때문에 당황할 일은 아니었다.
 
 '대안은 곧 마련할 수 있습니다만 정식안건으로 만드는 것은 어 렵습니다. 더구나 사안이 중요한 만큼 간부회의에서 검토를 해야 하 니 보고 일자를 하루만 연기받았으면 좋겠습니다.' '연기는 어려우니 밤샘을 해서라도 소신껏 작성해서 브리핑으로 대신합시다.'.
 
 정재석은 준비가 되어 있었던 개편안을 가지고 근처 여관에 들어 가서 '1안 경제기획원' '2안 개발부'로 정리하여 두 장의 차트로 만 들었다. 민주당 정권하에서도 중앙기획기구를 만들어야 한다는 생각 을 하고 재무부 예산국장 이한빈, 부흥부 기획국장 이기홍 등 네 사 람으로 조직된 정부기구개편소위를 가동하고 있었다. 정재석은 이 소위의 간사였다. 다음날 정재석은 옛 국회의사당을 점거하고 있던 최고회의 사무실로 갔다. 들어가보니 결전을 앞둔 작전지휘본부에 찾아간 느낌이었다. 혁명위원들은 전투복차림에 권총을 차고 숙연히 앉아 있었고 정면에는 낯이 익은 장도영 육군참모총장과 함께 낯선 소장이 앉아 있었다. 한 대령이 개회를 선언하자 위원들은 일어서더 니 혁명공약 6개항을 제창하는 것이었다.
 
 패기만만한 정재석 과장은 생소한 분위기에 압도되지 않고서 부 흥부 확대개편안을 열성적으로 설명해갔다.
 
 '6·25전란의 부흥과업은 일단락되었으니 이제는 정부 주도하의 경제개발에 착수해야 합니다. 그러자면 중앙에 강력한 개발센터가 필요합니다. 부흥부의 주기능(기획과 조정)에다가 재무부의 예산국 과 내무부의 통계국을 흡수하여 내각 서열상 으뜸으로 격상시켜야겠 습니다. 명칭도 부가 아니라 경제기획원으로 하는 것이 타당하겠습 니다. 여러 부에 걸친 이런 대수술은 현 여건하에서는 당장 시행할 수가 없으므로 당분간 부흥부만을 개발부로 확대개편하여 시급한 제 1차 경제개발계획부터 입안케 하는 것이 좋을 듯합니다.'.
 
 이때 부흥부에는 기획국, 조정국이 있고, 산업개발위원회, 지역 사회개발위원회, 국토건설본부를 임시기구로 거느리고 있었다. 정재 석은 이런 내외 기구들을 통합하여 종합기획국, 물동계획국, 국토건 설국, 지역사회국으로 재편할 것을 건의했다. 정과장의 보고가 끝나 자 장도영 의장은 사회봉을 치켜들어 치려다 말고 멈칫 옆 자리를 돌아보면서 '참, 어떻게 처리하지요?'라고 묻는 게 아닌가. 그제서 야 정재석도 이 과묵하게 생긴 소장이 바로 혁명을 주도했다는 박정 희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박정희는 무뚝뚝한 표정으로써 이렇게 말했다.
 
 '귀관의 보고내용은 우리 혁명군의 의욕을 잘 반영한 것 같소.건 의한대로 우선 제2안을 채택해서 경제 제1주의를 실천토록 하겠고 앞으로 혁명기반이 어느 정도 잡히는대로 1안의 경제기획원으로 옮 겨가겠소. 한 석달쯤 걸리겠지. 따라서 내용은 보고안대로 결정하되 2안의 개발부 명칭만은 건설부로 고쳤으면 하오.'.
 
 정재석 과장은 반론을 폈다.
 
 '그것은 곤란합니다. '개발'이라고 하면 국민경제 전체를 포괄하 는데 '건설'이라면 한 부문에 한정되므로 이는 부흥부의 확대강화가 아니라 오히려 축소요 약화가 됩니다' '물론 이론적으로는 그렇겠으나 개발이란 말은 나에게도 생소한 데 어찌 일반 국민들이 알아듣겠소. 귀관의 보고도 우리나라를 적극 적으로 건설하자는 뜻인 것 같으니 국민이 알아듣기 쉬운 건설부로 합시다.'.
 
 정재석은 승복하지 않았다. 그는 '개발'이란 말이 국민들 사이에 널리 퍼져가야 한다는 소신을 갖고 있었던 것이다.
 
 '만약에 건설부라고 부르게 되면 주무국을 국토건설국으로 바꾸 어야 합니다. 정녕 건설부란 명칭을 원하신다면 경제건설부로 하든지 아니면 개편을 일단 보류했다가 경제기획원으로 전환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혁명가는 어디 경제만을 건설하자는 것인가. 정치도, 사회도,문화도 다 건설해야지.'. ( 계속 ).
 (조갑제출판국부국장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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