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소영의 증언
미국 방문을 마치고 귀국한 박정희의장은 최고회의 간부들에게 방미 결과를 들려 줄 때 비공식 수행요원으로 데려갔던 당시 29세의 정소영 (뒤에 경제수석, 농수산부 장관 역임)박사를 극구 칭찬했다.
'케네디 대통령을 만나기 전날 밤에 정 박사와 경제개발 5개년 계획 을 어떻게 설명할 것이냐를 두고 말을 많이 했지. 정 박사가 그때 중요 한 점들을 지적해 주어서 이번 회담이 아주 잘 됐어.'.
수 차례에 걸친 이런 칭찬은 정소영 박사를 경제개발 계획에 참여시 킨 최고회의 재정경제위원 유원식준장을 포함한 많은 최고위원들에게 전해졌다. 박정희 소장을 중심으로 한 장교단은 정권을 장악하자 바로 경제건설을 서둘렀다. 당시 최고회의 법사위원장 이석제(감사원장역임) 의 회고--.
'혁명 전 우리는 민주당 정부가 구상했다는 경제개발 계획 문건을 한 번구해 보려고 무척 노력했지요. 국방대학원에서 공부할 때 정부 관 료들이 경제개발 청사진이 있다고 합디다. 그런데 구체적으로 뭐가 어 떻게되어 있는지를 알아야 추종을 하든지 비판을 하든지 하지요. 한 번 만이라도 보면 기본적인 통계가 나와 있을 테니까 우리들도 어떻게 머 리를써 보겠는데 이게 잘 구해지지 않았습니다. 우리 혁명 주체들의 가 장 큰 약점은 경제를 모른다는 점이었습니다.
막상 혁명을 성공시키고 나니 초조했습니다.' 5·16 거사가 성공했다고 판단이 선 사흘 뒤 박정 희소장은 유원식 당시대령에게 사람을 찾는 일을 맡기면서 선정 기준을 제시했다. 첫째는 젊고참신한 인물, 둘째는 실력이 있고 경제개발을 공 부했거나 계획 입안의 경험이 있는 인물, 셋째는 학계·금융계 등 광범 위한 계층의 인물을 찾을 것.
유원식은 개성이 강하고 고집은 셌지만 혁명정부의 과도기에 중책을 맡아 열심히 뛰었다. 유원식 대령이 고른 사람들은 송정범(당 37세·뒤 에 경제기획원 부원장·도로공사 사장 역임), 백용찬(당시32세·뒤에 농협이사·수협이사 역임), 김성범과 정소영 등이었다.
송정범은 자유당 시절 부흥부 기획국장과 조정국장을 지낸 뒤 공직 을 그만두고 쉬고 있던 중 혁명정부로부터 불려 나왔다. 송정범은 다른 세 사람과 달리 경제기획원을 창설하는 역할을 맡게 된다.
김성범은 산업은행에서 근무하던 중, 민간인으로서 5·16 모의에 자 금을 댄 남상옥(타워호텔 회장)의 추천을 받아 경제계획의 작성에 참가 하게 되었고, 2차산업 분야를 주로 담당하게 되었다. 백용찬은 고려대 학교 경제학과를 나와 대학강사로서 1959년에 부흥부 산업개발위원회에 보좌위원으로 참여한 경력을 가졌다. 그는 쿠데타 주체세력의 한 사람 인 박태준(현 자민련 총재)대령의 추천을 받아 관여하게 되었으며 1차 산업을 담당했다. 정소영은 미국 워싱턴 대학교에서 경제학 박사학위를 받고 학교에 머물던 1959년 9월, 송인상재무장관이 세제개혁을 위해 미 국에서 초청한 조세 고문단의 일원으로 귀국하게 된다. 한창 작업을 하 던 중 4·19혁명이 일어나 조세 고문단이 해체되고 모두 돌아가게 되었 다. 미국으로 돌아가려던 정소영은 김영선재무장관이 재무부사세과장 으로 일하도록 강권해 근무하던 중 5·16을 맞았다.
혁명 직후 이들은 영문도 모른 채 헌병들에 이끌려 최고회의로 불려 들어갔다. 경제기획원을 창설한 뒤 부원장을 역임하게 되는 송정범의 증언--.
'1961년 5월18일로 기억됩니다. 후암동 집에서 낮잠을 자고 있는데 헌병두 명이 소환장을 들고 찾아 왔더군요. 가슴이 철렁 내려 앉았지만 별잘못한 일이 없어 남방셔츠 하나만 걸치고 따라 나섰습니다. 처음 간 데가 육군 본부였습니다. 언뜻 보니 어수선해서 도무지 일에 두서가 없어 보였습니다. 영관 장교 한 사람이 나를 찾더니 태평로에 있는 최고회 의로 가라고 합디다. 가서 만나는 사람마다 물어 보아도 날 찾은 일이 없다는 겁니다. 나는 멋쩍게 집으로 돌아오고 말았습니다.'.
정소영은 5월19일 무장헌병들에 의해 최고회의로 연행됐다. 정소영 은 이날 유원식 대령과 만나 처음 인사를 나눈다.
'곧 박 장군을 만나게 될 겁니다만, 여기서 제가 약간 말씀을 드리 겠습니다. 박 장군께서 제게 특명을 내리셨습니다. 이 나라의 경제건설 을 완전히 새로 해야겠는데,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을 작성해 주시오. 그 멤버는 자유당과 민주당 각료를 철저히 배제하고 소장파로 구성하란 말 씀이 계셨습니다. 그래서 정 박사와 몇 사람을 모셔 부탁하기로 했습니 다.'.
며칠 뒤 다시 최고회의로 불려나간 정소영은 백용찬과 김성범 두 사 람을 만나 서로 인사를 나누었다. 잠시 후 세 사람은 박정희 부의장 집 무실로 들어 갔다. 30세 전후의 이들이 절반쯤 겁먹은 채 들어서니 박 정희소장은 '정말 반갑습니다'라며 의자를 권한 뒤 담배를 한 개피씩 손수돌리고는 라이터로 불까지 붙여 주었다.
'우리가 혁명을 한 것은 도탄에 빠진 국민들을 잘 살게 하기 위해서 입니다. 지금도 보릿고개를 넘지 못해 굶어 죽는 사람이 많습니다. 이 5천년 묵은 가난을 해결하지 않고서는 아무 것도 할 수 없습니다. 그런 데 기본 마스터 플랜이 있어야 하고, 그것은 경제개발 5개년 계획 정도 는 돼야 하는데, 여러분들이 서둘러 국민들에게 희망을 줄 수 있는 실 천 가능한 계획을 작성해 주시오. 여러분들이 수고를 좀 해 주셔야겠습 니다.'.
박정희는 이승만 전 대통령에 대한 이야기도 했다.
'나는 이박사를 존경합니다. 애국자시고, 훌륭한 분입니다. 그런데 두 가지 면에서 마음에 안드는 것이 있습니다. 첫째로 민주주의를 하는 것은 좋은데 이 분은 미국식 민주주의를 그대로 옮겨 토양도 다른 이곳 에 심으려 했던 겁니다. 국민성과 사회 여건이 다른 데 외래 정치사상 을 그대로 이식하려 한 것이 마음에 안듭니다. 두번째는, 경제건설에 도무지 신경을 쓰지 않았다는 겁니다. 국민들이 가난에 찌들려 있어도 미국 원조나 받고, 두 발로 일어서려는 정책을 전혀 고려하지 않았다는 겁니다.'.
박정희는 이런 말로 마무리를 지었다.
'혁명은 우리가 일으켰지만 젊은 여러분들이 뒤를 받쳐 주어야 합니 다. 우리가 혁명을 한 목적은 국민을 잘 살게 하려는 것입니다. 경제를 일으키려면 우선 종합적인 계획이 있어야 합니다. 그 계획을 여러분들 이 짜주셔야하겠습니다. 내가 유대령에게 말해 놓을테니 어려운 일이 있으면 유대령이 적극적으로 해결해 줄 겁니다.' ( 계속 ).
(조갑제출판국부국장기자) (이동욱월간조선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