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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본행
 육본행
 
 '무슨 일입니까.'.
 
 정보부장 승용차 안에서 정승화총장이 이번에는 추궁하듯 강하게 물었 다. 승용차는 세종로에서 청계천로에 접어들어 3·1고가도로로 향하고 있 었다. 김재규정보부장은 엄지 손가락을 펴서 치켜 세우더니 곱표를 했다.
 
 '각하께서 돌아가셨습니까? 정말입니까?'.
 
 김재규는 정총장의 이 물음에는 대답을 하지 않았다.
 
 '보안유지를 해야 됩니다. 적이 알면 큰 일입니다.'.
 
 김부장은 '경호차는 따라오는가'라고 하면서 뒤돌아보았다. 정총장이 다시 물었다.
 
 '어떻게 돌아가셨지요?'.
 
 '저격당했습니다.'.
 
 '외부의 침임입니까, 내부의 소행입니까?'.
 
 '저도 정신이 없어 모르겠습니다.'.
 
 정총장이 또 물었다.
 
 '누구 소행입니까?'.
 
 김재규는 말이 없었다. 정승화 총장은 직감적으로 경호실을 의심했다.
 
 [나의 선입견이 있었다. 차지철경호실장이 정치 경제 할 것 없이 모 든 분야에 손을 뻗치고 있어서 저 사람이 왜 그러는가, 야심이 있어서 저러는 것이 아닌가, 뭔가 큰 일을 저지를 것 같다는 생각을 한 일이 있기 때문이다. 만약 경호실이 반란을 일으켰다면 내가 정보부에 가서 는 안되고 전군을 지휘하여 필요한 조치를 취하려면 육군 벙커로 가야 하겠다고 생각했다(11월1일자 자필진술서)].
 
 정 총장은 자신의 회고록('12.12사건, 정승화는 말한다')에서는 더 구체적으로 차지철을 의심한 이유를 밝히고 있다.
 
 [그는 경호실 상황실에서 육군 예하 사단과 직통전화를 연결하여 지 휘관들을 멋대로 불렀다. 자기가 육군참모총장이나 된 것처럼, 청와대 경비를 위해 나가 있는 수도경비사령부 부대에 들러 나팔을 불게 하고 하기식을 한 인간이었다. 그는 군에 뿌리를 박으려고 애를 썼다. 일부 장성들이 찾아가서 알랑거리기도 했다. 나는 그의 배후에 이런 지휘관 들이 개입하지 않았나 의심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날 밤 대통령이 사고를 당했다는 말을 들었던 많은 정부요인들은 즉각적으로 '차지철의 소행'이라고 생각했다. 정승화 총장은 그중의 한 명일 뿐이다.
 
 김재규 부장의 승용차는 삼일고가도로에 올라갔다. 고가도로가 남산 정보부로 가는 길과 용산으로 가는 길이 갈라지는 지점에 다가가자 아 까 '남산으로 가자'고 했던 김재규부장이 앞 자리에 탄 박흥주대령을 향해서 말했다.
 
 '어디로 갈까. 부, 육본, 어디가 좋겠어?.'.
 
 당황스럽게 내뱉은 김재규의 이 말에 정총장이 대답을 가로챘다.
 
 '병력 배치를 하려면 육본으로 가야 하니 비 투 (B-2) 벙커로 갑시 다.'.
 
 이에 호응하듯 박흥주도 앞자리에서 '그게 좋겠습니다'라고 했다.다 시 정승화 총장이 '육본 벙커로 가세'라고 못박았다.
 
 이날 김재규의 머리에는 대통령 살해까지만 시간표가 입력되어 있었 다. 그 이후에 대해서는 한 치의 행동 계획도 없었다. 쿠데타를 성공시 키는 데 있어서 가장 중요한 지휘소의 위치까지도 생각해두지 않았다는 것은 이날의 대통령 살해가 즉흥적 결심의 결과였음을 이야기해준다.김 재규가 이날 밤 정보부로 가지 않고 육군본부로 가기로 결정한 것은 중 대실수였다.
 
 사태의 주도권을 장악하려면 자신의 명령이 통하는 정보부 로 가서 정부요인들을 거기로 소집해야지 그런 영향권에 속하지 않는 육군본부로 간다는 것은 쿠데타 사령부를 적진속에 두는 것이나 마찬가 지였다. 박정희와 차지철, 그리고 네 경호원의 암살은, 김재규가 불과 50분 전에 아무런 사전 예고 없이 측근에게 부여한 임무였는데도 전광 석화처럼 정확무비하게 실천되었다. 암살작전 지휘자로서 김재규는 과 감,신속, 냉철했다.
 
 그러나 박 대통령을 사살한 뒤부터는 자신이 저지 른 엄청난 상황의 무게에 눌려지리 멸렬한 행동을 보이게 된다. 대통령 을 쏜 뒤 맨발로 뛴 것부터가 그의 실패를 예고하는 것이었다. 박정희 를 죽이는 데는 성공했으나 그를 따라오는 죽은 박정희의 그림자로부터 는 탈출할 수 없었던 것이다.
 
 김재규가 이시점에서 어떤 생각을 갖고 있었는지를 엿보게 해주는 것은 그가 계엄사령부 합동수사본부에서 범 행 이틀 뒤(10월28일)에 작성한 자필진술조서이다.
 
 [범행 후의 대책에 대하여 말씀드리겠습니다. 가, 살해현장에 육군 총장과 차장보가 와 있도록 하여 거사가담 의식을 주어 장악하게 한다. 나, 육군총장을 포용하고 불응시 협박한다. 다, 즉시 각의를 소집하여 계엄령을 선포하여 각하유고사실을 3일간 보안유지한다. 라, 현장은 중 정건물임을 주장하여 중정 직원으로 하여금 조사하도록 하여 의도대로 처리한 다음 국민의 여론을 봐가면서 본인이 시해했다는 사실을 은닉하 거나 노출시킬 것으로 생각하였다. 마, 최종적으로는 군부는 국방을, 정보부는 정국을 맡도록 한다.]
 
 김재규가 자신의 이런 구상을 실천에 옮기려면 먼저 지휘소를 정보 부 안에 설치하고 궁정동 현장을 봉쇄하며 시해상황에 대한 보안을 유 지해야 했다. 김재규는 이날 밤 한번도 박선호에게 현장을 봉쇄하라는 지시를 하지 않았다. 대통령의 사체 처리에 대해서도 아무 지침을 주지 않았다.
 
 대통령을 살해한 직후 김재규는, 김계원에게는 보안을 유지하도록 하고 국무회의를 소집하여 계엄령을 펴게 한 뒤에 정승화 총장이 계엄 사령관으로서 실권을 잡게 되면 친분이 있는 정 총장을 통해서 자연스 럽게 사태를 장악한다는 정도의 막연한 생각을 하고 있었던 것 같다.
 
 김재규에 대한 군내에서의 평가는 그리 높지 않았다. 김재규는 다만 정승화 장군이 육군참모총장으로 임명되는 데는 일조를 한 적이 있었다.
 
 그는 박 대통령의 특명을 받아서 국군보안사 참모장 출신인 정보부 감찰실장 김학호에게 3군 참모총장 후보들에 대한 평가서를 만들게 하 여 대통령에게 보고한 적이 있었다. 육군참모총장 후보로는 정승화 당 시 1군사령관이 1위로 올라갔었다. 김재규는 그런 인연 때문인지 정 총 장에 대한 자신의 영향력을 과대평가하고 있었던 것 같다. 정승화 총장 이 차중에서 김재규의 육본행을 유도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도 유의해 볼 대목이다.
 
 정승화 총장은 본인의 의사와 관계없이 김재규에 게 이용당한 면이 있긴 하지만(김재규가 박선호, 박흥주에게 군부와 손 잡고 유혈쿠데타를 한다는 믿음을 주는 데 이용당했다) 사태수습의 사 령부를 군부 안으로 끌고감으로써 이날 밤의 주도권을 김 부장에게 주 지 않았던 것이다. [계속]
 
 [조갑제 출판국부국장·이동욱 월간조선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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