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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차 5개년 계획안의 확정
 1차 5개년 계획안의 확정
 
 경제기획원장의 부수반 신분 문제는 논란끝에 법제처장이던 헌법학자 박일경이 해결의 실마리를 풀었다. 박처장은 경제기 획원장을 동등한 지위의 국무위원인 각부 장관으로 두되 내각 수반이 직무를 수행할 수 없을 때는 경제기획원장이 그 직무를 대행할 수 있도록 하는 서열로 결론지었다. 이 전례는 나중에 부총리제도로 확정된다.
 
 이 와중에 송정범이 박정희 의장을 찾아가 '경제기획원 조 직문제는 논란이 많아 곤란할 것 같습니다'라고 했더니 박의장 은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목적과 수단이 좋으면 그대로 밀고 나가시오. 정책은 일관 성이 있어야지 이리저리 흔들리면 나중에 되는 일이 없습니다.'.
 
 박정희 의장이 주재하는 최고회의에서도 우여곡절이 많았 다. 최고위원들이 저마다 경제기획원안에 대해 비판적으로 질문을 하곤 했다. (송정범의 회고)
 
 '그때는 인플레, 실업, 식량부족으로 좌절감에 젖어있는 국 민에게 미래상과 그 수단을 제시해야 할 절박한 처지에 직면해 있었습니다. 경제를 잘 모르던 최고위원들은 이런 초조함 때문에 더 비판적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박정희 의장은 이 강 력한 개발기구의 원안을 전면적으로 지지하고 나섰어요. 그는 정교한 수사를 동원하지 않고 이 기구로 5개년 계획을 밀고 나 가자고 결론지었습니다. 아무도 반대를 못했지요.'.
 
 혁명정부는 7월22일 건설부를 폐지하고 경제기획원을 신설 하는 경제기획원 직제 및 국토건설청 직제안을 공포했다. 경제 기획원 초대원장은 한은총재와 재무장관을 지낸 김유택이 기용 되고 산파역을 맡은 송정범은 부원장을 맡았다. 이후 경제기획 원장이 경제부처를 통솔하고 경제장관회의를 주재하는 제도가 정립되기 시작했다.
 
 박정희 의장으로부터 최고회의판 '종합경제재건계획'을 참 고하여 '제1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을 수립하란 지시를 받은 경제기획원장 김유택(뒤에 부총리 역임)과 부원장 송정범(뒤에 도로공사 사장 역임·현 한국산업정책연구소 이사)은 회의를 열었다.
 
 '시멘트 공장을 만들자' '제철소가 있어야 한다' '정유공장 을 건설하자'발전소가 모자란다' '비료공장을 세우자' 등 많은 의견들이 쏟아졌다. '고속도로를 닦아야 한다'는 의견도 제시됐 다. 방법론은 없고 목표만 내세우는 들뜬 분위기였다.
 
 경제기획원이 맨 먼저 봉착한 문제는 성장률이었다. 최고회 의를 통해 발표된 '종합경제재건계획'에서 결정한 성장률은 연 평균 7.1%였는데 이병철 삼성물산 사장이 회장으로 있던 한국경 제인협회(전경련의 전신)에서는 경제성장률이 최소한 연 10%는 되어야한다고 주장했다. 반면, 학계에서는 '외국에서도 7% 성장 의 예가 없다' '돈도 없는데 어떻게 7.1%의 성장을 바라는가'라 며 탁상공론이라고 비판했다.
 
 송정범은 IBRD(세계은행) 산하 경제개발 연구원에 있으면서 배운 지식을 활용했다. 개발정책을 다룬 각국의 경험자들은 성 장률을 책정할 때 정치적인 목표치로서의 성장률을 절대로 피해 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들은 송정범에게 '실업자를 구제하기 위 한 최소치를 기준으로 삼으라'고 충고했다. 송정범은 이 충고에 따라 기준치를 정한 뒤 수출정책을 고려해 연평균 성장치를 책 정했다고 한다. 그 결과는 최고회의판 종합경제재건계획에서 제 시한 7.1%와 맞아 떨어졌다. 송정범은 '결과적으로는 재계와 학 계의 중간치처럼 보이지만 실은 계산에 의한 결과'라고 증언했 다.
 
 경제기획원에서 두번째로 봉착한 문제는 농어촌 발전계획이 었다. 박정희 의장은 기회가 있을 때마다 '농촌을 잘 살게 해야 한다'고 강조했지만 고도성장을 위해서는 1차 산업의 '상대적 후퇴'를 감수해야 할 처지였다. 상공부와 농림부간의 마찰도 컸 다. 송정범 부원장이 박정희 의장에게 이런 갈등을 보고하면 박 의장은 '서로 협의를 잘 해서 타결짓도록 하시오'라고만 했다.
 
 결국 대외발표만은 '농공병진정책을 추진하는 것'으로 하되 실제는 종자개량과 비료공장 건설을 고려한 선에서 공업화 중심 으로 결정을 보았다.
 
 송정범은 외자는 자유롭게 도입할 수 있도록 결정했다. 국내 저축이 모자라고 미국의 원조도 감축되는 상태에서 외환보유고 도 부족하여 경제성장 전략은 자연스럽게 외자도입에 의한 수출 주도형으로 초점이 맞춰졌다.
 
 한국에 외자를 주려는 나라가 없다는 게 문제가 되자 경제기 획원은 외자도입 촉진위원회를 구성하기로 결정했다.
 
 제1차 경제개발 5개년계획의 윤곽은 10월말에 드러났다.
 
 ▲농업생산력의 확대에 의한 농업소득의 증대와 국민경제의 구조적 불균형의 시정 ▲전력, 석유, 석탄 등 에너지원의 확보 ▲기간산업의 확충과 사회 간접자본의 충족 ▲유휴자본의 활용, 특히 고용의 증대와 국토 보전 및 개발 ▲수출 증대를 주축으로 하는 국제수지의 개선 ▲기술의 진흥 등이 중점 목표였다.
 
 5개년 계획작업이 마무리 되어 가는 도중에 박정희 의장의 방미계획이 확정됐다. 방미목표는 케네디 대통령을 만나 혁명정 부의 정통성을 인정받고, 경제건설에 미국의 지원을 구하는 것 이었다. 경제기획원은 박의장에게 필요한 자료를 준비해 올리고 송정범은 세계은행(IBRD)등과의 협의에 골몰했다.
 
 박의장의 미국행에 천병규 재무장관과 송정범 경제기획원 부 원장이 공식 수행했다. 박정희 의장이 케네디 대통령과 만나는 동안 송정범은 미 국무부 해외개발처(AID) 해밀턴 처장과 실무 협의에 들어갔다. 미국측은 한국의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을 '지 나치게 의욕적인 계획'으로 평가했다.
 
 해밀턴 원조처장은 '7.1% 성장률을 목표로 정한 것은 선진국에서도 예가 없다. 제철, 정 유, 조선, 비료, 시멘트 공장을 세운다는데, 이것이 한국에 필요하다는 것은 납득하겠지만 그러나 한꺼번에 어떻게 하겠다는 것인가. 적어도 20억 달러 이상의 외자가 필요한데 한국에 누가 그런 많은 돈을 빌려 주겠는가'라며 난색을 표시했다. (계속).
 
 (조갑제출판국부국장기자) (이동욱월간조선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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