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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기획원의 産苦
 경제기획원의 산고
 
 건설부란 명칭을 둘러싼 부흥부 조사과장 정재석과 박정희소장 사이 의 공개적인 논쟁은 여러 최고위원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계속되었다.정과장이 또 반론을 폈기 때문이다.
 
 '당부는 원조 교섭 등 대외 협력상 영어명칭이 중요합니다. 앞으로 원조자금도 늘리고 외자도입도 촉진해야 하는데 부명을 Ministry of Construction이라 해서는 대외 설득력이 약해집니다'.
 
 박정희는 잠시 생각에 잠기더니 이렇게 입을 뗐다.
 
 '좋아, 그러면 우리 말로는 건설부라고 하고 영명은 원안대로 Ministry of Development라고 함세.'.
 
 박정희는 스스로의 기지에 놀란 듯 벌떡 자리에서 털고 일어서버리 는 것이었다. 장도영 의장은 들었던 사회봉을 칠 여유도 없었다. 이렇 게 하여 탄생한 건설부는 그 뒤 두 달 동안 재무부로부터 예산국, 내무부로부터 통계국을 흡수했다. 건설부 산하의 국토건설국은 내무부의 토 목국을 흡수하여 국토관리청이 되었다. 건설부가 경제기획원으로 확대 개편된 후 국토건설청이 건설부로 승격된다.
 
 5·16 당시 37세였던 송정범(75·경제기획원 부원장·도로공사 사장 역임·현 한국 산업정책연구소 이사)은 자유당 시절 부흥부 기획국장과 조정국장을 지내면서 산업개발위원회에서 경제개발계획 작성에 참여했 다. 1960년 3월 송정범은 미국 워싱턴에 있던 세계은행(IBRD) 산하 경 제개발 연구원에 파견되어 경제개발과 관련한 교육을 받았다. 인도와 말레이시아 등 각국에서 경제개발에 참여한 여러 관료들이 강사로 나와 경험과 이론을 소개해 주었다. 미국에 머물던 당시 송정범은 예편한 뒤 미국에 와 있던 송요찬예비역 중장과 인연을 맺었다.
 
 1961년 3월경 귀국한 송정범은 잦은 기구개편으로 보직결정이 미뤄 지자 후암동 자택에 머물며 미국에서 공부하던 책을 읽고 소일하다가 5·16을 맞았다. 최고회의 재경위원 유원식대령을 통해 최고회의로 불 려나온 송정범은 '두서가 없고 정리도 안된 그곳에 출근하는 것을 단념 하고 집에서 책을 읽으며 한국은행 조사부에 나가 소일하고 있었다'고 한다.
 
 6월22일, 최고회의는 민간인 출신의 김유택(초대 경제기획원장)을 재무부 장관으로, 신태환(뒤에 통일원 장관 역임)을 건설부 장관으로 임명했다. 김유택 재무장관은 비서관을 통해 송정범에게 당면한 경제대 책에 대한 기안을 부탁했다. 송정범은 '혁명 뒤에는 해묵은 경제적 숙 제를 한꺼번에 풀고자 하는 것보다는 자유로운 분위기가 보장되는 시책 이 선행되어야 한다'는 논지로 기안을 작성했다.
 
 김유택 장관은 이 내용을 받아 들여 발표문을 작성하면서 송정범에 게 '뒤에 남을 만한 명구가 없을까'하고 물었다. 송정범은 서독(서)의 경제부흥을 주도한 에르하르트 부수상이 지은 '경쟁을 통한 번영·독일 기적의 경제학'이란 책에서 읽은 '라인강의 기적'이란 말이 떠올랐 다.라인강의 기적을 우리나라에서도 이뤄보자는 생각에 즉석에서 '한강 의 기적'을 발표문에 첨가했다.
 
 7월초가 되자 미국에서 인연을 맺었던 송요찬 예비역 중장이 내각수 반으로 부임하면서 송정범을 찾았다. 송정범이 가 보니 송수반은 '국방 연구원에서 두 사람을 차출했으니 함께 기획관청 창설(경제기획원)에 대해 연구해 보라'고 구두로 명령을 내렸다. 송정범은 부흥부 국장시절 국방연구원에서 한국 경제를 특강하기도 했는데 그때 자신의 강의를 들 었던 김모, 박모 대령이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세 사람은 중앙청옆 국 립영화연구소 시사실을 빌어 조직구성 작업에 착수했다. 유난히 무더운 날씨속에서 세사람은 머리를 짜내기 시작했다. 나라 살림의 틀을 새롭 게 짜고 능률을 높이자면 어떤 모양의 기구가 적합한지, 새롭게 등장할 기획관료들이 틀에 짜여진 기존 부처와 원만한 관계를 유지할 수 있을 것인지 등등의 문제가 머리를 복잡하게 만들었다. 송정범의 회고--.
 
 '사실로 볼 때 1948년 정부수립 당시 국무총리 밑에 기획처가 있어 예산을 편성하는 기능까지 갖추고 있었지만 건국초기의 혼란 밑에서는 개발계획을 전제로 한 기능은 상상조차 할 수 없었습니다. 1955년에 등 장한 부흥부는 원조 업무에만 편중되어 예산 편성권은 재무부에 속해 있었습니다. 단적으로 말해 재원이 두 곳에서 분리 운영된 2원제였지 요. 이런 단점을 해결하자면 재원을 한 곳으로 모아야 했어요. 우리가 얻은 첫번째 결론은 계획과 예산의 일체화가 필요하다는 것이었습니 다.보다 큰 문제는 경제기획원장의 기능과 행정상의 지위 문제였어요.'.
 
 송정범은 계획과 수립, 실행과 조정에 강력한 실천력을 주자면 경제 기획원장에 부수반 신분격을 덧붙여주지 않는다면 기구가 발족해도 기 능을 제대로 발휘할 수 없다는 점을 강조했다.
 
 '해외의 사례도 참조했습니다. 행정관서의 영역이 오랜 전통으로 굳 어진 일본의 경우 경제기획청을 두고 있지만 조정력이 거의 없었습니 다. 인도의 '플래닝 커미션(Planning Commission)'도 부처 사이의 요구 를 배분만 하고 있어 우리나라 실정에 맞지 않았습니다. 세계은행에서 비교연구된 개발기구에 대한 자료와 미르달 교수의 '경제이론과 저개발 지역'이란 책은 참조할 만했지요.'.
 
 송정범과 두 대령은 경제기획원 설치안을 만들어 내각에서 세 차례, 국가재건 최고회의에서 한 차례 보고·설명회를 가졌다. 내각에서는 경제기획원의 권한이 지나치게 강하다는 논란이 일어났다. 송정범에게 경 제대책기안을 의뢰했던 김유택 재무장관조차 재정과 금융의 보완관계를 들어 '예산국의 이전은 전통적인 재무부 기능을 없애려는 것'이라며 반 대했다. 의견백출의 전시장 같았다. 내무부의 통계국만 이전이 순조로 왔다. ( 계속 ).
 
 (조갑제출판국부국장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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