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산공업센터 기공
박정희 대장이 이끄는 혁명정부는 산업자본을 동원하려는 통화개혁을 극비리에 추진하는 동시에 울산공업센터 건설계획도 밀고 나가고 있었다. 정래혁 당시 상공부 장관은 '처음부터 자연스럽게 울산이 공단건설의 적지로 떠올랐다고 한다.
'철강, 석탄, 석유 등 중량물들은 바다로 운송되어야 하고 공업용수 가 있어야 합니다. 울산은 바다와 태화강을 함께 끼고 있고 일제시대에 이미 이곳에 정유공장을 옮기는 등 공단으로 조성할 계획을 세웠던 곳 입니다. 박정희 의장은 일본의 콤비나트 같은 개념을 생각한 것 같습니다. 종합제철, 정유공장, 비료공장 등 큰 시설들을 한 군데 모아서 연관효과를 높이려는 구상을 갖고 있었습니다. 미국의 대한원조기구 유솜의 책임 자인 킬렌 처장은 한국측이 너무 서둔다고 불평하기도 했습니다.'.
1940년대에 일본은 조선축항주식회사를 통해서 울산을 인구 50만 명 규모의 공업도시로 건설하기로 하고 축항공사를 시작했다. 경제기획원 산하의 국토건설청은 이 조선축항주식회사의 계획서를 입수하였다. 이 문서를 토대로 자체 조사팀을 편성, 울산이 대규모 공단으로 적합한지를 검증했다. 조사팀장은 뒤에 울산공업센터건설본부장이 되는 안경모였다. 조사팀은 울산이 적지란 판단을 내리고 보고했다. 1944년 일제는 원산에 있던 정유공장의 일부를 뜯어 울산으로 옮기던 중 패전을 맞았다. 6·2 5전쟁 때는 유엔군의 유류보급기지가 울산에 자리를 잡았다. 1954년엔 삼양사가 제당공장을 이곳에 건설했다. 조선축항주식회사 사장 이케다 (지전우충)는 일제 시대에 조선총독부 철도국 해륙연락시설 담당이던 안 경모를 자주 찾아와서 울산공업도시 건설계획을 털어놓고 한 사이였다. 6·25전쟁중에도 안경모는 유엔군의 유류보급기지 공사를 지휘했고 철도 부설을 해준 인연이 있었다.
안경모의 증언에 따르면 이병철삼성물산 사장이 회장으로 있던 한국 경제인협회(전경련의 전신)도 울산을 공단적지로 추천했다고 한다. 1962 년1월2일 박정희 의장은 부산 해운대에서 이병철, 이정림, 정재호, 남궁 련, 김주인 등 기업인들과 만나 대규모 공업단지 건설계획을 토의했다. 이자리에서 울산이 단지로 확정되었다. 당시 정보부 경제담당 고문이던 김용태(뒤에 공화당 원내총무 역임)도 기업인들을 만나고다니면서 울산 공단건설에 협력하도록 분위기를 조성한 인물이다.
무엇인가 가시적인 성과를 빨리 국민들에게 보여주어야 한다는 강박 감을 갖고 있던 박정희 의장을 비롯한 혁명주체들은 울산공업지구 건설 을 그런 상징적 사건으로 삼았다. 1962년 2월3일 경남 울산군 대현면 고 사리. 동해의 푸른 파도가 내려다보이는 야트막한 언덕, 나중에 유공의 정유공장이 들어서는 자리에서 '울산공업센터 기공식'이 열렸다. 박 의 장,송요찬내각수반, 최고위원, 이 공단조성계획에 반대했던 사뮤엘 버거 주한 미국대사를 비롯한 주한 외국인사절들, 그리고 국내 기업인들이 참 석했다. 이들은 서울에서 마산까지 특별열차를 타고 왔다. 구경꺼리로 알고 몰려드는 주민들을 위해서 장생포-울산 사이에 놓인 녹슨 철로에도 임시열차가 쉬지 않고 군중을 나르고 있었다. 겨울인데도 포근한 날씨였 다.
오후 1시15분부터 시작된 기공식에서 박 의장은 울산공업지구 설정을 선포했다. '대한민국 정부는 제1차5개년계획을 실천함에 있어서 종합제 철공장, 비료공장, 정유공장 및 기타 연관산업을 건설하기 위하여 울산 읍,방어진읍 등지를 공업지구로 설정한다'는 내용이었다. 아직 들어설 공장들의 건설주체나 부지도 결정되지 않은 상태에서 서둘러 기공식을 올린 것이다. 박정희 의장의 이날 축사는 그 내용이나 열정에서 그가 한 여러 번의 역사적 연설 가운데 하나로 꼽힐 만하다.
'4천년 빈곤의 역사를 씻고 민족숙원의 부귀를 마련하기 위하여 우리 는 이곳 울산을 찾아 여기에 신공업도시를 건설하기로 하였습니다. 이는 루르의 기적을 초월하는 신라의 영성을 재현하는 것이며 이것은 민족재 흥의 터전을 닦는 것이고 국가 백년대계의 보고를 마련하는 것이니 자손 만대의 번영을 약속하는 민족적 궐기인 것입니다. 제2차 산업의 우렁찬 건설의 수레 소리가 동해를 진동하고 공업생산의 검은 연기가 대기 속에 뻗어나가는 그날엔 국가민족의 희망과 발전이 눈앞에 도래하였음을 알수 가 있을 것입니다. 빈곤에 허덕이는 겨레 여러분! 5·16혁명의 진의는 어떤 정권에 대한 야욕이나 정체의 변조에 그 목적이 있었던 것은 아니 었으며 오로지 이 겨레로부터 빈곤을 구축하고 자손만대를 위한 영구한 민족적 번영과 복지를 마련할 경제재건을 성취하여야겠다는 숭고한 사명 감에서 궐기했던 것입니다. 이 울산공업도시의 재건이야말로 혁명정부의 총력을 다할 상징적 웅도이며 그 성패는 민족 빈부의 판가름이 될 것이 니온 국민은 새로운 각성과 분발, 그리고 협동으로써 이 세기적과업의 성공적 완수를 위하여 분기 노력해주시기 바라마지 않습니다'.
이날 기공식이 끝난 뒤 참석자들은 경주 불국사호텔에서 연회를 가졌 다. 동석했던 김용태에 따르면 이 자리에서 미국의 유솜 처장 킬렌은 '자본, 기술, 자원이 모두 부족한 한국이 이런 대규모 공단을 조성한다 는 것은 시기상조다'라며 축하 분위기에 찬물을 끼얹는 발언을 했다고한 다. 울산공업단지건설을 추진하는 데 있어서 핵심적 역할을 해왔던 김용 태는 '평소에도 반대하더니 이런 자리에 와서도···'라는 생각에서 순 간적으로 울분이 치솟아 킬렌의 멱살을 잡고 흔들었다고 한다.
그 3년 뒤 김용태가 국회의원들을 이끌고 월남을 방문하니 킬렌은 그 곳의 원조기관에서 근무중이었다. 킬렌은 반갑게 손을 내밀면서 말하더란 것이다.
'울산공업단지에는 많은 공장들이 들어섰다면서요? 그날 기공식 때는 내가 실언을 했습니다. 사과합니다.'.
김용태는 미국이 울산공업단지 건설에 반대한 것은 개발도상국을 시장으로 삼고 있는 그들이 혁명정부의 의욕적인 자립경제건설을 탐탁치 않게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이라고 해석했다. ( 계속 ).
(조갑제출판국부국장기자) (이동욱월간조선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