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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의 조폐공장
 영국의 조폐공장
 
 김정렴(75세)은 천병규 재무장관이 통화개혁 준비작업에 동원하기 위해 최고회의 유원식 위원에게 부탁하여 한은에서 정보부로 데려다 놓은 경우이다. 이것이 계기가 되어 공직을 다시는 맡지 않겠다는 김정렴의 인생행로가 바뀌게 된다. 1969년부터 9년간 대통령 비서실장 으로서 박정희를 보좌하면서 경제정책을 비롯한 국정에 크나큰 영향 을 행사한 김정렴. 그는 최근까지도 자신이 왜 정보부로 끌려가다시피 하여 그곳에 근무하게 되었는지를 몰랐다고 한다.
 
 천병규는 1988 년에 자신의 회고록 '천마초원에 놀다'란 제목의 회고록을 펴냈는데 김정렴은 거기에 실린 글을 읽고서야 자신의 정보부행이 결정된 배경을 알았다는 것이다.
 
 유원식의 지시를 받은 정보부 간부 강성원(공화당 국회의원 역임) 은 한국은행으로 연3일간 출근하다시피하여 김정렴에게 '정보부에 와 서 우리를 도와달라'고 부탁했다. 김정렴은 한은에서 재무부 이재국 장으로 파견된 뒤 관계에서 고생한 것이 잊혀지지가 않아 매정하게 거절했다. 나흘째 되는 날 한은 총재가 부르더니 '정보부에서 귀하를 지명하여 파견근무를 시키란 지시가 내려왔다'고 하는 것이었다.
 
 정식 인사명령에 불복하는 것은 자진 퇴직을 의미하는 것이다. 김정렴은 내키지 않았지만 정보부 정책연구실에 자문위원으로 출근하기 시작했다. 나가보니 최규하(전 대통령), 이종극, 김성희, 김운태, 박관 숙, 유진순 등 각계 전문가들이 일하고 있었고 김학렬(뒤에 경제기획 원장역임)은 이곳에서 일하다가 정부쪽으로 떠났다는 것이었다.
 김정렴은 이곳에서 현안 경제문제에 대한 의견을 써내면서 시간을 보냈다.
 
 그러던 어느 날 천병규 장관이 오더니 김정렴을 데리고 유원식 위 원을 소개시켜주고 돌아갔다. 유원식은 '김 선생 이야기는 많이 들었 습니다. 1953년2월의 긴급 통화금융조치를 기안했다면서요'라고 하더니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다.
 
 '통화개혁에 대한 연구를 좀 해주세요. 각국의 통화개혁의 실례, 우리나라 통화개혁시의 준비사항, 통화개혁의 구체적인 내용, 사후대책, 그리고 통화개혁안의 자체평가안에 대해서 참고하고자 하니 연구를 하셔서 보고서를 써주십시오. 통화개혁을 하겠다는 것은 아니고 다만 통화개혁에 대한 조사를 하는 것이니 쓸데없는 오해를 받지 않 기 위해서라도 보안이 유지되어야겠습니다'.
 
 유위원은 비밀작업에 적당한 장소라면서 서울시청 뒤의 한 건물 2층으로 김정렴을 데리고 갔다. 여자직원이 근무하는 부속실, 그 옆 에 잘차려진 집무실, 그리고 그 뒤쪽에 벽 전체에 검정융단의 커튼이 쳐져있는 방이 있었다. 김정렴은 혼자서 이 방을 쓰면서 통화개혁에 대한 보고서를 써올렸다. 유원식은 '수고했다'면서 '지금 주미대사관 경제참사관 자리가 비어 있는데 가지 않겠는가'라고 물었다. 김정렴 은 즉석에서 '좋다'고 했다.
 
 한편 비밀 통화개혁의 실무책임자가 된 천병규 재무장관은 새 지 폐의 인쇄장소를 생각하다가 영국에서 연수중 가본 적이 있는 토마스 데라루(Thomas De La Rue)조폐회사가 생각났다. 식민지를 많이 가졌 던 영국에는 여러 나라들의 화폐를 인쇄해주는 업종이 발달해있었다.
 
 유원식과 천병규가 배석한 가운데 송요찬 수반은 주한영국대사를 내각수반실로 불렀다. 송요찬이 입을 뗐다.
 
 '당신 나라에 화폐제조를 발주할 생각이다. 비밀 유지를 책임질 수 있는가. 우리의 화폐개혁계획을 본국 정부에 꼭 보고해야만 하는 가.' '보고는 해야 한다. 기밀유지는 책임진다. 인쇄 가능 여부는 본국 과 조회하여 이틀 후에 알려주겠다.'.
 
 이틀 뒤 영국대사는 '작업은 가능, 비밀유지를 책임진다'는 답을 해왔다.
 
 새 화폐를 발주하자니 권종별 인쇄 수량을 계산하는 문제가 남았 다. 천장관은 누구에게 물어볼 수도 없어 자신이 직접 한국은행의 통 계자료를 갖다놓고 어림짐작으로 계산해냈다. 그리고는 서독으로 차 관교섭을 위해서 떠나던 정래혁 상공장관에게 부탁하여 토마스 데라 루사와 인쇄계약을 미리 맺어두도록 했다. 천병규는 박정희 의장이 케네디 대통령을 만나러 가는 일행에 끼었다가 미국에서 바로 영국으 로 가기로 했다. 기자들의 추적을 따돌리기 위해서였다. 기자들 앞에 서 박정희 의장은 미리 짠 각본에 따라 쇼를 벌였다. 미국행 비행기 안에서 박 의장은 기자들이 들으라고 소리쳤다.
 
 '어이, 천 장관. 영국에서 초청을 받았다지?' '예, 각하. 이번 각하의 방미에 제가 수행한다는 것을 알고 영국 경제단체에서 저를 초청했습니다. 4-5일간 영국에서 시찰을 하도록 되어 있습니다.'.
 
 박정희 의장이 미국으로 떠나기 전에 유원식은 통화개혁에 대해서 비로소 김종필 정보부장에게 이야기해주었다고 한다. 워싱턴에서 박 의장 일행과 헤어져 영국에 도착한 천병규는 토마스 데라루사에 들렸 다. 천 장관은 먼저 다녀간 정래혁 장관과 이 회사가 화폐인쇄비를 6백46만 달러로 책정해놓은 것을 발견했다. 1961년도의 우리나라 수 출액은 3천8백만 달러였다. 토마스 데라루사가 디자인한 소액권의 크 기도 너무 작았다. 거의 우표딱지만 했다. 그런데 이 크기를 늘리면 인쇄비가 더 먹히게 되어 있었다.
 
 고액권의 장수를 늘리고 소액권의 장수를 줄이면서 크게 키우는 수밖에 없었다. 천병규 장관은 이렇게 하여 인쇄비를 4백50만 달러로 깎았다. 이때 발주한 지폐는 최고액권이 5백원으로 그 아래로 백원권, 50원권, 10원권, 5원권, 1원권이었다. 위조방지를 위해서 5백원권에는 금속선입특제지, 백원권 이하는 색사입특제지를 썼다. (계속).
 
 (조갑제출판국부국장기자) (이동욱월간조선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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