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조선  |  조선일보  |  독립신문  |  미래한국  |  올인코리아  |  코나스넷  |  라이트뉴스  |  리버티헤럴드  |  뉴데일리  |  뉴스파인더
    
   


기사 확대  기사 축소  

경제 가정교사 이병철
 경제 가정교사 이병철
 
 박정희는 혁명정부가 부정축재혐의로 구속했던 기업인들을 풀어주었 고,이들 13명은 한국경제인협회(전경련의 전신)를 창립하여 경제인들의 대정부 창구로 활동하면서 정부의 경제정책에 큰 영향을 끼치기 시작했다. 이 협회의 회장이 된 이병철 삼성물산 사장은 '갈피를 못잡고 있는 군사정부의 경제정책 방향과 전략에 우리가 돌파구를 마련해주고 실천 해보여주자'고 결심했다고 한다(전 전경련상근 부회장 '김립삼회고록').
 
 이때 기업인들은 쫑기는 기분이었다. 최고회의는 이들 기업인에게 부정축재에 따른 벌과금을 부과해놓고 있었다. 1961년12월31일까지 이 벌과금을 내지 않으면 다시 구속하겠다고 했다. 이병철은 박정희 의장 에게 호소하여 '국가가 필요로 하는 공장을 건설하여 그 주식으로 벌과 금으로 대납할 수 있도록 해줄 것'을 건의했다.
 
 '이렇게 해주시면 우리 기업인들은 시간의 여유를 갖게 되고 정부측 에서도 기업인들이 과연 국가에 해를 끼쳤는가 이바지를 했는가 다시 평가할 수있을 것입니다.'.
 
 박정희는 '그렇게 하면 국민들이 납득하지 않을 것입니다'라고 난색 을 보였다. 이병철도 지지않고 '필요하다면 국민들을 납득시키는 것도 정치라고 생각합니다. 경제인들을 활용해야만 경제건설도 가능하지 않 습니까'라고 말했다고 한다('호암자전').
 
 결국 박정희는 이병철의 건의를 받아들였다. 이병철은 한국일보에 기고한 글에서도 '부정축재자 처벌로써 제일 많은 피해를 입은 사람은 처벌통고를 받은 기업인이 아니고 국가와 국민대중이다. 1958년과 1959 년에 GNP(국민총생산)성장률이 평균 6.1%였던 것이 1960년과 61년엔 2.3%, 2.8%로 내려갔다. 다시는 소급법을 제정하여 경제사회의 발전을 저해하 는 일이 없어야 할 것이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기업인들은 기간산업을 맡아서 건설하되 그 재원으로서 외자를 도입 하는 길도 스스로 뚫기로 했다. 이들이 건설할 기간산업으로 정한것은 시멘트, 비료, 전기, 제철, 화학섬유, 정유산업이었다. 양회공장은 쌍 용의 전신인 금성방직이 맡기로 했다. 비료공장은 삼성과 삼호 및 조선 견직이, 전기는 대한제분이, 제철은 대한양회 극동해운 대한산업 동양 시멘트에서, 화섬공장 건설은 화신과 조선견직 및 한국유리가 단독 또 는 합작으로 추진하기로 했다.
 
 이병철과 극동해운의 남궁련사장은 거의 매일 박정희 의장을 찾아가 서 경제인협회에서 만든 기간산업건설계획안을 설명하고 이를 건설하는 데 필요한 여건조성에 대해서 대화를 나누었다고 한다. 박정희는 '제철 공장 하나만 해도 이를 건설하는 데 1억3천만 달러나 든다지 않습니까. 정부 보유불을 전부 투입해도 모자라는데'하면서 난색을 보였다. 이병 철은 그럴 때마다 외자도입으로 재원을 마련할 수 있다고 박 의장을 설 득했다. 달리 대안이 없던 박 의장은 기업인들의 설득에 귀를 기울이지 않을 수 없었다.
 
 이병철과 남궁련은 박 의장의 허락을 받고 1961년9월4일 미국 샌프 란시스코에서 열린 국제산업회의에 참석하여 외자유치 가능성을 탐색했 다.9월13일 한국경제인협회는 5개년 계획에 소요되는 민간외자도입추진 계획서를 마련해 최고회의에 제출했다. 9월18일엔 박 의장과 경제인협 회 회장단이 '당면 경제문제에 대한 의견교환'이란 회의를 가지고 외자 조달 방안을 논의했다. 이런 회의를 거쳐 협회가 마련한 것이 외자도입 촉진책이었다. 그 골자는 다음과 같았다.
 
 1. 개별기업의 교섭으로는 외자도입이 어려우므로 미국, 일본, 유럽 등 세 지역에 외자유치단을 파견한다(당시는 외국여행이 엄격한 허가사 항이었다).
 
 2. 민간차관도입시 정부가 지불보증을 해줄 것.
 
 3. 민간경제외교를 지원하기 위하여 해외공관에 상무관을 주재시켜 줄 것.
 
 4. 민간기업이 외국의 기술자와 기업가들을 자유롭게 초청하여 공장 건설등을 협의할 수 있도록 허가해줄 것.
 
 5. 외자에 의한 공장건설시 내자를 최대한 융자해주는 동시에 후취 담보제도를 마련해줄 것.
 
 6. 외자도입에 의한 기계반입시 가동에 필요한 원자재 수입을 허용 하고 그 판매대전으로 소요내자를 충당하는 방안을 강구해줄 것.
 
 7. 외국의 장기금융기관을 유치토록 할 것.
 
 8. 외자도입촉진법, 외환관리법, 이중과세방지조약 등을 추진해줄 것.
 
 박 의장은 외자도입을 하는 기업에게 파격적인 혜택을 주는 이 제안 을 받아들여 순차적으로 법제화해 갔다. 외자도입에 의한 공업화·수 출입국 전략의 기초가 된이 정부의 뒷받침은 한강의 기적을 가능하게 한 제도가 되었지만 동시에 정경유착을 배태하는 제도적 장치가 되었 다.
 
 이병철 같은 기업인들은 혁명정부가 농업우선의 균형성장 정책을 버 리고 공업과 수출중심의 불균형성장정책을 택하도록 하는 데도 적지 않 은 영향을 끼쳤다. 이병철은 박정희와 혁명정부 요인들에게 '후진성 탈 피의 지름길은 공업화뿐이오. 지금 이 시기를 놓치면 경제개발은 더욱 늦어지고 빈곤과 혼란의 악순환에서 벗어날 수가 없게 됩니다'라고 강 조했다. 이병철은 1962년초 한국일보에 기고한 글에서 이런 요지의 주 장을했다.
 
 <우리는 영국 산업혁명 이전으로 돌아가서 경제발전의 고전적 코스 를 밟아내려올 시간이 없다. 우리는 과감하게 그 순서를 바꾸어 공업화 를 먼저하고 대기업에서부터 출발하여 중소기업으로 내려가는 방식을 취해야 한다. 농촌을 구제하는 것은 과감한 외자도입에 의한 공업화를 통해서 가능하다. 외자도입은 미국을 주력으로 하고 배상금문제를 주안점으로 하는 일본, 그리고 독일·이태리·프랑스·네덜란드 순으로 중 점을 두어야 할 것이다.> (계속).
 
 (조갑제출판국부국장기자) (이동욱월간조선기자)
 
기사목록  프린트하기 

조선일보 | 스포츠조선 | 주간조선 | 소년조선 | 여성조선 | NK조선 | IT조선 | 잡지DB

서울특별시 종로구 신문로1가 163 광화문 오피시아 1729호  |  대표자 : 조갑제  |  사업자등록번호 : 101-09-63091
상호 : 조갑제닷컴  |  개인정보관리 책임자 : 김동현  |  전화번호 : 02-722-9411~3  |  팩시밀리 : 02-722-9414 |
    개인정보취급방침

발행인 : 조갑제 | 편집인 : 조갑제 | 등록번호 : 서울아00945 | 등록일 : 2009/08/24 | 국민은행 360101-04-065553(예금주: 조갑제닷컴)
webmaster@chogabj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