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트와 연탄가스와 전기
대한주택공사 이사장 장동운 중령은 외국 잡지에서 본 단지화된 아파트 사진을 서울 한복판에서 현실로 옮기려 했다. 마포 아파트 전에도 서울에는 아파트가 몇 군데 흩어져 있었다. 입주자들의 낮은 소득수준과 관리소홀로 아파트 하면 빈민굴이란 인상까지 줄 정도였다.
'저는 단지화된 아파트를 지어 중산층을 입주시킴으로써 아파트 에 대한 인상을 획기적으로 개선할 생각이었습니다. 김종필 정보부 장과 최고위원들을 만나 저의 발상을 설명했더니 모두 찬성했습니다. 건설자금은 유솜(USOM·미국의 대한원조기관)이 관리하던 대충 자금(미국의 원조물자를 판매한 대금)을 지원받을 생각이었습니 다.
그런데 유솜의 주택국장인가 하는 사람이 반대를 합디다. '1인 당 국민소득이 80달러인 나라가 엘리베이터를 수입할 돈을 어떻게 쓸 수 있나'는 거였습니다. 결국 전액을 국고로 짓게 되었는데 10 층으로 계획했던 것이 엘리베이터를 설치할 수 없게 되자 6층으로 낮춘 것입니다. 중앙난방시스템도 구상했지만 호화판이란 여론에 밀려 호실별 연탄 보일러로 바꾸었습니다. 수세식 화장실은 먹을 물도 부족한데 그럴 수 있느냐는 반대론에 직면했지만 관철시켰습 니다. 국내엔 양변기 제조업체가 없어 일본에서 수입했지요.
우리 나라를 대표하는 건축전문가, 학자들을 모아서 설계 자문위원으로 삼았지요. 외국에 가서 아파트 단지를 구경하고 설계한 것이 아니 고 우리끼리 머리를 맛대어 순한국식으로 만든 단지입니다. 9평형, 12평형, 15평형으로 만들었는데 임대 아파트로 운영하기로 했습니 다. 될 수 있는대로 많은 사람들이 아파트에서 생활하는 경험을 가 지도록 하고자 했기 때문입니다.'.
마포 아파트가 들어선 자리는 안양으로 옮긴 마포 형무소 안 야 채밭이었다. 법무장관은 이 부지를 서울시에 매각하려고 했다. 장 동운은 윤태일 서울시장을 설득하여 매입을 포기하게 하고 주택영 단이 헐값에 구입했다. 1962년12월1일에 1차년도분인 6개동 450호가 준공되었지만 의외로 입주자가 적었다. 10분의 1 정도만 입주해 놓으니 겨울에 파이프는 동파되고 연탄가스가 잘 빠져나가지 않았다.
주택공사(이때 대한주택영단은 주택공사로 명칭이 변경되었다) 에서는 입주자들을 안심시키려고 모르모트 여섯 마리를 구해서 여러 방에 가두어놓고 실험을 했는데 다행히 가스에 중독되지는 않았 다. 현장소장은 입주자들의 항의에 시달리다가 하루는 술을 잔뜩 마신 뒤 가스가 가장 많이 샌다는 방에 들어가 잠을 자는 일종의 인체실험을 감행하기도 했다. 장동운 이사장은 직접 아파트내의 생 활상태를 시찰했다.
'신문지를 휴지처럼 쓰고 생리대를 변기통에 처넣고 하다가 보니까 양변기가 막히는 등 첫 경험인 아파트 생활에 희비극도 많았습니다.'.
마포 아파트를 배경으로 한 영화가 제작되는 등 차츰 인상이 달 라지면서 여름부터는 프리미엄이 붙어서 임대되기 시작했다. 이 마포 아파트는 1992년에 재건축을 위해서 철거되었다. 그로부터 37년이 흐른 지금 한국인구의 약43%가 아파트에서 살고 있다. 장동운은 1968년에 다시 대한주택공사 총재로 돌아와서 동부이촌동에 한강맨션 아파트를 짓게 된다. 그는 '27∼55평의 큰 아파트를 지어 팔기 시작한 이 사업이 대성공함으로써 본격적인 아파트 시대가 열린 것이죠. 지금은 철거된 남산외인아파트도 이때 지었습니다'라고 했다.
'외국 잡지에 난 아파트 단지 사진만 참고로 하여 마포 아파트 를 짓고 있던 1962년에 로마로 여행을 갔다가 택시를 탔는데 운전 사가 아파트에 산다는 것이었습니다. 아파트 생활이 어떤 것인지 알고싶어서 운전사의 집을 구경해보았습니다. 겉에서 보기보다는 내부가 근사하고 편리한 것을 확인하고는 아파트 단지 건설의 타당성에 대한 확신을 가졌습니다. 그렇지만 이 정도로 확산될 줄은 꿈에도 몰랐습니다.'.
1961년 12월10일 박정희 대통령은 서울시의 공영주택 입주식에 참석하여 치사를 하는 가운데 원고 없이 이런 말을 했다.
'저녁을 먹으려고 밥상 앞에 앉으면 전깃불이 왔다가 갔다가 하 고 촛불을 켜면 전기가 들어왔다가 (촛불을)을 끄면 또 갔다가 왔 다가, 이렇게 갔다가 왔다가 했는데 금년 들어서는 가정에서도 철 야로 전깃불을 켤 수 있게되었습니다. 우리가 전원을 많이 개발한 것은 없습니다. 출력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서 이런 일이 일어났는가. 이것은 관리하는 사람, 취급하는 사람, 공무원, 담당관들이 부정하지 않고 정직하게 하니 그렇게 된 것입니다.
첫 째, 정부가 양심적이고 능률적이어야 합니다.
둘째, 국민들이 그런 정부를 신뢰하고 지지해야 합니다. 봉사하는 정부와 협력하는 국민 들이 서로 단합할 때 여기서 기적이 나타날 것입니다. 우리는 기필코 당대에 대한민국의 기적을 이룩해내야 합니다.'.
이즈음 박정희 대통령은 대소 행사에 자주 참석하여 연설을 많이 했다. 그 내용도 개탄, 분노, 호소, 훈계, 경고의 의미가 뒤섞인 격정적인 것이다.
<종전의 대학이 최고학부로서의 구실을 못하고 대학졸업자로서 응당 지녀야 할 지적 수준에 이르지 못한 자들을 부당한 제방법으로 대량 사회에 배출하여 일종의 사회문제까지 배태시킨 과거를 반성하고···>(담화문 '전국 대학교직자에게 고함').
<작금 본인은 비행기로 일선순시차 경기도와 강원도 지방을 날 던 도중 전답들을 살펴보았으나 응당 되어 있어야 할 추경(가을걷이)이 아직도 되지 못한 채 내버려둔 것이 허다히 눈에 띠었습니 다. 농민들 자신도 스스로 각성하고 근면하여야 하겠습니다. (중략) 추경성적이 나쁜 농가에 대해서도 앞으로 비료보상의 혜택을 재고 할 것입니다>(담화문 '가을갈이를 하자').
<병역을 필하지 못한 과오를 속죄하는 이 갸륵한 정신으로 이 위대한 건설사업을 추진해나간다면···>('국토건설단 창단식 치 사').
<1. 집앞에 습관적으로 버려둔 쓰레기나 오물은 깨끗이 치워야 할 것이다.
2. 짚이나 나뭇가지로 아무렇게나 만들어진 울타리와 담은 흙과 돌로써 아담하게 새로 쌓아야 할 것이며
3. 마을 앞을 흐르는 개천은 양쪽 제방을 돌로 쌓고 잔디를 입히고 나무를 심고 하는 등 손질이 되어 있어야하며
4. 길을 깨끗이 손질하고 양 옆에 나무를 심어 풍치를 돕게 하고···>('농민에게 드리는 부탁의 말').
(조갑제출판국부국장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