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재규체포 지시
국방부 장관실. 밤 11시를 지나서 유혁인 제1정무수석이 집으로 전 화를 걸었다. 기자들이 여러 차례 유수석을 찾는 전화를 걸어왔다는 것이었다. 유 수석의 이야기를 들은 김재규는 옆에 있던 김정섭 차장 보에게 조치를 취하라고 지시했다. 김차장보는 정보부의 국내담당 차 장인 전재덕에게 전화를 걸었다.
'기자들이 움직이기 시작했습니다. 4국장(기자주:통신담당)을 나오 게 하여 외신기자들이 송고하는 것을 체크해야 하겠습니다.'.
이때의 상황을 김재규는 자신의 의도대로 가고 있다고 생각한 것 같기도 하다. 체포된 다음 날 합수부 진술에서 그는 '국방부 장관실에 서 비상계엄 선포에 대한 제안설명에 대해서는 합의를 이루지 못했을 뿐 제주도를 제외한 전국에 계엄령을 선포해야 한다는 데에 대해서는 이의가 없었다'고 했다. 더구나 김재규는 합수부에서 한 이 최초의 진 술(10월28일자 제1차 피의자 진술조서)에서 아주 민감한 증언을 했다.
'거사도 본인이 구상한대로 적은 인원으로 성공이 되었고 대기시켜 놓고 있던 육군총장을 이용하여 군수뇌부와 각료들을 국방부로 유인하는 등 계획대로 성공이 되었고 비밀을 지키고 있는 김계원에게는 계엄 사령부를 혁명위원회로 유도하라는 방향을 제시하여 그대로 진행이 잘 되고 있다고 보고 있었는데 김계원의 배신으로….'.
이 진술이 이루어지고 있었던 당시는 아직 김계원이 연행되기 전이 었고 정승화 총장은 계엄사령관으로 취임한 다음 날이었다. 이 진술을 토대로 합수부 수사관들은 정총장을 연행하여 조사해야 한다고 전두환 합수본부장에게 건의하고 있었다. 김재규의 배후세력에 대한 우려가 가장 높을 때 김재규가 정승화 총장을 연루시키는 진술을 했고 많은 수사관들이 정총장을 의심하게 되었다는 이 점은 12·12사건으로 치닫 는 길을 여는 일이기도 했다.
밤 11시20분쯤 유혁인 정무수석이 김계원 실장을 국방부장관실 옆 방인 대기실로 슬며시 불러내었다. 그리고는 김계원에게 따지듯 말했 다.
'왜 말씀을 안하십니까. 우리한테는 가르쳐주시지 않아도 좋지만 이야기를 하십시오. 이래서 되겠습니까. 실장님이 오해받으십니다.'.
김계원 실장은 '어어, 알았어. 그렇겠구먼'하고 들어갔다. 김계원 의 합수부 1차진술서는 그 뒤의 전개과정을 이렇게 적고 있다.
<밤 11시30분경 총리, 법무, 내무장관들이 김재규의 주장을 따르지 않고 있어 나는 국방장관보좌관실로 가서 이름을 알 수 없는 사람에게 '국방장관과 육군참모총장을 이리로 불러달라'고 부탁했습니다. 본인 은 장관과 총장에게 '김재규가 각하 살해의 범인이다. 지금 권총을 갖 고 있으니 조심해서 체포하라'고 일렀습니다.>.
정승화 당시 총장의 기억은 조금 다르다. 정총장은 육군본부벙커 에서 국방부로 건너와서 장관실로 들어가는데 그 방을 나오는 김계원 실장과 마주쳤다는 것이다.
'어디 조용한 곳에 가서 이야기나 좀 합시다.'.
김실장이 그를 끌었다. 장관 부속실에 있던 국방장관 보좌관 조약 래 준장이 '제 방이 조용합니다'라면서 안내했다. 노재현 국방장관은 맞은편에 앉아 있던 김실장이 화장실에 가는지 슬며시 나간 뒤에 돌아 오지않고 있어 찾으러 나섰다가 정총장 김실장과 만나 뒤따라 들어왔 다. 김실장이 상좌에, 총장과 장관이 맞은 편에 앉았다.
'여보, 김 부장과 차 실장이 다투다가 김 부장의 총에 각하가 돌아 가셨어. 김 부장을 체포해야겠는데 저렇게 눈이 시퍼렇게 되어 나만 노려보고 있으니….'.
이 말을 들은 노재현 장관은 '그 놈을 당장 잡아야지요. 총장, 빨 리 잡으시오'라고 했다. 정승화 총장도 '제가 곧 잡겠습니다'라고 하 며 일어섰다.
'여보, 조심하시오. 김 부장이 아직 권총을 갖고 있어요.'.
정총장은 방을 나와서 조약래 국방장관 보좌관 책상 앞에서 전화로 김진기 육군 헌병감을 찾았다. 연락이 닿지 않았다. 정승화총장은 '벙 커로 오라고 전하라'는 지시를 남긴 뒤 먼저 내려갔다. 육군본부 벙커 로 내려가니 김진기 헌병감이 와서 기다리고 있었다. 정총장은 상당히 구체적으로 김재규 체포를 지시했다.
'김 장군이 직접 김 부장에게 가서 내가 좀 만나자고 한다고 전해 주시오. 미리 복도 커브 지점에 수사관을 대기시켜두었다가 거기로 유 인하여 깜쪽같이 체포하시오. 김 실장 말로는 김 부장이 권총을 갖고 있다고 하니 조심하시오. 체포 과정에서 소란을 피우거나 상하게 하면 안돼. 체포한 뒤에는 보안사령관에게 인계하시오.'.
정총장은 이어서 전두환 보안사령관을 불렀다. 정총장은 전장군에 게 헌병감이 김재규를 체포하면 그의 신병을 인수하여 수사할 것을 지 시하면서 계엄령이 선포되면 합동수사본부장으로 전장군을 임명하겠다 고 말했다. 이때 정총장은 '정중히 모셔라'는 문제의 발언을 했다는 것이 전두환측의 주장이다(정 장군은 '수사관이 흥분하여 함부로 범인 을 다루지 않도록 하라고 지시했다'고 주장). 정총장이 헌병감에게 김 재규 체포 지시를 한 뒤에 한 30분이 흘렀을까 김계원 실장이 벙커내 총장실에 내려왔다.
'왜 이렇게 늦어요. 김 부장이 지금 장관실에 앉아 있어요. 김재규 때문에 국무회의를 못하고 있어요.'.
총장에게 독촉을 한 그는 정보부 경비원 이기주로부터 빼앗았던 리 벌버 권총을 내놓았다.
김재규 체포작전은 김진기 헌병감의 지휘로 이루어졌다. 김진기 준 장이 직접 보안사 보안처 오일랑 중령과 국방부 헌병중대장 이기덕 대 위를 데리고 국방장관실로 갔다. 정찰을 해보았더니 정보부장 수행비 서관 박흥주 대령이 장관부속실에 앉아 있었다. 그래서 장관접견실로 빼기로 했다.
조약래 장관 보좌관에게 김재규 부장을 좀 불러내달라고 부탁했다. 조 준장은 장관실로 들어갔다. 최규하 총리와 국무위원들이 몰려서 앉아 있고 김재규는 외따로 앉아 있었다. 이때 노재현은 장관 실로 돌아와서 맞은 편에 앉은 김재규를 주시하고 있었다. 김재규는 자리를 비운 김계원을 찾는지 두리번거리고 있었다. 노장관은 왜 이렇 게 체포준비가 오래 걸리나 하고 불안해하고 있는데 조약래 준장이 들 어왔다. 그는 노 장관의 눈치를 보더니 김재규에게 다가가는 것이었다.
[계속]
[조갑제 출판국부국장·이동욱 월간조선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