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만 귀국 저지
1962년2월27일 주호놀룰루 총영사 김세원은 최덕신 외무장관에게 이승만 전 대통령(당시 87세)의 귀국건에 대하여 보고했다. 하와이에 3년 째 체류중인 이승만의 측근인사 최병열이 이틀전 공관을 찾아와서 '이 박사의 고혈압이 악화되어 말도 제대로 못하게 되었고 청력도 현저히 떨어졌다. 귀국을 조급히 원하고 있다. 귀국하면 조선호텔에 머물다가 이화장의 수리가 끝나면 거기로 옮길 생각이다. 정부의 의향을 알고싶 다'고 문의하더란 것이다.
김총영사는 '교포들의 대다수는 이 박사의 귀국을 바라고 있다'고 덧붙였다. 3월7일 외무장관은 '현재의 국민감정 을 고려할 때 정부에서 찬성할 시기가 아닌 것으로 생각하니 이 취지에 따라 조치하라'고 지시했다. 이승만은 그러나 귀국 준비를 중단하지 않았다. 그만큼 병세가 급했을 뿐 아니라 이승만과 프란체스카 부부는 자 신들이 하와이로 온 것은 망명이 아니고 잠시 휴양하러 온 것이기 때문에 귀국도 마음대로 할 수 있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1960년5월29일 이승만 부부가 하와이로 출국할 때 언론은 망명이라 고 보도했으나 이승만은 한 달 정도 정양하고 오리라 생각했다고 한다. 가져간 짐도 가방 네 개뿐이었다. 이승만은 이화장을 떠나기 앞서 마당에 모인 사람들에게 '늦어도 한 달 후에는 돌아올테니 집을 봐줘'라고 당부했다.
이승만이 고국을 떠난 후 한국에서 벌어진 사태는 그의 귀국을 허용하지 않았다. 민주당 정권 시절과 군사정권 시절에 계속된 자유당 치하 의 정치사건에 대한 혁명재판은 3·15부정선거의 지휘자인 최인규 당시 내무장관을 교수대로 보내는 등 이승만의 많은 부하들을 단죄하고 있었 다. 이승만의 건강이 쇠약해 질수록 조국을 그리워하는 마음은 더욱 깊어 갔다. 이승만은 양아들 이인수에게 '지금 우리나라에서 누가 남북통 일하려는 이가 있나?'하고 묻곤 했다.
'우리 국민의 소원이니 모두가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까짓 생각만 해서 뭘 해? 아- 이승만이가 한바탕 했으면 또 누가 나서서 해야 할 게 아닌가. 내 소원은 백두산까지 걸어가는 게야.'.
이승만은 '그럼 일인들은 어떡허구 있누?'라고 묻는다. 이승만은 여 러 번 '어서 가야겠다'면서 짐을 챙기곤 했다. 1961년12월 어느날에도 이승만은 귀국해야겠다고 서둘렀다. 이인수가 '지금은 한국은 눈이 많이 쌓이고 춥습니다'라고 했다. 이승만은 '추우면 오바를 입으면 돼.괜찮아···'라고 했다. 총영사관에서 빌어온 공보영화를 상영하는데 국 토건설 사업이 소개되었다. 이박사는 갑자기 박수를 치면서 '한인들 잘 허네! 아, 왜들 이렇게 안해?'하며 기쁜 얼굴로 주위를 돌아보면서 박수를 유도했다.
이승만을 후원하던 교포인사들은 귀국에 앞서 '사과 성명'을 발표하 면 국내의 반대여론을 완화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이승만 일행 은 3월17일자 비행기표를 예약해두고 귀국준비를 서둘렀다. 이승만은 이 무렵 휠체어에 앉아서 어린아이처럼 들떠 있었다. 주위 사람들에게 '우리 모두 서울 가서 만나세'라고 말하곤 했다. UPI통신은 이승만 박 사가 귀국할 것이라고 보도했다. 3월16일 이원경외무차관은 김세원총영 사를 전화로 불러 강경한 내용의 지시를 내렸다.
'한국민의 이 박사에 대한 현재의 감정에 비추어보아 이 박사의 귀 국은 절대로 허용할 수 없으니 귀국하지 못하도록 조치할 것을 지시 함. 만약 이 박사가 귀국을 강행하면 그를 입국시키지 않을 것임.'.
이원경 차관의 이런 지시는 물론 박정희 의장을 비롯한 최고회의의 의사를 충실히 반영한 것이었다. 이차관은 전화지시로는 마음이 안놓였 던지 다시 하와이 총영사에게 전문을 보낸다.
<이 박사건에 관하여는 이미 지시한대로 조치하고 있을 줄 사료하나 만일 이 박사가 불응하면 이 박사 및 그 부인이 가진 여권을 회수하거 나 무효화 조치를 시급히 취하시고 보고하시기 바람.>.
이런 반대의사를 확인한 이승만 측근인사들은 16일 이 박사 명의로 '사과성명'을 발표했다. 박정희 의장은 17일 특별지시를 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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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원경 외무차관은 이에 따라 김세원 총영사에게 '절대로 호놀룰루 를 출발하는 일이 없도록 조치하라'고 지시했다. 한국시간 3월18일 김 세원 총영사는 다음과 같은 전문을 외무부로 보낸다.
<이 박사 출발 취소함. 양자 이인수군만이 출발 예정임. 오늘 아침 10시 총영사가 이 박사를 방문하고 사정을 설명 납득시켰음. 정부에서 하는 일에 복종하여야 한다는 것을 말하면서 자신의 희망만을 주장할 수 없으며 나라가 잘 되어간다니 죽기 전에 한번 보고 죽으면 한다고 말하였음. 이 박사 건강상태가 지극히 쇠약되어 있으며 그의 발언을 이 해하기 곤란한 상태였음.>.
이 순간의 목격자인 이인수에 따르면 이승만은 김세원 총영사의 통 보를 다 듣고난 뒤 떨리는 목소리를 진정시키면서 아주 작게 말문을 열 었다고 한다.
'내가 가는 것이 나라를 위해 나쁘다면 내가 가고싶어 못견디는 이 마음을 참아야지. 누가 정부 일을 하든지 잘 하기 바라오.'.
그리고는 가냘프게 '나라···나라···'라고 하면서 말을 잇지 못했다고 한다. 이박사는 휠체어로 옮겨앉더니 침실로 사라졌다. 이후 이박사의 병세는 더 악화되었고 휠체어에서 다시는 일어나지 못하게 된다. ( 계속 ).
(조갑제출판국부국장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