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저지 공작
최근 비밀등급에서 해제된 미국 외교문서를 보면 사뮤엘 버거 미국대 사는 1962년 6월7일 박정희 의장으로부터 통화개혁에 대한 통보를 받은 바로 그날 아주 부정적인 보고를 국무부에 올렸음을 알 수 있다. '통화 개혁은 부정축재에 대한 징벌적 처리의 성격을 갖고 있고 정부에 대한 기업의 신뢰를떨어뜨릴 것이기 때문에 5개년 계획에도 지장을 줄 것이다' 는 분석이었다.
미 국무부의 인식도 같았다. 생산공장에서 사업자금을 상당기간 빼내 동결시키는 것은 위험하고 기업인들에게 무거운 자본과세를 하는 것으로 비쳐져 외자 도입에도 이로울 것이 없다는 시각이었다. 이미 때가 늦어 통화개혁을 중단시킬 수는 없으니 통화개혁의 규모를 축소시키고 동결예금을 빨리 해제시키도록 하라는 것이 버거 대사에게 떨어진 워싱턴의 지 침이었다.
6월10일을 기해 단행된 통화개혁은 과격한 조치들을 담고 있었다. 당 장 첫날부터 100환 이상의 화폐 유통을 금지시켰다. 50환 이하의 소액 화폐는 7월10일까지 신화폐와 병용하도록 했다. 경제생활에 큰 영향을 끼친 것은 금융기관의 예금 등 금전채무의 지불을 6월17일까지 전면 금 지시키고 구권을 예입한 세대에 한해서 1인당 500원씩만 신권으로 바꾸어 주고 나머지는 강제저축시킨 조치였다. 돈은 돌아야 하는데 그 유통을 일시적으로 정지시켰기 때문에 사회가 대혼란에 빠졌고 경제활동이 마비될 지경이었다.
6월10일 한국은행에서는 한미간 대책회의가 열렸다. 사뮤엘 버거 주 한 미국대사는 하비브 정치참사관, 파파노 경제참사관, 킬렌 유솜(USOM· 대한원조기관)처장, 유솜의 호이저 박사를 데리고 왔다. 한국측에선 유 원식 최고회의 재경위원, 천병규 재무장관, 민병도 한은 총재, 통화개혁 준비팀의 실무책임자 김정렴이 참석했다. 버거 대사는 '사전에 우리쪽에 아무런 통보나 협의가 없었던 점은 유감이다.
그러나 통화개혁 조치의 비밀이 누설되지 않고 질서정연하게 조직적 으로진행되고 있는 점을 평가한다'고 했다. 유원식 위원은 '보안을 위해 서 그렇게 된 것이지 딴 뜻은 없었다'면서 '6월16일부터 실시하게 될 긴 급 통화조치에 대해서는 미국측과 충분히 협의하겠다'고 약속했다. 버거 대사의 표정도 많이 풀어졌다.
이 자리에 있었던 김정렴은 1953년 통화개혁을 할 때 참여한 경험에서 미국 원조당국과의 사전협의가 성공의 한 요인이었음을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박정희 의장에게 통화개혁계획을 보고할 때도 이 점을 강조 했고 유원식 위원도 '알았다'고 긍정했는데 사태가 이렇게 된 데 대해 놀랐다고 한다(회고록 '한국경제정책30년사').
6월16일 오후 최고회의는 본회의를 열고 화폐교환 때 은행에 예입된 동결자금의 처리기준을 담은 '긴급통화조치법'을 통과시켰다. 법은 통과 되었지만 최고위원들은 사전에 아무 협의를 받지 못한 데 대해서 유원식 에게 불만을 털어놓았다. 재경위원장 김동하 조차도 소외되었다는 것이 다. 더구나 유원식은 미국측과도 미리 약속해둔 사전 협의를 하지 않았다고 한다. 유원식은 생전에 펴낸 회고록에서 '미국 대사관에서 나에게 수없이 면담을 요청해왔으나 거절했다'고 했다.
이날의 긴급통화조치법에 따라 화폐교환 때 은행에 예탁된 돈과 그 이전의 예금에 대하여 일부를 봉쇄계정으로 돌려 정부가 강제로 산업자 금으로 동원하게 되었다. 봉쇄율은 6개월 이상 1년 미만의 저축성 예· 적금일 경우예입금의 100분의 35, 기타 예금일 경우 천만원 이상은 전액 을 봉쇄계정으로 돌려 동결하는 식으로 예금의 성격과 기간에 따라 일정 한 비율을 정해놓았다.
동결된 봉쇄계정의 자금은 6개월 이내에 설립될 산업개발공사의 주식 으로 대체된다. 이 돈은 또 한국은행의 특별지불준비금으로 예치되고 예 금주에게 연 15%의 이자를 지급하기로 했다. 문제는 봉쇄대상이 된 자금 이 약 970억환으로서 예상보다도 적었다는 점이다. 유원식이 이런 식의 통화개혁을 발상하여 박정희 의장을 설득시킬 때 그는 '통화량의 약3분 의 1은 화교들이 가지고 있고 그 규모는 1,000억 환에 이를 것이다'고 했으나 뚜껑을 열어보니 음성자금도 화교자금도 얼마 되지 않는다는 것 만 확인한 셈이 되었다.
정부는 봉쇄금액의 50%까지는 예금주에게 융자해주기로 하는 등 보완 책을 마련했으나 이 강제조치의 충격은 너무 컸다. 자금의 흐름이 막힌 관계로 가장 빨리 타격을 받은 것은 중소기업이었다. 약1만7,000개의 업 체를 거느린 중소기업협동조합중앙회가 집계한 가동률에 따르면 통화개 혁이 실시된6월10일의 가동률을 100으로 했을 때 6월20일의 그것은 42.5% 에 불과했다.
'한두달 내 완전휴업위기' '작을수록 큰 타격···원료마저 고갈'이 란 제목의 기사가 조선일보 6월22일자 경제면에 등장했다. 6월21일 대한 상공회의소와 서울상공회의소는 '통화개혁 이전의 예금에 대해서는 전액 을 동결조치에서 해제해줄 것'을 정부에 건의하고 나왔다.
미국은 단호하게 나왔다. 한번도 통화개혁을 해본 적이 없고 사유재 산권을 신성시하는 미국인에겐 국가에 의한 민간 자금의 강제동원이란 발상은 기본적으로 사회주의에 가깝다는 생각이 박히게 되어 있었다. 먼 저 미국정부는 버거 대사를 통해서 기한 1년 미만짜리 예금의 일부를 동 결한 것은 부당하다는 견해를 박정희 의장에게 전달했다. 김정렴은 서독 통화개혁의 비슷한 사례를 정리하여 미국측에 설명했으나 미국측은 '서 독의 경우는 국제금융기관과의 긴밀한 협조를 바탕으로 이루어진 것이다' 면서 납득하지 않았다. 박정희 의장은 김정렴에게 '전체 봉쇄계정의 15% 를 차지하는 1년 미만 예금에 대한 봉쇄는 해제해주도록 하라'고 지시했 다. 미국의 압력은 이것으로 그치지 않았다. 그들은 다시 모든 봉쇄계정 의 해제를 요구해왔다.
킬렌 유솜 처장은 온건파인 상공부 정래혁 장관을 만나 이념적인 관 점에서 통화개혁을 비판했다.
<이번 통화개혁은 한국경제를 국유화, 통제경제의 방향으로 이끌려고 하는 것이다. 미국 정부는 자본주의 체제의 신뢰를 떨어뜨리는 데 미국 의 원조가 쓰여지는 것을 좌시하지 않을 것이다. 기업의 생산활동은 위축될것이다.>. ( 계속 ).
(조갑제출판국부국장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