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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건동지회
 재건동지회
 
 정보부가 초창기부터 통신실을 부장직속으로 두고 통신감청에 크게 의 존하게 된 것은 정보부 창립주도자들이 한국전쟁기간중 미군으로부터 항 공사진정보와 통신정보 등 기술정보의 중요성에 대해 깨우친 바가 컸기 때문이다. 항공사진정찰로써 적지 도로의 평균 차량통행량을 알아 두었다 가 이 통행량이 갑자기 증가하면 며칠 뒤에는 반드시 대공세가 있다는 판 단이 가능하게 되었다.
 
 전쟁 중 북한에서 암호를 만든 사람이 월남했 다. 미군은 이 사람을 통해서 암호체계를 파악한 뒤 적군(인민군과 중공 군)의 암호를 해독하는 기계를 만들어 자동적으로 암호를 풀었다. 일선 부대가 이동할 땐유선에서 무선으로 전환하는데 이때 통신을 감청할 수가 있었다.
 
 박정희 입장에서 정보부는 아주 편리한 기관이었다. 중대한 국사를 비 밀리에 처리하는 데도 안성맞춤이고 분파주의로 갈등하는 최고회의를 감시, 견제하여 권력을 안정시키는 데는 매서운 채찍이었다. 박정희로서는 조카사위인 김종필 부장의 인간성 덕분에 정보부의 힘이 너무 세어져 자신을 위협할 위험을 걱정하지 않아도 되었다.
 
 정보부는 권력자뿐 아니라 일반행정부서에게도 행동지침을 만들어주고 제시하는 군정의 방향타이기도 했다. 정보부장 보좌관으로 있다가 뒤에 공화당 사전조직의 실무지휘 자가 되는 강성원(71세·당시 소령)은 '그때의 김종필은 정치인으로 현란 한 변신을 한 뒤의 모습과는 딴판이었다'고 회고한다.
 
 '대면만 해도 국가개조에 대한 열기를 느낄 수 있었고 사심 없이 국사 에 몰두하고 있었습니다. 엄청난 결정들을 담담하게 또 대담하게 내려가 면서 상황을 끌고나가는 모습은 그야말로 혁명아의 한 전형이었지요. 그 때는 곰탕 이상의 식사는 미안해 할 정도로 검소하고 순수했습니다.'.
 
 김종필의 정보부는 1962년 봄 민정이양 계획을 만들어 최고회의에서 박 의장에게 보고했다. 박정희는 '송요찬 내각수반을 불러 같이 듣자'고 했다.
 
 석정선이 군정기간에 대해서 1안, 2안, 3안 하면서 보고하는데 갑자기 송수반이 고함을 빽 질렀다고 한다.
 
 '5년이 뭐야? 10년 이상은 해야지.'.
 
 석정선이 바라보니 박정희 의장은 웃음을 띤 표정으로 송 수반의 무릎 을 만지면서 '2년안도 좋습니다'라고 하더란 것이다. 1963년에 민정으로 이양한다는 정치일정을 발표한 1961년8월12일 이후에 박정희는 혁명공약 대로 한때는 군에 복귀할 생각도 했다. 그는 김종필에게 친필서신을 보내 '혁명주체세력이 군에 복귀한 뒤에도 썩어빠진 구정치인이 아닌 깨끗하고 유능한 정치세력이 정권을 잡을 수 있는 방안을 연구해보라'고 했다. 김 종필 부장은 이 서신을 강성원 소령에게 보여주면서 연구검토해 보고서를 올리라고 지시했다. 강성원은 '주체세력이 선거에 참여하여 직접 정권을 잡지 않으면 구정치인의 집권을 막을 수 없다'는 결론을 내려 김종필부장 에게 보고했다. 박정희는 1961년 가을쯤에는 자신이 대통령선거에 출마할 결심을 하게 된다.
 
 강성원은 김종필의 지시를 받아 혁명주체가 참여할 정당을 조직방안을 연구하기 시작했다. 1961년말 강성원과 동료 정지원소령은 김종필에게 정 당조직안을 보고했다. 이들이 구상한 정당은 당이 국회의원보다 우위에 서는 구조였다. 당이 정책을 결정하면 국회의원들은 그 정책에 따라야 한 다는 것으로 사무국의 권한이 원내보다 강력한 것이었다. 강성원은 '이런 방법만이 파벌싸움만 일삼고 국익에 대해서는 무관심한 파당적 정당의 약 점을 극복하는 것이다'라고 생각했다. 김종필은 이 계획서를받더니 표지 에다가 '8·15계획'이라고 썼다. 공화당 사전 조직 공작은 그뒤 '8·15계 획'이라 불려지게 되었다.
 
 1962년 초부터 공화당 사전 조직이 시작된다. 책임자는 정보부 행정차 장 이영근. 김종필 부장과는 육사8기 동기 사이로서 평양 의전 출신의 꼼 꼼하고 철두철미한 성격. '독일병정'이란 별명을 갖게 되는 사람이다. 그 아래서 조직부장이 된 사람이 강성원이었다. 그는 윤천주 고려대 교수를 훈련부장, 윤주영 조선일보 편집국장을 선전부장에, 서인석뉴욕타임즈 서 울 특파원을 조사부장에 영입했다. 관리부장은 정보부에서 옮겨온 정지원.
 
 강성원은 '지금 사람들이 그때 왜 공화당을 최고회의 위원들에게도 비 밀로 하여 조직했느냐고 비판하는데, 만약 알리고 했더라면 당이 되지도 않았을 것이다. 서로 주도권을 잡으려 싸움박질을 했을 것이고 그러다가 보면 악화가 양화를 구축하고 구태의연한 정치꾼들 차지가 되었을 것이 다. 비밀로 조직에 착수했기 때문에 깨끗하고 유능한 인재들을 많이 모을 수 있었다. 점조직이라 하는데 끈이 달리지 않은, 즉 파벌이 없는 순수한 인물이란 점에서 점조직이었다. 지금 돌이켜보아도 그때 우리가 모았던 인재들이 박정희 시대 정치엘리트의 주체로서 나름대로 활동하게 된 것이 대견스럽다'고 회고했다.
 
 김종필 부장은 박정희 의장에게 가칭 재건동지회 조직안을 보고하면서 '이 작업은 최고회의 위원들에게도 알리지 않고 제가 책임지고 하겠습니 다'라고 했을 때 박정희는 이를 묵인했다. 그런데 군·검·경 합동수사본 부장인 육군방첩부대장 김재춘준장이 정보부 요원 강성원과 정지원 등 몇 명이 서울시내에서 여러 사무실을 옮겨다니면서 수상한 활동을 한다는 정 보를 박정희 의장에게 보고해 온 것이다. 반혁명모의일 가능성도 있다는 것이었다. 박 의장은 대수롭지 않다는 듯이 말했다.
 
 '나도 그런 움직임이 있다는 보고를 받고 있는데 별것 아닌 것 같소. 더 자세히 알아 보고 처리할 것이니 나에게 맡겨두시오.'.
 
 다음날 박 의장이 부르더니 '어제 보고한 내막을 알아보니 특수 임무를 수행하고 있는 요원들이라는 것이 확인되었소. 더 수사할 필요는 없겠 소.'. ( 계속 ).
 
 (조갑제출판국부국장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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