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대 복귀 포기 선언
'그런 기사를 쓸라카면 우리에게 사전 연락이라도 해야지···덮 어놓고 쓰면 되겠어?'.
이렇게 말한 박정희 의장은 담배연기를 한 모금 세차게 내뿜은 후 악수를 청했다. 경향신문의 특종기자 김경래는 속으로 '살았다'고 생각했다. 박 의장은 '거기 앉으시오'라고 경어를 썼다.
'의장님, 죄송합니다. 제가 이 기사를 보도한 것은 국민의 자존심과 젊은이들에게 의연한 긍지를 심어주기 위한 동기가 깔려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게 무슨 뜻이오?'.
'국군의 건아들이 단군 이래 처음으로 외국 땅에서 침략군을 상 대해서 싸우러 간다는 사실은 얼마나 장하고 거룩한 일입니까.' '임자의 심중은 충분히 알겠어. 그러나 그곳에 파병된 장병들의 안전을 위해서 쉬쉬해온 것이 아닌가.'.
이후락 실장이 재빨리 한 마디 거들었다.
'각하, 선발대는 이틀 전에 무사히 월남에 도착했다고 합니다.'.
박정희 의장은 여비서가 슬며시 갖다 놓은 엽차를 가리키면서 마 시라고 권했다. 그리고 본격적인 심문을 시작하는 것이었다.
'누구에게 들었소? 월남파병 얘기를···.' '각하, 신문기자는 취재원을 밝힐 수 없습니다. 이는 마치 처녀가 정조를 잃는 것과 같습니다.'.
'그래도 내게만은 밝혀줘야 하지 않겠소. 누가 그런 비밀을 누설 했는지 알아야 대책을 세울 것 아니오.' '실은 월남파병 소식을 처음 캐낸 곳은 월남대사관입니다. 그곳 1등 서기관을 만났더니 그 친구가 자랑삼아 귀띔해줍디다.'.
김경래는 진짜 취재원을 보호해주기 위해서 파병사실을 확인만 해준 월남대사관을 끌어들인 것이다.
'그 친구들 형편 없구먼. 그토록 극비에 붙이기로 한 것을 일방 적으로 터트리다니. 그러니 나라가 그 모양 그 꼴이지.'.
이것으로 박정희는 '취재원 캐기'를 중단했다. 김경래 기자는 2 주간 최고회의 출입을 금지당했다.
기자들과 박정희의 사이를 살벌하게만 만들지 않았던 것은 최고 회의 이후락 공보실장의 재치와 개방적 태도였다. 주미 대사관 무관, 국방부 중앙정보부대장(일명 79부대)을 거쳐 육군소장으로 예편했던 그는 5·16직후엔 한때 정보부에 구속된 적도 있었다. 김종필 부장 의 배려로 석방된 뒤 영자신문의 사장을 역임했던 그는 원충연 공보 실장의 후임이 되자 먼저 최고회의 본관 2층의 넓은 방으로 기자실 을 옮겨주고는 자신의 집무실도 기자들에게 개방했다. 말을 더듬는 이후락은 기자들의 신랄한 비판에 대해서도 좀처럼 화를 내지 않고 받아주었으며 우스개를 많이 하여 분위기를 밝게 해주었다. '의장각 하께서는 조국근대화를 위하여···'라고 칭찬을 늘어놓다가도 쑥 스러운 생각이 들면 '허허···캐사면서 고,고,고무적이다'라고 얼 버무리기도 했다. 이후락 실장이 기자와 의장 사이에서 윤활유 역할 을 하면서 박정희의 별명으로 돌기 시작했던 '박곰보', '박코프'란 말도 사라졌다. 기자들은 박 의장이 검은 안경을 낀 것을 보고는 '아마도 곰보일 거야'라고 하여 '박곰보'라 부르다가 이것이 '박코 프'로 바뀌었던 것이다.
1962년 7월19일자 조선일보 조간 1면의 정치가십란 '문외문'에는 이런 기사가 실렸다.
<박정희 최고회의 의장의 출장예정이라는 게 3급비밀이어서 좀체 로 미리 알려지질 않지만 18일 강원도 지방 산업시설 시찰을 떠날때 는 경호원마저 시간을 맞추지 못할 정도로 감쪽 같이 떠났다. 뒤늦 게 안 기자들이 부랴부랴 뒤를 따라갔지만 그것과는 별도로 이후락 공보실장이 자청해서 특파원 노릇을 하고 나섰다.
그는 경비전화로 내무부를 중계하여 박 의장의 동정을 아침 저녁으로 공보실에 보내 오는가 하면 덧붙여서 가십 자료까지도 제공해주는 정도. 박 의장이 1군단에서 '요사이도 도망병이 있느냐'고 물으니 군단장은 '많이 줄었습니다'라고 대답하는가 하면 '옛날처럼 인사청탁이 있겠지'하고 물으면 '전연 그런 것이 없습니다'라고 대답하더라는게 '이 특파원' 의 보도다>.
이 기사를 쓴 송기오 기자는 전날 춘천까지 따라갔다가 박 의장 일행이 춘천에서 원주로 향하는 헬리콥터에 동승하려 했으나 이후락 실장이 제지하는 바람에 실패했었다. 19일 아침 원주에서 이 가십 기사를 읽은 이후락은 송기자에게 말했다.
'거, 내 입장도 이해해주어야지. 당신만 태워주었다가는 뒤에 다 른 기자들의 공격을 어떻게 감당하겠소?'.
이후락은 원주에서 영월로 가는 기동차엔 송기오 기자를 태워주 었다. 다른 기자들은 바로 영월로 가서 박 의장의 도착을 기다리고 있었다. 송기오는 쪽지를 써 차심부름을 하는 여승무원에게 맡겨 이후락 실장에게 전하도록 했다. 들어오라는 전갈이 왔다. 옷깃을 여미고 긴장하고 들어가니 박 의장은 송기오에게 자리를 권했다. 박태준 최고위원, 한신 내무장관, 민기식 1군사령관도 함께였다.
송기오가 시찰소감을 물었다.
'당신이 더 잘 보았지 않소?'.
박 의장은 차창밖을 바라보면서 산비탈까지 농민들이 개간한 것 을 가리키면서 '저런 것을 신문에 써서 국민들에게 알려주시오'라고 했다. 그는 덧붙여 말했다.
'왜 우리나라 사람들은 정치 이야기만 즐겨 하는지 몰라. 옛날 중국 고사에 맞는 신을 신는 사람은 신 신은 것조차 모르지만 큰 신 이나 작은 신을 신은 사람은 자꾸 이 신, 이 신 하면서 신 이야기를 들먹인다고 하지 않소. 우리나라 사람들이 정치이야기를 잘 하는 것 도 그처럼 옛날 정치가 잘못된 것이기 때문이라 이해할 수 있지만 특히 신문이 그것을 부채질하는 느낌이 있더군요.'.
이런 자연스런 대화를 통해서 박정희는 송기오에게 중요한 한마 디를 했다. 자신의 거취에 대한 질문에 대답하는 형식으로 한 말이 었다.
'정권이양 후에 군복을 입고 군에 돌아갈 생각은 없습니다. 좋든 싫든 정치에 관여한 몸인데 순수성을 지녀야 할 군에 내가 다시 돌아간다는 것은 맞지 않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계속'.
(조갑제출판국부국장기자) (이동욱월간조선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