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치열의 반격
밤 9시30분 최규하총리, 김치열법무, 구자춘내무, 박동진외무장관과 유혁인정무수석이 김계원비서실장과 함께 육군본부 벙커내 총장실에 도 착했다. 김계원은 '많은 육군장성급이 와 있어 김재규가 군을 장악하고 있는 것으로 생각했다'는 것이다(합수부1차 자필진술서).
육군본부 벙 커에 김재규와 함께 도착해 있었던 김정섭정보부 차장보는 군검찰에서 한참고인 진술에서 이렇게 말했다.
<총장실에서 정보부장, 국방장관, 각 장관과 각군 총장, 합참의장, 유병현연합사 부사령관도 합석한 자리에서 김계원 실장은 '대통령께서 유고이십니다. 총리 각하를 모시고 사태를 수습해야 되겠습니다'고 말 했습니다. 구내무장관이 '유고라니 내용이 어떻게 되었습니까'라고 물 었습니다.
김 실장은 '차지철 실장이 강경해서 문제가 일어났습니다'라고만 대 답했습니다. 각부 장관들은 경호실 자체에서 일어난 사건인 줄 알고는 경호원들의 무장해제 문제를 거론하기 시작했습니다. 수도경비사령관이 책임지고 진압하고 경찰관들은 내무장관이 책임을 지고 잘 관장해야 한 다는 이야기도 나왔습니다>.
이 진술에 따르면 김계원 실장은 대통령 시해의 책임을 차지철경호 실장한테 뒤집어씌우는 언동을 보이고 있다. 김재규가 동석하고 있는데 다가 군 장성들이 김재규에 의하여 장악되어 있다는 선입견을 가지고 있었던 김계원으로서는 그렇게 말하지 않을 수 없었을지 모른다. 김치 열 장관도 육군본부로 오는 차중에서는 '김재규가 쿠데타를 일으켜서 육본을 장악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하는 생각을 했었다.
청와대에서 김 계원 비서실장은 김치열 장관을 따로 불러 '김재규가 잘못 쏜 총탄에 각하가 서거하셨다'고 알려주었었다고 한다(이런 사항은 수사, 재판 기 록에선 나오지 않고 있다). 김계원이 정보부장으로 있을 때 김치열은 차장으로 있었기 때문에 이런 정보의 공유가 가능했던 것으로 보인다.
김치열 장관은 육군본부 벙커에 들어와서는 곧 '김재규가 군을 장악 하지 못하고 있으며 장성들은 범인이 누구인지도 모르고 있다'는 판단 을 하게 되었다. 벙커내 총장실에서 앉다가 보니 김 장관은 김재규와 마주보게 되었다. 김재규는 살기등등하면서도 초조하게 보였다. 그는 연신물을 마셔대고 있었다. 김재규는 말했다.
'지금 각하께서 돌아가셨습니다. 전방경계를 강화하고, 이 사실을 최소한 48시간 국내외에 비밀로 붙여야 합니다. 그리고 비상계엄령을 선포해야 합니다. 미국에도 비밀로 해야 합니다.'.
김치열 장관이 물고 들어갔다.
'어떤 이유에서 48시간이나 보안에 붙여야 합니까?' '북괴의 남침 위협 때문입니다.'.
'내가 생각하기로는 그런 보안은 불가능할 뿐 아니라 사태수습의 방 안으로도 현명하지 못합니다. 미국에서는 이미 알고 있을지도 모르며 국민들에 대한 정치도의상 예의가 아닙니다. 북괴의 남침 위협이 있다 고 하셨는데 그렇다면 출동준비가 있어야 하고 그러니까 오히려 미국에 알려야 효과적인 대비책을 세울 수가 있지 않겠습니까.'.
김치열 장관의 이 반론에 박동진 외무장관이 편들고 나섰다.
'미국측에 휴전선의 경계를 강화해달라고 요청하기 위해서라도 조기 에 사태를 통보해야 합니다. 우리가 미국측에 보안을 요청하더라도 그 사회의 체질로 보아 당장 언론에 전달되어 사건발생 사실이 외국언론을 통해서 국내로 들어오게 된다면 국민들이 정부를 어떻게 보겠습니까.'.
몰리는 입장이 된 김재규는 격앙된 목소리로 '난 김 법무의 의견과 생각이 달라요'라면서 화를 냈다. 김치열 장관은 맞은 편에 앉은 김재 규가 권총을 뽑아 쏠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이 무렵 김성진문공장관이 벙커로 들어왔다. 기자출신인 김 장관은 이날 밤의 체험을 생생히 기억에 담았다. 총장실에 들어온 김 장관은 방안 공기가 너무나 긴장되어서 말을 붙일 수가 없었다. 윤자중공군참 모총장에게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 중이냐'고 물어도 그는 대답을 하 지 않고 '보고서도 모르느냐'하는 눈치를 보냈다. 김치열, 구자춘 장관 이 '상황을 자세히 설명하라' '범인이 누구냐' '무턱대고 계엄령을 선 포해야 한다는 말만 하지말고 그 자리의 상황을 자세히 얘기하라'고 덤 벼들고 있었다.
김재규는 '우선 계엄령을 펴놓고 보아야 한다'고 버티고 있었다. 김 재규의 거무튀튀한 얼굴에는 개기름인지 돼지기름인지 번드르르 배어 있었다. 김계원 실장은 조용히 숨을 죽인 채 몸을 쪼그리고 한 구석에 앉아 있었다.
김성진 장관이 '계엄령을 편다면 그 사유를 무엇이라고 해야 합니까' 하고 김재규 부장에게 따졌다. 김 부장은 '소련이 브레즈네프의 사망여 부에 대해서 여러 날이 지나도록 비밀로 지키고 있습니다. 우리도 보안 을 지켜서 비상계엄의 사유는 치안사태라고 하면 될 것입니다'라고 했 다. 비로소 김 장관은 대통령의 신상에 중대한 사변이 생긴 모양이라고 생각했다.
이때 쯤 김계원도 상황을 달리 판단하게 되었다. 맨처음 벙커에 들 어왔을 때는 장성들이 모여있는 것을 보고서 김재규가 군대를 장악했다 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가만히 들어보니 장성들은 주로 부대출동관계로 이야기하고 있는데 대통령이 서거한 사실도 모르고 있는 것 같고 김재 규가 범인이란 것도 모르고 있는 것 같았다.
'김재규가 사전에 연락한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움직이는 것을 보니 아니구나 하고 생각했다'는 것이다. 김계원 실장은 정승화총장에게 사실을 털어놓으려고 그를 옆방 으로데리고 갔더니 김재규가 따라들어와 그만두었다.
벙커에서 벌어진 지리한 말씨름 끝에 참석자들은 두가지 점에서는 합의를 보았다. 계엄선포를 해야 한다는 것과 이를 위한 비상국무회의 의 소집, 그리고 미국측에 대한 통보.
최규하 국무총리가 이윽고 입을 뗐다.
'밤11시에 국무회의를 국방장관실에서 개최하기로 합시다. 한미 연 합사와 미국 대사관에는 어떻게 하시겠소?'.
유병현연합사 부사령관이 '위컴 사령관은 지금 미국에 가 있습니다. 제가 참모장에게 연락하도록 하겠습니다'라고 했다. 박동진 외무장관은 '내일 아침에 미국대사를 불러서 제가 통고하겠습니다'라고 했다. 유혁 인 정무수석은 총무처차관 최택원에게 전화를 걸었다. 총무처장관 심의 환은 나흘 전에 타계하여 차관이 장관직을 대리하고 있었다.
'급한 일이 생겼습니다. 보안유지를 하시고 국방장관실에서 국무회 의를 소집하도록 하였으니 준비하시고 오십시오.'.
유혁인 수석이 총무처차관에게 지시를 했다고 고하니 총리 이하 장 관들이 일제히 일어나 지하도를 통해서 국방부장관실로 올라갔다. 그때 김정섭 차창보는 김계원과 김재규가 총장실 안에 있는 화장실로 함께 들어가는 것을 보았다. [계속]
[조갑제 출판국부국장·이동욱 월간조선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