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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자유 싸고 박정희와 논쟁
 언론자유 싸고 박정희와 논쟁
 
 송기오 기자가 '그러면 정치로 나가시겠다는 말씀입니까'하고 물었 다. 박정희는 '생각해본 일이 없다'고 잘라 말했다. 그러면서 '나의 거취문제에 대해서는 어제밤에 1군단 사단장들과도 이야기했다'고 설명했다.
 
 '민기식 1군사령관 숙소에서 만난 사단장들이 '민정이양 후에 다시 부패하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하고 질문을 하기에 나는 '여러분들이 그것을 막아야 하고 또 부패하는 경우라도 여러분이 있으니 나는 믿음 직하다'고 말했소.'.
 
 이 발언은 박정희가 민정에 참여할 뜻임을 최초로 내비친 것으로 7 월19일자 조선일보 1면 머리에 '원주-영월 차중에서 본사 기자와 단독 회견'이란 설명과 함께 특종으로 보도되었다. 이 회견기에서 박정희는 '국회의원들이 메모나 쪽지를 가지고 이권운동을 하면 당장 형무소에 넣도록 해야 한다'라거나 '정당이 정치부패의 근원이 안되게끔 정당에 관한 규정을 헌법에 넣어야 한다'라고 했다. 그는 또 헌법개정에 대해 서 '대통령이 한번에 한해 중임할 수 있게 규정하여 그 조항을 고칠수 없도록 해야 할 것이다'라고 했다.
 
 이 기사가 큰 파문을 일으키자 박정희 의장은 19일 밤에는 한 걸음 물러난다. 기자들의 서면 질문에 대해 답변하면서 '다음 대통령은 정 치를 잘 아는 정치인 중에서 선택하는 것이 옳은 것으로 안다'고 했 다. 그는 또 '국민들이 차기 대통령 출마를 원한다면 받아들일 것인가' 란 질문에 대해서는 '전혀 생각해본 적이 없다'고 말했다. 그는 한 걸 음 더 나아갔다.
 
 '나와 같은 군인은 국가가 위급할 때 일시적으로 필요한 사람일지 는 모르나 모든 것이 정상화되고 질서가 잡힌 다음에는 우리 같은 사 람이 정계에 나온다는 것은 국가 장래를 위해 이롭지 않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민정이양 시기에 대통령에 출마하기로 결심하고 이미 공화당의 전신인 재건동지회를 비밀리에 조직하고 있을 때인데도 박정 희는 이런 정치적 발언을 하고 있었다. 그 자신이 이미 정치인으로 변 신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니 '다음 대통령은 정치를 잘 아는 정치인 중에서 선택하는 것이 옳은 것으로 안다'는 발언도 언중유골의 의미를 지닌 것이었다.
 
 박정희 의장은 9월7일엔 담화문을 통해서 '본인과 최고위원들의 거 취문제는 결정된 바 없다'고 했다. 그 13일 뒤 김현철 내각수반은 대 전지역을 시찰하던 중 기자들과 만나 사견이란 전제 아래 '박정희 의 장의 대통령 출마는 당연하다'고 말했다. 김수반은 또 '강력한 추진력 을 가진 박의장의 출마를 권고하고 싶다'고 덧붙였다. 김현철이 비록 사견이란 조건을 달았지만 이 말은 박정희의 심중을 의도적으로 전달 한 것임이 분명했다.
 
 10월30일 이후락 공보실장은 박의장의 출마를 기 정사실로 만드는 발언을 한다. 즉, 박 의장이 최근 최고위원들에게 연 구검토하여 보고하도록 지시한 것이 있다고 했다. '의장 자신을 포함 한 최고위원들이 명년 선거에 군복을 벗고 출마할 것인가, 아니면 예 편한뒤 출마할 것이냐에 대한 의견 수렴'이란 것이었다.
 
 군사정권과 언론의 관계가 '적대적'인 시각에서 출발했다가 동반자 관계로 호전된 것을 상징하는 사람이 동아일보 정치부 이만섭기자였 다. 지금 국민회의 고문인 이만섭은 5·16직후 윤보선대통령이 기자회 견에서 '혁명정부는 조속히 정권을 민간에 이양해야 한다'라고 말한 것을 보도했다는 이유로 구속되어 두달간 육군형무소에 갇혀 있다가 석방되었다. 그는 잠시 주일특파원으로 가 있다가 귀국하여 최고회의 를 출입하게 되었다. 군사정부의 실력자 김종필 정보부장과 처음 만났 을 때 이만섭기자는 대들었다.
 
 '김 부장이 일본 잡지 '문예춘추'에 쓴 글을 읽어보니 5·16전에 나라와 군이 부패했는데 그 원인중 하나가 신문기자 때문이라고 했더 군요. 김 부장, 이럴 수가 있습니까. 소수 사이비 기자들의 문제를 가 지고 기자 전체를 평가하고 더구나 외국잡지에 그런 걸 쓸 수 있단 말 입니까? 당신들은 권총으로 나라를 사랑했지만 우리 언론인들은 붓으 로 나라를 사랑해왔습니다.나라 사랑하는 방법이 권총과 붓이란 차이 밖에 없는데 그렇게 기자 전체를 매도하다니...'.
 
 김종필은 웃으면서 '이 기자의 말씀에 충분히 이해가 갑니다. 잘못 된 점이 있다면 내 사과하지요'라고 선선히 말했다. 이만섭은 '막강한 힘을 가진 사람이 구차스럽지 않고 솔직한 데가 있어 좋은 인상을 받 았다'고 한다. 1962년10월10일 이만섭 기자는 동해안 화진포에서 해병 대 상륙작전훈련을 참관한 박 의장 일행을 취재하다가 특종욕심이 생 겼다.박 의장이 참관 뒤 해군함정편으로 울릉도로 향한다는 정보를 입 수하고 그 배에 미리 들어가 함장실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박의장은 민기식 1군사령관, 이맹기 해군참모총장, 이후락 공보실장들을 데리고 선장실로 들어오다가 이만섭과 마주쳤다.
 
 이만섭이 '동아일보의 이만섭 기잡니다'라고 인사하자 박 의장은 '아, 그래? 그런데 요즘 신문이 문제야. 신문은 선동만 해요. 쌀값이 오르면 신문이 1면톱으로 '쌀, 쌀, 쌀값 폭등'하고 주먹만한 활자로 보도하니 쌀값이 더 오르지 않소. 신문이 그렇게 해서야 되겠소?'하고 퍼붓다 시피했다.
 
 '그게 그렇지 않습니다. 쌀값이 오르면 위정자들이 그런 현실을 알 고 적절한 대책을 세우라는 것이지 결코 선동의 의미가 있는 게 아닙 니다.그리고 사실보도야말로 신문의 사명이 아니겠습니까?'.
 
 박 의장은 계속 못마땅한 표정을 지었고 옆에 있던 장성들도 박 의 장의 말에 한 마디씩 거들었다. 이만섭은 지지않고 반격했다.
 
 '저는 윤보선 대통령이 이야기한 것을 사실대로 보도했는데도 잡혀 갔습니다. 혁명정부의 언론정책엔 분명히 문제가 있습니다.' '아, 그래요? 그건 뭔가 잘못된 것 같소.' '그렇습니다. 그건 분명히 잘못된 일이었습니다.'.
 
 박 의장은 미안했던지 그 뒤론 입을 다물었다. 어두워서 울릉도 도 동항구에 박의장이 도착하니 도민들이 횃불을 밝혀들고 기다리고 있었다.울릉도에 국가원수가 방문한 것은 이 날이 처음이었다. '계속'.
 
 (조갑제출판국부국장기자) (이동욱월간조선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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