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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희의 편지
 박정희의 편지
 
 기자는 '박의장이 최주종 8사단장을 불러 친위쿠데타를 일으켜달 라는 주문을 했다'는 요지의 글을 회고록에 남긴 백행걸 장군에게 그 근거를 물었다. 백장군은 박정희 시대가 끝난 뒤 최주종 장군(작 년에 작고)으로부터 직접 들었다고 했다. 기자가 '최주종 장군은 믿을 만한분이냐'고 했더니 백장군은 '작년에 타계하여 대전 국립묘지 에 묻힌 그분의 묘비명을 내가 썼다'는 말로 대답을 대신했다.
 
 '이 나라가 나은 한 위대한 참군인이 이곳에 고이 잠들다. 원리 원칙을 존중하고 정직과 청렴과 결백을 생활신조로 한평생 명예와 신의 속에 살면서 결코 불의와 타협하지 않은 그는 전형적인 직업군 인의 귀감. 그의 숭고한 가치관은 두고두고 후세를 위한 존귀한 길 잡이가 되리라.'.
 
 백행걸 전 무역전시관 이사장은 박정희가 최주종 장군에게 그런 부탁을 한 것은 자신이 8사단 참모장으로 부임한 1962년5월24일 전 이라고 증언했다.
 
 최주종 장군의 미망인인 이혜정여사도 생전에 남편으로부터 '친 위쿠데타'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고 확인해주었다.
 
 '박장군께서 그런 제의를 하기에 그분은 잠시 생각할 시간을 달 라고 한 뒤 한 시간쯤 있다가 못하겠다고 하셨답니다.'.
 
 최주종이 박의장에게 불려갈 때의 참모장은 김여림(육사9기·육 군 준장 예편)대령이었다. 김씨는 '1962년4월쯤인데 최주종 장군이 박의장을 만나고 나와서 아무 말 없이 한동안 심각한 표정으로 있었 던 기억이 난다'고 했다. 최주종 장군은 '박정희에 의한 친위 쿠데 타 교사설'을 지어낼 만한 사람이 결코 아니라는 것이 대체로 그를 잘 아는 이들의 이야기다. 문제는 시점이다. 박의장이 이런 엄청난 구상을 털어놓았다는 1962년4월은 겉으로는 박정희 체제가 안정되어 있는 듯이 보일 때였으나 안으로는 군부의 갈등이 심화되고 있을 때 였다. 1962년6월9일 주한미군 사령관 멜로이 대장이 렘니처 미 합참 의장에게 보고한 비밀전문이 있다.
 
 <지난 몇 달 동안 쿠데타 계획에 대한 소문과 보고가 쏟아지고 있다. 육해공군의 여러 부대들이 쿠데타 소문과 관련하여 언급되고 있다. 대부분의 경우 이런 소문의 신빙성을 확인할 수가 없다. 몇몇 소문은 조작된 것이지만 몇몇 소문은 근거가 있는 것 같다. 이런 소문이 있다는 것 자체가 한국군의 불안정을 상징한다. 정보부는 꾀를 내어 함경도 인맥의 가장 강력한 멤버 중 한 사람인 박임항중장을 1 군사령관에서 물러나게 하는 데 성공했다. 이렇게 하여 권력균형의 추가 김종필쪽에 유리한 방향으로 기울었다.>.
 
 함경도 출신인 최주종 장군은 박임항으로 대표되는 함경도 군맥 의 일원으로 분류되어 왔다. 박정희가 최주종에게 친위 쿠데타를 교 사했다면 그 목적은 권력안정과 민정참여에 걸림돌이 되는 함경도 군맥을 숙청하는 명분을 만들기 위한 것이었을 가능성이 높다. 그 1 년 뒤인 1963년3월에 박정희는 반혁명 사건을 조작하여 함경도 군맥 을 숙청하고 군정연장을 발표한다.
 
 최주종의 거절로 1962년에는 실현되지 않았던 구상을 박정희는 마음속에 묻어두고 있다가 1963년에 들어서 반김종필 세력의 도전으 로 막다른 골목으로 몰리자 그 구상을 써먹은 것이 아닐까 하는 의 구심이 들기도 한다.
 
 재미 있는 것은 1963년3월의 함경도 인맥 숙청 때 최주종 장군은 박임항, 김동하(해병사단장 출신), 박창암(혁명검찰부장)등 함경도 인맥과함께 반혁명 혐의로 구속되었다는 점이다. 대구 5관구 사령관 으로 근무중이던 그가 육군방첩대에 구속되자 박정희 내외와 친하게 지내온 아내 이혜정은 호소편지를 써 들고 장충동 의장 공관으로 달 려가 박정희를 만나려 했다. 경호계장으로 근무하던 육사 11기 출신 이상훈(전 국방장관)소령이 이씨를 알아보았다.
 
 최주종이 육사 생도대장일 때 이상훈 중위는 훈육관으로 근무한 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대위는 이여사의 편지를 받아 목욕하고 나 오는 박의장에게 전했다. 몇 분이 지났을까 박의장이 인터폰으로 이 중위를 불렀다. 박의장은 어느 새 썼는지 편지와 금일봉을 건네주면 서 쌀 한 가마를 갖고 최장군 집에 갖다주라고 지시했다. 이상훈의 기억에 따르면 박정희는 다음날 김재춘 당시 정보부장을 부르더니 '최장군을 풀어주라'고 지시하더란 것이다.
 
 박정희가 이혜정 여사에게 보낸 편지는 남아 있다. 그 전문은 이 러하다.
 
 <혜송해주신 신서는 감사히 배독하였습니다. 금반사건으로 얼마 나 심려가 많으실까 마음 아프게 생각할 따름입니다. 본인은 이 시 간에도 최 장군이 설마 그러한 사건에 관련이 되었으리라고 믿고싶 지 않습니다만은 타연루자들의 진술과 방증이 있다 하여 수사기관에 서 조사가 종료될 때까지는 당분간 참아주셔야 할 줄 사료되오니 과 히 염려마시고 추이를 보시기 바랍니다. 여러 가지 복잡한 정국수습 이 단락을 지으면 본인이 직접 최장군을 한번 만날까 하고 있습니 다. 금년정초이래 여러 동지들과 친구들로부터 배신과 이탈을 당하 니 허무한 감이 들 뿐이오나 이것 역시 본인의 부덕의 소치라고 자 탄을 금할 수 없습니다. 20전연간의 동창이요 후배로서 누구보다도 신뢰하던 최장군이기에 본인의 심통 또한 비할 바 없습니다. 진심으 로 신에게 빌고싶은 마음은 최장군만은 이 사건에 직접 관련이 없다는 사실이 판명되기를 원할 따름입니다. 너무 걱정하지마시기를 바라오며 약소하나마 생계에 보태어 쓰시기 바라고 가정에 곤란지사가 계시오면 직접 말씀해주시기 바랍니다. 3월29일 박정희 배>.
 
 최주종 소장은 곧 무혐의 처분을 받고 풀려나 부산의 군수기지사 령관으로 부임했다. 박정희는 그 뒤로도 항상 최장군에게 미안한 마음을 가지고 잘해주려 했다고 전한다.
 
 (조갑제출판국부국장기자) (이동욱월간조선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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