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필의 미국 방문
미국 고관들은 한국인들과의 비공식적인 대화나 잡담까지도 보고 서로 만들어 돌려보고 보존한다. 그런 류의 보고서 하나가 흥미롭다. 1962년10월9일 정일권 주미대사는 백악관을 방문하여 케네디 대 통령을 만나게 되어 있었다. 정대사가 면담을 기다리면서 백악관 안보담당보좌관 케이슨과 나눈 15-20분 정도의 대화를 케이슨은 보고 서로 만들었다.
<그는 개인적으로 이야기하고싶다고 말했다. 그는 미국을 방문하게 되어있는 김종필 정보부장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다가오는 (민정 이양) 선거에 김부장이 간섭할지도 모른다는 우려를 나타냈다. 정대사는 김부장이 오면 국무장관이나 부통령이 그를 만나 비공식적으로, 그러나 단도직입적으로 선거개입 공작의 위험성에 대해서 경고하는 것이 좋을 것이라고 했다. 그는 김종필 부장의 월권에 대해서 되풀 이 해서 우려를 표시했다. 정대사는 김종필이 중위일 때의 인연에 대해서도 설명했다. 정일권 대사는 또 자신이 한국의 대통령 후보가 되고싶다는 희망을 밝혔다.>.
미국측은 10·26사건 직후까지 박정희의 후계자 후보로서 정일권 을 꼽는 일을 계속했다. 신중한 정일권은 한번도 그런 야심을 드러 낸 적이 없다. 이 보고서가 그의 야심을 짐작하게 하는 아마도 유일한 기록일 것이다. 정일권은 케네디 대통령과 15분간 면담했다. 케네디 대통령은 9월12일자 박정희 의장의 친서에 대한 답장을 전해주려고 정일권 대사를 부른 것이다.
케네디가 이런 이례적인 행동을 취한 이유는 박정희 의장이 자신의 친서를 정일권 대사가 직접 대통 령에게 전달하지 않았다고 불만이란 정보가 미국측에 들어왔기 때문 이다. 케네디 대통령을 만난 정대사는 '한일 국교정상화 이후 미국 이 한국에 대한 지원임무를 일본측에 떠넘기지 않을까 우려한다'고 했다. 케네디 대통령은 '한국은 경제적으로 너무나 나쁜 상태에 있 으므로 미국의 지원에다가 일본의 지원을 보탤필요가 있다'면서 '그러나 일본은 절대로 미국측의 대한군사지원까지 떠맡지 않을 것이다' 라고 안심시키려 했다. 케네디 대통령은 '이 말을 꼭 박의장에게 전 해주길 바란다'라고도 했다.
이즈음 정일권은 케네디 대통령이 맥콘 미CIA 부장 초청으로 방 미하는 김종필 부장을 꼭 만나줄 것을 간청하러 다니는 고역을 치르 고 있었다. 김종필측으로부터 대통령과의 면담을 성사시켜라는 압력 을 받고 있었기때문이다. 10월15일 정일권 대사는 윌리엄 P 번디 국 방차관보를 찾아가 '김종필 부장이 (대통령이 안되면) 부통령이라도 만날 수 있도록 해주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번디 차관보가 남긴 메모에 따르면 정일권은 '김부장은 일본과 의 국교정상화에 열쇠를 쥔 사람이다'고 말했다는 것이다. 번디 차 관보는 '정일권 대사는 심한 스트레스를 받고 있는 것 같았으며 (김 부장은) 순전히 과시용으로 부통령과 만나려고 하는 것 같다'는 논 평을 달았다. 다음날 6·25전쟁 때의 미8군 사령관 밴플리트 장군은 케네디 대통령에게 편지를 보내 김종필부장과 꼭 만나줄 것을 건의 했다. 밴플리트는 '김부장은 한국의 실력자이며 사실상의 총리이자 박정희 의장의 심복이므로 각하께서 면담해주시길 간청한다'고 했다.
10월22일 케네디 대통령은 안보담당보좌관 맥조지 번디를 통해서 밴플리트 장군에게 답을 전하게 했다. 대통령은, 자신은 김부장을 만날 수 없지만 국무장관, 국방장관, CIA부장에게 지시하여 김부장 과 양국간의 모든 문제를 진지하게 논의할 수 있도록 했으며 동생인 로버트 케네디 법무장관도 만날 수 있게끔 조치했다고 했다. 이때 케네디대통령을 비롯한 고위층은 소련과 핵전쟁을 각오하고 쿠바 미 사일 철거를 요구하는 대결을 벌이고 있을 때였다. 그런 가운데서도 김종필에 대해서는 거의 국가원수급의 배려를 계획하고 있었다.
10월15일 버거 주한 미국대사는 러스크 국무장관에게 '김종필 부 장은 일본에서 오히라 외상과 중요한 회담을 하고 미국에 도착할 것 이므로 국무장관이 만나주는 것은 찬성이나 대통령이나 부통령과의 면담에는 강경하게 반대한다'고 했다. 버거 대사는 '김부장은 내가 군사정부에 반대한다고 확신하고 있다. 따라서 국무장관께서는 증권 파동 등 부정적인 화제를 피하고 농촌개혁, 반공태세의 강화 등 성 공작에 대해서 평가해주길 바란다'고 했다. 버거 대사는 또 '군인들 이 군복을 벗고 출마하는 것은 무방하지만 선거에서군부는 중립을 지켜야한다는 점을 강조해줄 것을 건의한다'고 했다.
김종필 정보부장은 일본에 들러 이케다 수상 및 오히라 외상과 요담한 뒤 10월23일 워싱턴에 도착했다. 그는 비록 미국 CIA부장의 초대를 받고 왔으나 국무, 국방, 상무, 법무장관을 비롯하여 합참의 장, 국제개발처(AID) 처장 등 광범위한 요인들과 요담했다. 10월26 일 김종필 부장이 케네디 정부의 실력자인 로버트 케네디 법무장관 을 방문했을 때는 일종의 기싸움도 벌어졌다. 케네디 장관은 김종필 을 소파에 앉게 하고는 자신은 집무책상 위에 다리를 얹어놓고 비스 듬히 의자에 기대어 김부장을 오만하게 내려다보는 자세를 취하더라 고 한다. 화가 난 김부장도 소파에서 몸을 뒤로 제껴 천장을 바라보 고만 있었다고 한다. 로버트 케네디는 싱긋이 웃으면서 다가오더니 '귀하는 나이가 몇인가'하고 물었다.
김부장이 '1926년생이오'라고 하니 케네디 장관은 '내가 한살 아 래이군요'라고 하면서 이야기를 부드럽게 풀어나갔다는 것이다. 김 부장은 10월29일 러스크 국무장관과 만났다. 이 시기는 쿠바 미사일 위기가 소련의 양보로 절정을 넘기던 때였다.
이날 한국측에선 정일권 대사가 배석했고 미국측에선 해리만 극동문제담당 차관보와 버거 대사의 특별보좌관 니콜러스 A 나시오스가 배석했다. 나시오스는 김 종필 부장을 안내하려고 따라온 미CIA 서울지부장이었다. 이 회담의 주제는 한일회담이었다. 김부장은 도쿄에서 있었던 이케다, 오히라의 요담에 대해서 상세하게 설명했다. '계속'.
(조갑제출판국부국장기자) (이동욱주간조선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