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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국 근대화
 조국 근대화
 
 참신한 정치세력을 만들기 위해서 사전조직이란 반칙을 하게 된 혁명정부는 보다 큰 반칙을 또 하게 된다. 증권파동을 일으켜 거액을 남기고 이를 창당자금으로 쓴 것이다. 김포 해병여단장 출신 최고위원 김윤근의 기억에 따르면 김종필 정보부장은 증권파동으로 웅성거릴 때 최고위원들이 어떻게 된 일이냐고 질문하자 대수롭지 않다는듯이 답했다고 한다.
 
 '새 정당을 조직하려니까 돈이 많이 듭니다. 정당을 만드는 데 국고금을 쓸 수는 없지 않습니까. 그래서 증권시장에서 조달하여 쓴 것입니다. 원래 증권시장은 투기꾼들이 모이는 곳 아닙니까. 재미보는 사람도 있고 손해보는 사람도 있게 마련이지요. 이 방법은 제2차 세계대전중 미국 CIA가 부족한 공작비를 보충하는 방법으로 썼는데 우리도 그 방법을 모방해보았습니다.'.
 
 김윤근은 증권 파동의 피해액이 얼마인지 모를 때라 반론을 제 기할 수가 없었다고 한다. 1963년 3월28일 미국 백악관 안보회의가 케네디 대통령에게 올린 한국 정세보고서엔 '김종필이 한국 역사상 최대규모의 증권조작을 통해서 2천만 - 3천만 달러를 벌었다'고 쓰여 있다. 이 증권파동의 중심인물인 정보부 행정관 강성원도 '그때 약 20억원을 벌어 재건동지회 조직에 썼다'고 증언했다.
 
 1인당 국민소득이 80달러이던 때의 20억원은 국민소득이 백배가 된 요사이 돈가치로는 약 2천억원이다. 그만한 돈이 사전 조직에 들어간 데다가 강력한 정보부가 조직활동을 지휘하니 유능한 사람들을 모으는 데는 어려움이 적었다.
 
 이들을 합숙시켜 교육한 곳이 종로구 익선동 낙원상가 근처에 있던 춘추장이란 요정건물이었다. 교육진행을 맡았던 윤천주고려대 교수는 이렇게 증언한다.
 
 '후에 공화당 사무국 요원이 되는 이들은 거의가 정보부에서 뽑 아온 사람들이었습니다. 깨끗한 사람들을 찾다가 보니 교수, 교사, 공무원들이 많았습니다. 비자발적으로 온 사람들도 있었지만 순박 하고 성실한 사람들을 잘 골랐다는 생각을 했지요. 교육은 1기에 20- 30명씩 1주일간 했습니다. 저는 정치행태론을 강의했고, 한태연,문 홍주, 이종극 같은 학자들이 강사로 참여했습니다.
 
 교육내용의 핵심은 5·16혁명 이념을 계승하여 어떻게 하면 조국 근대화를 이룩 할 것인가, 그 방법론으로서 어떻게 하면 보스나 파벌중심의 사당이 아닌 국익 중심의 공당을 만들 것인가였습니다. 2원조직이라 해 서 말이 많았지만 우리는 영국 보수당을 모델로 삼았습니다. 당에 서 결심한 노선에 따라 국회의원들이 국회에서 활동하도록 통제하 여야 국가이익이 도모될 수 있다고 생각했고 그러자니 사무국이 강 력해져야 한다는 결론에 이른 것입니다. 사전조직이라 하지만 엄격 하게 말하면 사무국 사전조직이었습니다. 사무국 요원은 국회의원 으로 출마할 수 없다고 되어 있었습니다.'.
 
 재건동지회 사전조직의 실무책임자였던 강성원은 장교시절 미국에서 기획제도에 대해서 공부한 적이 있었다. 그는 동료 정지원 소령(정보부 차장 보좌관)과 함께 사전조직을 사실상 주도했다. 정소령도 기획장교로 이름을 날린 사람이었다. 한국군이 미국에서 배워 온 기획과 조직의 경험이 정당조직에 활용된 경우이다. 강성원이 만든 재건동지회 '조직원리'에는 이런 내용이 들어 있었다.
 
 <1. 공공조직의 원리: 개인중심이나 인물에 대한 충성을 지양하고 공익을 위해 충성하도록 한다.
 2. 점조직 원리: 파벌과 계보를 배제하고 이념중심으로 결속한다. 일체의 연계는 당의 기구를 통하도록 한다.
 3. 핵심조직의 원리: 선거 때와 평상시 구별없이 계속 적인 조직활동을 한다. 일선 당원들은 적극적인 사회참여를 통해서 국민들의 정치의식을 높인다.
 4. 영도권 확립의 원칙: 지도체계를 단일화하여 운영과 관리는 신속을 원칙으로 한다.
 5. 범국민적 조직: 선거구의 이익보다 전국민적 복지를 추구하는 민족적 지도층을 형성한다.>.
 
 사무국 요원들에 대한 교육이 공산당식 밀봉교육이었다는 일부 의 비난에 대해서 경남지역사무국장 요원으로 뽑혀올라왔던 예춘호 (뒤에 공화당 사무총장)는 '전혀 그런 일이 없었다'고 했다(회고록 에서 인용).
 
 <5기생으로 교육을 받았는데 강의는 전원이 함께 받고 수업 후 는 5 - 6명씩의 그룹별로 밤이 늦도록 토론과 의견교환을 나누며 사명감과 희망이 부푼 시간을 보냈다. 가르치는 사람이나 강의받는 사람의 구별이 없었다. 오직 새 사회건설의 담당자로 선택된 자부와 긍지, 그리고 신념이 넘치고 있을 뿐이었다. 부산으로 돌아온 나는 새 사람이 되어 있었다.>.
 
 공화당의 초대 대변인이 되는 조선일보 윤주영 편집국장은 강성 원으로부터 끈질긴 영입요청을 7개월간 거절하다가 1962년 12월에 입당을 승락하고 춘추장에서 교육을 받았다. 그는 '거기에 모인 사람들이 하나같이 순수하고 열정적이며 엘리트인데 놀랐다'고 한다.
 
 '그들은 조국 근대화, 굶지 않는 나라, 부강한 나라, 비생산적 인 정쟁이 없는 나라를 만들겠다는 일념으로 뭉친 조직이었습니다. '5·16은 군인들이 일으켰지만 국민혁명은 우리가 한다' '우리는 화분의 꽃이 되기보다는 거름이 되겠다'면서 일종의 독립운동하는 기분들이었습니다. 사무국에서 창안한 말이 '조국근대화'와 '민족 중흥'이었는데 이것이 이들의 이념이었습니다. 국가건설을 이념으로 하여 이 정도의 집단이 만들어진 것은 아마도 우리 역사상 희귀한 사례일 것입니다'.
 
 통역장교출신으로서 영자신문 '코리아 리퍼벌릭'에서 기자로 일 하던 박일영의 경우 재건동지회에 추천되어 사무국 요원이 되었다. 그는 서울시 조직담당이 되어 선거구마다 사무국장 요원을 찾아나 서는 일을 했다.
 
 용산구 사무국장 김득황(뒤에 내무차관), 중구 사무국장에 박인 각(뒤에 평남도 지사 역임)이 발탁되었다. 박일영 자신은 합동통신 외신부 기자 장한철(현재 우리 통상 대표)을 추천했다. 장한철은 재건동지회에 들어간 뒤 합동통신 외신부에서 함께 일한 이영희(한 양대학교 교수 역임)기자를 추천했다. 그의 이름은 조사부로 넘겨져 포섭대상에 올랐다.
 
 (조갑제출판국부국장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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