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부의 JP 퇴진 압력
1963년1월24일 박정희 의장은 중개인을 통해서 사뮤엘 버거 주한 미국대사에게 최고회의 내의 파벌싸움을 해결하기 위한 방침을 다음과 같이 전했다고 한다(딘 러스크 미 국무장관에게 올린 버거 대사 의 비밀보고전문).
<김종필은 여당에서 탈당하여 상당기간 외유를 한다. 반김종필 세력인 다섯명의 최고위원들을 해임하기로 한 결정을 취소한다. 최고회의와 민주공화당은 분리한다. 박의장은 하반기의 대통령 선거에 출마한다.>.
다음날 버거 대사와 멜로이 미8군사령관은 박정희와 김종필을 만 나보고서는 '어제 박정희 의장이 통보해온 계획대로 일이 진행되지 않고 있다. 김종필과 그에 대한 반대세력이 타협하지 않고 싸움을 계속한다면 무장충돌 가능성도 있다'고 워싱턴으로 보고했다.
25일 오후 국제호텔에서 공화당 발기위원회의 민간인 대표와 최 고회의 대표들이 대좌하여 김종필의 발기위원장 사퇴 문제를 두고 격론을 벌였다. 김정렬(전 국방장관, 후에 국무총리 역임), 김재순 (전 재무차관, 후에 국회의장), 김창근(뒤에 공화당 의원역임)등 민 간인들은 김종필의 사퇴에 반대했고 오정근(뒤에 국세청장역임),이 종근(뒤에 국회의원 역임), 조창대(뒤에 국회의원), 조남철(뒤에 국 회의원) 등 최고회의 대표들은 사퇴해야 한다고 맞서 결론을 내리지 못했다. 박정희 의장도 공화당 발기인들에게 김종필의 사표를 수리 하도록 종용했으나 이들은 말을 듣지 않았다. 김종필은 창당을 지휘 하면서 이미 박정희도 마음대로 할 수 없는 독자적인 정치세력을 구 축하고 있었던 것이다.
박정희 치하 18년간 많은 여당 정치인들이 명멸했으나 김종필을 제외한 모두는 박정희란 태양을 중심으로 도는 위성에 불과했다. 독 자적인 궤도를 가진 김종필이란 항성의 정치적 지지기반이 주로 민 간인이었다는 점이 흥미롭다.
1월26일 딘 러스크 국무장관은 버거 대사 앞으로 훈령을 내려보 냈다. 러스크 장관은 군부의 내분에 대처하는 미국측의 자세는 김종 필과 반대세력의 타협을 권고하는 방향이 되어야 한다고 했다.
<박의장이 김종필 세력에게 승리를 안겨주어 그가 도전을 받지 않고 권위주의 정당을 추진하도록 해서도 안되고 반김종필 세력에 의한 쿠데타도 민정이양을 혼란에 빠뜨릴 것이다. 특히 그런 쿠데타 의 지도세력이 함경도 인맥이 된다면 대중적 지지를 얻지 못할 것이 다.>.
1월27일 공화당 창당발기위원회는 김종필과 반김종필 세력의 중 심인 김동하 최고위원의 당직 사표를 동시에 반려하기로 결의했다.
창당작업은 다시 김종필의 지휘하에서 진행되었다. 2월2일 공화 당 발기인대회는 창당준비위원회를 열고 위원장에 김종필, 부위원장 에 정구영 변호사를 추대했다. 김위원장은 '박정희 의장과 최고위원 들은 창당 대회 때는 당에 참여할 것이다'고 했다. 이날자 조선일보 1면에는 야당이 연합전선을 펴고 박의장의 대통령 선거 출마를 저지 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고 보도했다.
2월4일부터 공화당은 전국 131개 지구당창당준비대회를 갖기 시 작했다. 2월5일 박정희 의장은 전년의 흉작에 기인한 식량부족을 해 소하기 위해서는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의 일부를 중단하는 일이 있 더라도 부족한 양곡을 도입하여 국민을 굶기지 않도록 하라'고 내각 에 지시했다. 정치위기와 경제위기가 같이 왔다는 신호였다.
7일밤 박의장은 김종필 위원장을 대전 유성의 한 호텔로 불러 자 정 무렵까지 심각한 대화를 나누었다. 이날 낮엔 버거 대사 부처가 윤보선 전 대통령 집을 찾아가 요담함으로써 박정희의 심기를 건드 렸다. 다음날 김종필은 기자들에게 '공화당은 오는 26일 박정희 의 장을 대통령 후보로 지명하게 될 것이다'고 말했다. 겉으로는 이렇 게 박의장의 출마를 기정사실화하고 있던 김종필이었지만 속은 타고 있었다. 2월11일 최고회의 대변인인 이후락 공보실장은 '박의장의 대통령 출마 여부는 아직 결정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버거 대사는 2월8일 김종필과 두 시간 동안 요담한 뒤 국무부에 보고했다. 이 보고서에 따르면 김종필은 '박정희 의장은 큰 실망에 빠져 있고 대통령에 출마하지 않으려고 한다. 나는 생각을 바꾸도록 설득하고 있다. 나도 정치에서 손을 떼고 은퇴할 생각이다'고 말했 다는 것이다. 주체세력 내분은 드디어 박정희의 마음을 흔들게 된 것이다.다음날 김종필 위원장은 기자들에게 '버거 대사가 한국의 정 치 지도자들을 만나고 다니는데 내정간섭이라고 생각되는 일은 삼가 해주길 바란다'고 했다.
박병권 국방장관은 2월13일 김종오 육군참모총장 등 3군 총장과 해병대사령관을 데리고 장충동의 박정희 의장 공관을 찾아갔다. 이 들은 박의장에게 김종필의 월권에 대한 군부의 불만을 전하면서 김 종필의 공직사퇴와 외유를 건의했다고 한다. 다른 사람들이 떠난 후 박장관은 박의장과 마주 앉아 요담했다. 이 자리에서 박정희는 전화 로 김종필을 불렀다고 한다. 박정희는 군부 대표들의 건의내용을 김 종필에게 전한 뒤 '좀 쉬어야겠어'라고 했고 김종필은 선선히 '말씀 을 따르겠습니다'고 하더란 것이다.
지금 경기도 성남시에 살고 있는 박병권은 '우리는 군부의 분위기를 전하고 건의하는 입장이었지 최후통첩하는 자리도 위협하는 자리도 아니었다'면서 '박정희 의장이 민정에 참여해선 안된다'는 건의를 한 기억은 없다고 했다.
2월14일자 조선일보 조간은 '박정희 의장이 간밤에 김종필 위원장을 불러 새벽 2시까지 요담했다'면서 '박의장은 공화당이 자신을 대통령 후보로 지명하더라도 이를 수락하지 않기로 마음을 정한 것으로 보인다'고 보도했다. '계속'.
(조갑제출판국부국장기자) (이동욱월간조선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