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분
김종필 정보부장은 1963년1월5일 육군준장으로 전역한 뒤 9일 정보 부장직을 김용순 최고위원에게 념겨주고는 가칭 재건당(후에 민주공화 당) 창당 작업을 공개적으로 지휘하기 시작했다. 김병로(전 대법원장) 등 민간 정치인들도 가칭 민정당을 중심으로 하여 창당에 나서고 있었다.
1월8일과 9일 송요찬 전 내각수반이 처음으로 박정희-김종필 노선 을 정면으로 공격하고 나섰다. 6개월 전 주체세력 내분에 휘말려 물러 났던 그는 '박정희 의장과 최고위원들은 민정참여를 포기하고 예편해 야 하며 국가는 이들의 공을 인정하여 우대해야 한다'고 자신의 소신 을 밝혔다. 최고회의 이후락 공보실장은 즉각 반박했다.
''각하 드골식으로 해야 합니다. 개헌안 국민투표와 대통령 선거를 한데 묶어 각하가 20년은 집권하도록 해야 합니다'라고 말하던 때가 언젠데 그런 이야기를 할 수 있습니까. 그는 3·15부정 선거 때도 군 의 책임자로서 ···.'.
모든 위기가 그러하듯 5·16주체세력의 위기도 내분으로 시작되었 다. 1월8일 박의장은 직접 최고회의 간담회를 소집했다. 그는 화가 난 음성으로 내뱉었다.
'새 정당에 대해서 불만이 많은 모양인데 속 시원히 털어놓으시오. 어디한번 들어봅시다.'.
김종필의 독주, 사무국 우위, 증권조작과 창당자금 문제 등에 대해서 불만들이 쏟아졌다. 온건한 김윤근(김포 해병여단장 출신)은 '정치 지망생들이 입당추천을 부탁하는데 추천할 길이 없어 답답합니다. 당의 문호를 개방할 수 없습니까'라고 말했다. 박의장은 이렇게 결론내 렸다.
'최고위원중에 몇 사람이 먼저 들어가 고쳐야 될 것이 있으면 고치 도록 합시다.'.
1월16일 김동하(해병사단장 출신), 김재춘(육군방첩부대장 출신), 오정근(해병여단 대대장 출신), 이석제(최고회의 법사위원장), 강상욱 (육사9기) 최고위원이 예비역에 편입되면서 최고위원 자격을 유지한채 김종필의 당으로 들어간다.
김종필은 1월11일 조선일보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우리 당은 자유 민주주의를 지향하지만 그것은 빈곤속에선 구현될 수 없다'고 말했다.
기자가 '빈곤속에서는 자유민주주의가 있을 수 없고 자유민주주의 로써는 빈곤에서 탈피할 수 없다는 모순, 말하자면 후진국이면서는 자 유민주주의를 누릴 수 없고 자유민주주의를 누리자면 후진국일 수 없 다는 모순이 생긴다'고 묻자 김종필은 이렇게 답했다.
'후진국에는 여러 가지 불만이 많다. 빈곤상태에서 국민들을 서서 히 끌어올리면서 그 불만을 다른 데로 해소해나가는 길밖에 없지 않겠 나. 불만을 해소하는 방법으로 '국민의 적을 만들어라'는 사람도 있다. 우리는 25마일 바깥에 적을 두고 있는데도 국민의 적대의식은 희박해 지고 있다. 국민의 적대의식을 강화하면서 빈곤을 해소해가는 길밖에 없지 않은가.'.
1월14일 박정희 의장은 전진한 등 야당측 대표 세사람과 만났다.박 의장은 정치정화법 폐기와 조기선거 반대를 주장하는 이들의 요구를 거부했다. 박의장은 이렇게 말했다.
'민주당이 공민권제한법을 만들었는데 이제 와서 그들이 정치정화 법을 반대한다는 것은 모순이오. 따지고싶으면 민주당에 가보아야 할 것이오. 정치금지에 묶여 있는 정치인들을 추가로 해제하고싶지만 국 민을 납득시킬 명분이 있어야 합니다. 요사이 나한테는 하루에도 수십 통의 진정서가 들어오는데 왜 구정치인들을 풀어주었느냐고 따지는 내 용들이오.'.
1월18일 김종필을 위원장으로 추대한 민주공화당 발기위원회는 조 선호텔에서 발기선언문을 발표했다. 발기문은 '자유민주주의의 새로운 실천으로서의 민족중흥'을 앞세우면서 '새 한국은 자주, 자유, 민주, 공화의 한국이다'라고 선언했다.
1월19일 토요일 저녁 오치성, 박원빈, 정세웅, 오정근, 김윤근 최 고위원은 김동하 위원 집에 모였다. 이들은 공화당의 전면적 구조개편 을 건의하기 위하여 개별적으로 박의장을 만나기로 했다. 자신들의 뜻 이 받아들여지지 않으면 사표를 내기로 약속했다. 다음날 신문에 김종 필 위원장이 '공화당은 국민의 정당이다. 군인출신을 특별히 우대하지 않는다. 비례대표에 기성정치인들을 많이 포함시키겠다'고 말한 기사 가 실렸다. 이것도 최고위원들을 자극했다. 김종필 세력과 반대 세력 간의 갈등은 상당 부분 감투싸움의 성격을 띠고 있었다.
1월21일 월요일 점심 때 최고회의 식당에서 석간신문을 읽던 김윤 근 등 최고위원들은 깜짝 놀랐다. 김동하 위원이 사표를 내고 김종필 과 공화당을 비판한 기사가 실린 것이다. 김종필에 대해 불만이 있던 최고위원들도 '할 말이 있으면 내부에서 조용하게 할 일이지 왜 신문 에다가 먼저 터뜨린단 말인가'하고 분노하고 있었다. 1월23일 최고회의 이후락 대변인은 최고회의와 공화당측이 말썽 많은 사무국 우위의 공화당 2원조직을 일원화하는 등 4개항에 합의했다고 발표했다.
①당중앙 사무국은 당무회의 소속으로 한다
②도당 사무국은 도당 위원회의 한 기구로 한다
③지구당 사무국은 폐지한다
④사무당원제를 폐지하고 일반당원제로 통합한다.
이는 박의장의 요구를 김종필이 당과 상의 없이 받아들인 것이었다. 윤주영 공화당 임시대변인은 '최고회의가 정당결성에 간섭하는 것은 본연의 임무가 아니다'면서 '전혀 사전 연락이 없었던 일방적 발표'라 고 반격했다. 이날 최고위원들은 두차례 회합하여 '김종필 위원장이 당조직에서 물러날 것'을 요구하는 결의를 했다. 이들은 이 결의를 이주일 부의장을 통해서 박의장에게 전달했다.
24일 오전 김종필 공화당 발기위원장은 윤주영 대변인을 통해서 최 고회의와의 내분에 책임을 지고 당직에서 물러날 뜻을 공식적으로 밝혔다. 박의장은 이날 오후 최고위원들을 불러 모았다. 그는 '최고회의 는 공화당에 간섭하지 말 것, 전담 최고위원들을 제외한 모든 최고위원들은 공화당에 참가할 것' 등 6개항의 수습책을 지시했다. '계속'.
(조갑제출판국부국장기자) (이동욱월간조선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