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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군사령부 연병장
 1군사령부 연병장
 
 1963년 3월6일 박정희 의장과 동승하여 원주로 가던 민기식 1군 사령관은 한해 전에 있었던 일이 생각났다. 그날 야전군을 시찰하러 온 박의장을 모신 차가 원주역 못 미쳐 어느 국민학교 앞을 지나갈 때였다. 국민학교 2학년 정도밖에 안되는 앳된 소년이 박의장과 민 장군이 동승한 차 앞으로 달려 나오면서 '박정희 이 나쁜 놈의 새끼 야!'라고 소리지르면서 돌을 던졌다. 돌은 정통으로 유리창에 맞았 나 깨지지는 않았다.
 
 민장군이 얼른 주위를 둘러보니 통행인은 보이지 않았고 그 소년은 달아나지 않고 노려보고 있었다.
 '저 어린 것이 뭘 알겠습니까. 그냥 가시지요.'.
 
 박의장도 묵인하여 차는 사령부로 직행했다. 민장군이 추측컨대 그 학생의 가족중 누군가가 5·16혁명으로 한맺힌 피해를 본 것이라 생각했다.
 
 민장군은 그때 묵묵히 참아준 박의장을 고맙게 생각하고 있었 다. 이런 상념에 잠겨 있는 사이 차는 군사령부에 도착했다. 박의장 과 민장군은 사령관 숙소에서 새벽 2시까지 통음했다. 그 자리에서 도 박의장은 군 수뇌부의 이름들을 대면서 '그자들을 믿었는데 죽일 놈들이야. 하기야 죽음을 같이 하기로 맹세했던 혁명동지들도 그 모양이니 그까짓 놈들이야...괜히 혁명했어. 괜히'라고 중얼거렸다.체념한 듯한 박의장의 모습을 보는 민기식의 마음도 언짢았다.
 
 민기식은 아무리 술을 많이 마셔도 새벽 4시면 일어났다. 박의 장은 늦게 자고 늦게 일어나는 편이었다. 민기식 사령관이 아침 8시 에 박의장숙소에 들렀더니 아직 일어나지 않고 있었다. 간밤의 낙담 하는 모습이 떠오른 민기식은 불현듯 '혹시 박의장이 자살한 것이 아닌가'하는 생각을 했다. 그가 불러모은 장교들은 연병장에서 기다 리고 있었다. 아침 8시30분쯤 일어난 박의장은 '얼마나 모였습니까' 하고 민장군에게 물었다.
 
 '중령 이상은 다 모였습니다. 박의장에게 기대하는 사람들이 많 습니다. 서운해 하는 사람들이 많으니 납득할 만한 이임사를 하시는 것이 좋겠습니다. 나도 오늘부로 사표를 내겠습니다.' '말도 되지 않는 소리 하지마십시오. 신정부가 들어서도 공무원 들은 괜찮을 겁니다. 자진해서 사표낼 필요는 없습니다.'.
 
 이날 박정희가 원주 1군 사령부 연병장에 모인 장교들을 앞에 두고 준비된 원고도 없이 즉석 연설로 토로한 내용은 그의 정치행로 를 바꾸는 한 계기가 되었다. 그가 9일 전 민간인 정치인들과 함께 민정불참을 선서한 이후 그를 혼돈과 방황, 그리고 울분에 빠뜨렸던 것들이 이 연설을 통해 정리되고 그는 새로운 궤도를 타게 된다. 김 종필의 외유를 전후하여 흔들렸던 박정희는 다시 권력에의 의지를 세우게 된 것이다.
 
 박정희는 먼저 '이런 자리에 오면 내가 살던 집에 다시 돌아오 는 그런 감을 금할 수가 없습니다'라고 전제한 뒤 정치적 중립에 대 한 소신을 밝혔다.
 
 '군이 정치에 관여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정치인들도 군에 간섭 하지 않아야 군이 엄정한 중립을 유지할 수가 있습니다. 과거에 일 부 군 장교들 중에 지각없는 장교들이 정치인들을 따라다니면서 추파를 던지고 개인의 출세와 영달을 위해서 군인답지 못한 행동을 했다 는 것은 군의 명예를 손상시킨 일이었습니다.'.
 
 '그들에게 (정치를) 맡겼다는 것은 여러가지 추태를 부리고 구악 을 저지르고 민주 발전에 해독을 끼친 그런 사람들이 또 다시 그 얼 굴, 그 인물들이 나와서 모든 것을 해달라고 하는 것은 절대 아닙니 다. 요 얼마 전에 외국인사가 다음과 같은 질문을 본인에게 한 바가 있습니다. 의장은 그들에게 모든 것을 믿고 모든 것을 맡기고 모든 것을 양보했는데 만약 그 사람들이 이번에 국민들에게 약속한 선서를 그들이 이행하지 않아 정치적인 위기가 도래한다면 의장은 방관 만 하고 모른 체하고 있겠느냐고 물었습니다.
 
 본인은 여기에 대해서 이런 해답을 한 적이 있습니다.
 
 불행하게도 그러한 사태가 도래했을 때 이 나라는 몇몇 정신차리 지 못한 정치인들을 위해 있는 나라가 아니며 하물며 그들이 장난을 치기 위한 장난판이 아닙니다. 나는 그 외국 인사에게 반문했습니 다. 당신은 그런 경우에 이것을 못본 체하는 것이 애국적인 행동인 가, 방관하지 않는것이 애국적인 행동인가 하고 반문하고 거기에 대 해서는 더 이상 답을 하지 않았습니다.'.
 
 여기까지 들은 기자들은 원주시내 우체국과 전화국으로 줄달음 을 치기 시작했다. 3월 8일자 모든 신문은 '국민에 해독끼치고 질서 혼란케 한 기성 정치인은 일선에서 물러나야. 방임하는 것이 애국이 냐, 방관않는 것이 애국이냐...'란 제목으로 1면 머리에 박 의장의 경고를 실었다. 누가 읽어도 정치에 혼란이 생기면 혁명정부는 방관 만 하고 있지는 않을 것이라는 뜻이 담긴 연설이었다.
 
 2·27선서 이후 현실정치를 떠난 것처럼 보였던 박의장은 이 연 설로써 다시 정치적인 위상을 과시했다. 이 시기의 박정희의 행태에 대한 가장 큰 오해는 그의 민정이양 불참선언을 '정치적 하야'로 해 석하는 것이다.
 
 박정희는 민정불참 선언을 하면서도 민정이양과 함께 군복을 벗 겠다는 약속을 하지 않았다. 이는 그가 권력에의 집념을 버리지 않 고 반격의 기회를 기다리고 있었음을 보여준다.
 
 3월8일자 조선일보는 1면 하단 '만물상'란에서 박정희가 주장해 온 세대교체론을 비판하면서 이렇게 썼다.
 
 '인격적으로 원숙해질 무렵에 이른 사람에게 물러나라고 하는 것 은 기본권의 침해이다. 오해없기 위해 만물상자의 연령을 밝히면 이 제 겨우 40고개를 넘긴 애숭이다.'.
 
 박정희는 이때 나이 마흔여섯, 벌려놓은 일은 많고 하고싶은 일도 많은 팔팔한 장년이었다. '계속'.
 
 (조갑제출판국부국장기자) (이동욱월간조선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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