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라한 행차
민기식 중장이 5·16혁명 직후 2군사령관이 되어 대구에 부임 했더니 청수원이란 음식점에서 '박정희 부사령관이 있을 때 갚지 않고 간 외상값 500만환'을 청구해왔다. 민기식은 '접대부도 없고 술은 정종, 막걸리에 안주는 빈대떡밖에 없는 집인데 이렇게 많이 마실 수가...'하고 혀를 찼다고 한다. 두 달쯤 뒤 박정희 의장이 대구를 시찰한 자리에서 민사령관에게 물었다.
'민장군은 외상 술값이 얼마나 됩니까.' '2군단장 할 때 한 60만환쯤 빚지고 왔습니다.' '겨우 그 정도입니까. 여기 100만환을 드릴테니 앞으로는 현금으로 잡수세요.' '이건 부정부패에 해당되지 않습니까?' '민장군은 사리사욕을 위해서 쓴 것이 아니라 부대운영을 위해서 쓴 것이니 애국적입니다.' '술이 무슨 애국적입니까.'.
술을 애국적으로 마시는 점에서 통하는 게 있었던지 박의장은 함경도 군맥의 대표격인 박임항 1군사령관을 교체하면서 민기식을 후임자로 발령했다. 1962년5월의 일이었다.
부임 직후 민기식은 휴전선을 따라서 근무하는 일선 중대장 25명을 사령관 관사 앞뜰에 집합시키고 부사령관, 참모장, 사령부 전 참모들을 배석시켰다. 민 사령관은 35도짜리 소주 다섯 상자를 가리키면서 선언했다.
'이제부터 불평불만을 털어놓는 '욕대회'를 하겠다. 앞에 큰 식기에 부은 술을 마시고 녹음기 앞에 가서 마음대로 털어놓으 라. 여기에서 한 말은 내가 책임진다. 다만 우리 민족의 나갈 길 을 아는 유일한 지도자 박정희 장군과 우리의 우방 미국을 욕해선 안된다. 나머지는 나에게 개xx 라고 해도 좋으니 마음대로 욕하 라. 욕을 제일 잘 한 자에게는 일등 상을 주겠다.' 민기식 1군사령관은 일선 중대장들을 상대로 벌인 '욕대회'에서 그들이 털어놓 은 70여개의 건의사항을 정리하여 녹취기록과 함께 박정희 의장을 찾아갔다. 통신장비과 탄약의 부족, 그리고 복지문제에 대한 불만 이 대부분이었다. 박의장은 '나도 야전군 참모장을 할 때 느꼈던 문제점들인데 즉각 해결하겠소'라고 했다.
민기식 중장은 또 북한군이 비무장지대에 근무중이던 우리 장 교와 하사관을 납치해가자 그 보복으로 특공작전을 벌여 북한군장 교 두 명을 납치해왔다. 멜로이 미8군 사령관은 '북한측에서 자꾸 만 장교두 명을 국군이 납치했다고 방송을 하고 있는데 어떻게 된 일인가'하고 물었다. 민장군은 '그런 일이 없다'고 버티다가 한참 뒤에 미군측에 넘겨주었다. 1964년에 미군 헬기가 북한지역에 불 시착했을 때 미군은 전향하지 않고 있던 북한군 장교 한명을 보내 주고 미군 조종사를 건네받았다.
1963년3월6일 김재춘 정보부장은 이른바 4대 의혹사건(증권조 작과 공화당 사전 조직, 워커힐 건설, 새나라자동차, 회전 당구대 도입)의 수사 중간발표를 했다. 정보부 전 간부 등 관련자 15명을 구속 수사중이란 것이었다. 박정희로선 자신이 김종필에게 묵인해 준 사건들인데 여론에 밀려 관련자들이 잡혀들어가니 기분이 울적 했을 것이다.
그 하루 전 박정희는 강원도 지역을 시찰한다는 명목으로 춘천 미군 비행장에 내렸다. 민기식 사령관은 자신의 관내 에 온 박의장을 영접하려고 원주에서 춘천으로 가려 했더니 김종 오 육군참모총장이 전화로 '왜 정치적으로 노느냐'고 따졌다. 신 병으로 한달여 입원했다가 최근에 복귀했던 민기식은 박의장의 민 정불참 선언 이후 군내의 분위기기 묘하게 돌아간다고 생각했다.
민기식이 춘천 비행장에 나가보니 박의장의 행차는 과거에 비 해서 초라했다. 수행자는 이후락 공보실장, 장경순최고위원, 그리 고 수행기자들이 전부였다. 출영나온 인사들도 몇 안되었다. 박의 장은 '나는 이제 정치에서 손을 뗐으니 나오지 말게 하라'고 지시 했다는 것이다. 박의장을 수행한 동아일보 이만섭 기자가 민기식 사령관에게 다가오더니 '요사이 일선분위기가 어떻습니까'라고 물었다. 민기식은 대강 이렇게 대답했다고 한다(미공개 회고록).
'서울에서 정치가 소란스러운데 정치가 안정되어야지 그렇지 않으면 일선이 불안해진다. 정부에 나갔던 군인들이 원대복귀한다 고 하나 그들의 복귀를 좋아할 사람이 누가 있겠는가. 군의 지휘 체계는 허물어지고 말았다.' 이만섭 기자가 전화로 부른 기사내용 은 다소 달랐다. '군단장급 이상의 장성들이 모임을 갖고 박의장 이 민정에 참여해야 한다고 건의하기로 했다'는 요지였다. 김종오 총장은 이 기사의 진위를 확인하려고 민기식사령관을 전화로 찾았 으나 민장군은 일부러 전화를 받지 않았다. 김종오 총장은 '이 기 자를 구속해서 진부를 가리자'고 나왔으나 재치있는 이후락이 '그 문제는 여기서 알아서 처리하겠다'고 했다.
이날 춘천의 한 호텔에서 묵은 박의장 일행은 다음날 아침 호 텔을 나오다가 키가 큰 이만섭 기자와 눈이 마주치자 '이만섭기자 아직 안잡혀갔군. 잡아가버리지 않고'라고 농담을 했다.의외로 표 정은 밝았다.
박정희 의장은 원주로 가는 차중에서 동승한 민기식 장군에게 심경을 토로했다. 그는 한숨을 쉬면서 '괜히 혁명을 해가지고 정 치에 발을 잘못 디뎠어요. 죽일 놈들...'이라고 하다가 '혁명동지 들끼리 불화가 생기고 뜻이 맞질않아 결국 헤어지게 되었다'고 했 다. 박정희는 또 '민장군, 머리나 식힐겸 바람이나 쐴 겸 해서 설 악산에나 가십시다'라고 했다. 민기식은 정색을 하고 말했다.
'그만두시는 길에 이임사라도 하십시오. 내일 사령부로 중령급 이상 장교들을 다 부르겠습니다.' '그러면 훈련도 못하는데 그만 두시오. 그리고 민장군도 그만둘 사람을 따라 다닐 필요가 없습니다.'(계속).
(조갑제출판국부국장기자) (이동욱월간조선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