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칠게 다루다
김재규를 태운 버스가 전복사고를 수습하고 보안사 서빙고 수사분실에 도착한 것은 새벽2시30분쯤. 김재규는 피의자 복장으로 갈아입었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고 전해진다.
'내가 각하를 살해했다. 이제 세상은 다 끝났다. 수사관 자네들도 살 궁리를 찾아야 돼.'.
김재규는 또 정승화 총장도 사건현장에 있었고 같이 차를 타고 육 군본부로 왔다고 말했다. 이렇게 되니 수사관들이 동요하는 것이었다. 쿠데타가 진행되고 있다, 내일 아침이면 우리가 반혁명분자로 몰릴지 도 모른다는 공포감에 휩싸이는 분위기였다. 이때 이학봉 수사과장이 나서서 수사관회의를 소집했다. 이중령은 이렇게 말했다.
'우리 손에 지금 국가의 흥망이 달려 있다. 목숨을 걸고 수사를 철저히 하여 빨리 김재규의 공모자를 색출해야 한다.'.
보안사령관출신이기도 한 김재규를 제대로 조사하려고 하는 수사 관이 없었다. 취조실로 들어와서는 '부장님, 부장님'이라고 하면서 말도 제대로 못붙이는 수사관도 있었다. 이학봉 중령은 김재규를 정 동분실에서 서빙고로 호송해온 신동기 수사관을 불렀다.
'당신이 데리고 왔으니 책임지고 조사하시오.'.
키는 작지만 갖가지 무술에 능하고 간이 큰 신동기는 '이왕 어느 쪽으로든 결정을 보아야 할 상황이라서 무식하게 밀어붙였다'는 것이 다. 그는 한 달 전 중앙정보부 부설 정보학교에서 여섯 달 과정의 정 보교육을 마칠 때 성적이 우수하여 김재규 부장으로부터 상을 받은 적도 있고 호송하는 과정에서 다소 정이 들기도 했었다.
그러나 지금은 안면을 몰수할 때라고 판단했다. 김재규와 공모한 반란부대를 알 아내 조치를 취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수사관들을 지배하고 있었다. 이런 긴급한 상황에서 자백을 빨리 받아내는 방법은 물리력에 호소하 는 것이다.
'어이, 김재규, 솔직히 이야기하자. 어느 군부대를 몰고올 거야. 우리도 알아야 손들고 항복할 것 아닌가.'.
신수사관은 이때부터 한 30분간 김재규를 '거칠게' 다루었다. 정 보부장 김재규는 살인범으로 전락하고 있었다.
'어느 군단과 결탁했어.' '없습니다. 단독으로 시해했습니다.'.
'미국과 손잡았나.' '아닙니다.'.
김재규는 쇠로 만든 의자에 앉았다가 나뒹굴어질 때마다 스스로 의자를 바로 세운 뒤에 자세를 딱 바로잡고 앉아서 다음의 타격을 기다리는 것이었다. 꼭 일본무사 같았다. 비굴한 모습을 보이지 않으려고 애썼다. 모니터 화면을 통해서 그 장면을 지켜보고 있던 이학봉 중령은 김재규가 동원한 부대가 없다고 판단했던지 신수사관에게 '그만하고 나오라'고 했다. 그 뒤로는 정식 신문이 시작되었다.
육군본부 벙커. 27일 새벽1시 직전에 헌병감 김진기 준장이 총장 실로 오더니 김재규 체포완료 보고를 했다. 정총장은 국방부장관실에 있는 김계원 실장에게 이 사실을 알려주었다. 정총장은 한참 있다가 국무회의 상황을 알아보려고 국방부로 갔다. 복도에서 전두환 보안사 령관을 만났다. 전소장은 쪽지에 쓴 메모를 보여주면서 '김재규가 압 송차안에서 횡설수설한 걸로 보아서 범인이 틀림이 없습니다'고 말하 는 것이었다.
전두환 소장은 '세상에 중정부장이 각하를 시해했다니...'라고 말 하면서 어이없어 했다. 정승화 총장은 전소장으로부터 수사계획을 보 고 받은뒤에 노재현 국방장관에게 갔다. '김계원 실장이 각하시해장 소에 김재규와 같이 있었다고 하니 아무래도 연행을 해서 조사를 해 야겠습니다'라고 하니 장관도 동의했다. 정총장은 전두환 소장에게 연행지시를 했다. 그 직후에 김계원 실장이 장관실로 들어왔다.
정총 장은 그의 모습을 보니 도망할 사람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 서 다시 전소장에게 '연행하지 말라'고 지시했다는 것이다(정승화 총 장의 1979년11월1일자 참고인 진술서. 김계원은 이틀 뒤인 29일에 연 행되어 구속된다).
이학봉중령은 이날 아침 김재규에 대한 1차신문 결과를 수사관들로 부터 보고받는다. 수사관들은 시해현장에는 김계원 실장뿐 아니라 정 승화 총장도 있었다고 보고하면서 두 사람을 연행 조사해야 한다는 의 견을 내놓았다. 이날 오전11시 이학봉 수사과장은 오희명 과장과 함께 합동수사본부장이 된 전두환 소장에게 수사보고를 한다. 이학봉 중령 은 김계원, 정승화 두 사람을 구속하여 수사해야겠다고 건의했다.
'처음엔(전두환 사령관이) 그렇게 하라고 해서 막 문쪽으로 걸어가 는데 다시 부르더니 '김계원 실장은 구속수사하라, 그러나 정승화는 어제 계엄사령관이 됐다, 그러니까 함부로 할 수 없다. 지금서부터 극 비리에 내사를 더해봐라'는 취지로 지시했지요.'(5·18사건공판기록).
이중령이 전두환 소장에게 정승화 총장에 대한 수사필요성의 이유로 적시한 내용은 이러했다.
'육군총장이 대통령이 돌아갔다는데 아무런 조치를 하지 않았다, 대 통령의 시신수습과 범인색출을 한 흔적이 없다, 청와대를 포위시켰는데 그 이유를 알 수가 없다.'(5·18사건공판기록) 이 보고를 받은 전두환 소장은 이렇게 생각했다.(5·18사건공판기록).
'정보부장, 대통령비서실장, 육군참모총장이 공모한 조직적인 내란 이다.완전한 혁명이 아닌가 생각했습니다. 이런 상태에서 정 총장을 구 속하면 배후세력에 의해서 또 다른 내란행위가 일어날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하였습니다.'.
이때 전두환 소장은 정승화 총장이 시해사건 현장 부근에 김재규의 초대로 와 있었다는 이야기를 처음 들은 것이었다. 김재규가 단독범인 지 여부가 불투명한 시점에서 전두환 소장과 합수부 수사관들은 일단 정총장을 공범용의자로 의심하고 있었다.
정승화 총장이 계엄사령관으 로 임명된 지 불과 일곱 시간이 흐른 시점에서 그가 이런 의심을 받고 있었다는 것은 중대한 의미를 지닌다. 전두환 소장이 정권탈취에 대한 야심을 가졌다고 보기 힘든 시점에서 그가 박대통령 서거 직후 강자로 등장한 계엄사령관을 구속조사대상자로 보고 있었다는 점에서 12·12사 건으로 가는 문은 이미 열리고 있었던 것이다.
[조갑제 출판국부국장·이동욱 월간조선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