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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인 데모
 군인 데모
 
 3월15일 오전 박병권 국방장관은 쿠데타 음모사건에 책임을 지고 김 현철내각수반에게 재차 사표를 제출했다. 그가 사무실로 돌아와서 짐 정 리를 한 뒤 식사를 하고 있는데 급보가 들어왔다. 최고회의 건물 앞에서 군인들이 '장관 물러가라!' '군정연장하라!' '계엄령 선포하라!'고 시위 를 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박병권 장군은 별명이 '면도날'이었다.
 
 1960년 4·19 후 김종필 중령을 중심으로 한 육사8기 영관장교들이 정 군운동을 할 때는 육본 인사참모부장으로서 박정희 소장과 함께 그들을 엄호해주었다. 이 때문에 매그루더 당시 미8군 사령관이 우리 정부와 군 수뇌부에 대해 '두 박장군을 전역시켜라'고 강하게 권고하기도 했었다. 정군 운동이 벽에 부딪치자 영관 장교들은 혁명을 결심하고 추대할 지도 자를 고르고 있었는데 박정희 소장과 함께 항상 후보에 올랐던 이가 박 병권이었다.
 
 박 국방장관은 군인들의 시위 현장으로 갔다. 김진휘수도방위사령관 이 나와서 시위 군인들에게 해산을 종용하고 있었다. 80여명으로 추산되 는 군인들은 최고회의에 파견나가 있는 장교들과 하사관들이었다. 그들은 주먹을 휘두르면서, 또 구보도 하면서 '군정연장'요구 구호를 외치고 있었다.
 
 시위자들은 수경사 헌병대에 연행되었다. 이 시위는 박정희 의장의 경호책임자 박종규가 조직한 것이었다고 한다. 박의장이 박종규 중령에 게 그런 시위를 지시한 것인지 박종규가 박의장의 뜻을 읽고서 감행한 시위인지는 알 수 없으나 이는 박정희가 바라던 바였을 것이다. 여야 정 당과 언론은 일제히 건군 이래 최초의 군인 데모를 준엄하게 비판했다. 박의장도 15일 이후락경호실장을 통해서 성명을 발표했다. 박정희는 이 성명서를 통해서 '이번 쿠데타 음모 사건을 계기로 후환의 염려가 없도 록 화근을 철저히 제거하겠다'고 다짐하면서 '군인데모도 민심을 자극하 고 사회를 혼란시키는 것으로서 엄단하겠다'고 밝혔다. 박정희는 쿠데타 음모, 군인데모, 여야의 시끄러운 정당활동을 싸잡아 혼란으로 규정하는 문법을 썼다. 그런 상황 해석은 반격의 발판이 된다.
 
 15일 저녁 사뮤엘 버거 주한 미국대사는 박정희 의장, 김현철내각수 반,김종필 정보부장, 김종오육군참모총장, 이동원청와대 비서실장 등을 대사 공관의 만찬에 초대했다. 미국측에선 멜로이 8군 사령관, 하비브 정치담당 참사관, 킬렌 유솜(USOM:미국원조기관)처장 등이 참석했다. 미 국측으로서는 압력을 많이 넣어 김종필을 외유보내고 박의장으로 하여금 민정불참을 선언하도록 하였으니 대한공작은 크게 성공한 셈이었다. 그 러는 과정에서 한미양쪽의 관계가 서먹해져 이런 자리를 통해서 풀어보 겠다는 뜻이 깔린 만찬이었다.
 
 만찬사가 교환되고 건배가 있은 다음 박정희가 불쑥 버거 대사에게 말했다.
 
 '대사와 긴히 의논할 일이 있습니다. 어디 딴 데 좀 갑시다.'.
 
 박의장은 주위의 분위기에는 전혀 신경을 쓰지 않고서 무뚝뚝하게 말 했다(이동원의 기억). 박의장은 자리를 툭 차고 일어나 문쪽으로 걸어 나가더니 버거 대사가 따라나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아니, 각하 여기선 안됩니까.' '다른 데로 갑시다.'.
 
 두 사람은 내실로 사라졌다. 남은 사람들은 담소를 계속했다. 한 시 간이지나도 의장과 대사는 돌아오지 않았다. 김현철 내각수반이 안으로 불려갔다. 그 뒤로도 긴 시간이 흘렀다. 드디어 '박의장이 대사에게 군 정 4년 연장의 뜻을 밝혔다'는 말들이 만찬장에 퍼졌다. 이동원 실장은 하비브 참사관으로부터 그런 귀띰을 들었다. 이동원씨는 '비서실장도 모르게 이럴 수가···하는 생각을 하니 허탈감이 밀려왔다'고 회고했 다.
 
 미국 대사관 사람들은 허둥대기 시작했다. 대사관 요인들은 이 긴급 사태를 본국에 보고하기 위해 만찬장을 이탈하고 있었다. 박정희는 수 행한사람들을 데리고 의장 공관으로 갔다. 이동원 실장만은 화가 나서 자기 집으로 가버렸다. 박의장은 이후락공보실장을 불렀다. 몇몇 최고 위원들을 소집하도록 지시했다. 이윽고 박정희 의장은 복안을 밝혔다.
 
 '나는 미국 대사에게 군정 4년 연장안을 국민투표에 붙여야겠다고 통보했습니다. 이후락 실장은 군정연장을 제의하는 문안을 작성토록 하 시오. 그리고 혼란을 수습하기 위하여 정당활동의 금지, 언론 출판 집 회의 제한을 규정한 '비상사태 수습을 위한 임시조치법'이 마련되어 있 으니 최고회의에서 통과시켜주시오. 내일 발표합시다.'.
 
 이날 밤 서울 주재 미국 대사 버거로부터 긴급전문을 받은 딘 러스크 는 16일에 이런 훈령을 보냈다.
 
 <한국군 수뇌부의 태도를 알 수 없는 상태에서 최종적인 판단을 내릴 입장은 아니지만 즉각적인 조치가 필요하다고 판단되면 귀하는 미국 정 부를 대표하여 박정희 의장에게 다음과 같은 조치를 취할 수 있다.
 
 a. 미국 정부는 군정 4년 연장안에 대해서는 승인할 수 없을 뿐 아 니라 공개적으로 반대할지도 모른다.
 b. 이 조치는 박의장이 되풀이해 서 다짐했던 민정이양 약속과 배치될 뿐 아니라 특히 1961년11월14일 케네디 대통령과 만났을 때 발표한 공동성명 내용과도 어긋난다.
 c. 이 조치는 세계 여론의 규탄을 면치 못할 것이다.
 d. 미국 정부는 대한원 조에대해서 근본적인 재검토를 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e. 박의장이 번의할 시간을 주기 위하여 공개적인 논평은 하지 않도록.>.
 
 (조갑제출판국부국장기자) (이동욱월간조선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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