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양수의 제동
박정희 의장으로부터 공화당 해체 지시를 받은 당의장 김정렬은 창당성명서를 써준 시인 이은상을 찾아가서 이번에는 해체성명서를 써달라고 부탁했다. 공화당 안에선 격렬한 반발이 전개되었다. 공화당 해체 발표는 우여곡절 끝에 4월8일로 날이 잡혔다. 박정희 의장은 이날 서울역 앞 당사에서 기다리고 있는 김정렬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는 '최고회의의 해체 성명서가 아직 결정나지 않았으니 공화당의 해체발표를 오후 2시까지 연기해달라'고 요청했다. 오후 2시 직전, 박정희가 전화를 걸어왔다.
'이제 발표를 해주십시오.' '알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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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설명 : 기적적으로 공화당 해체를 막은 유양수 최고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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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렬은 착잡한 심정으로 바깥에서 기다리고 있는 스물댓 명의 출입기자들에게 연락을 하려고 몸을 움직이는데 박의장실과 연결되 는 직통전화기가 울렸다. 전화기를 드니 '저는 유양수입니다'하는 것이었다.
최고회의안에서 온건하고 합리적인 판단을 하는 사람으로 정평 이 나 있는 유양수 위원(뒤에 동자부 장관)은 이렇게 말하는 것이 었다.
'지금 저는 박의장 앞에 서 있습니다. 지금 박의장으로부터 공 화당 해체이야기를 듣고 최고위원들이 당황해 하고 있습니다. 최고 위원들이 해체 후 무슨 대책이 있느냐고 물으니 박의장은 아무런 대책이 없다고 합니다. 최고위원들이 해체는 무리라고 진언하고 있 는 중입니다.' '그러면 박의장은 무어라고 하시오?' '박의장께서는 해체결정을 김의장 결심에 맡기라고 하십니다.'.
김정렬은 '알았소'라고 한 마디 한 뒤 전화기를 내려놓고는 돌 아서서 당무위원들에게 '오늘 최고회의에서 해체 발표가 최소되었 답니다'라고 했다.
'아니, 뭐요? 또 변심했다는 말이오? 나 원 참!'.
정구영 총재가 한 마디 했다.
'자세한 이야기는 나중에 해드리겠습니다.'.
김정렬은 비서관을 불러 '발표할 것이 없으니 기자들을 해산시 키시오'라고 했다. 공화당이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는 순간이었다.
이날, 즉 1963년4월8일 박정희 의장은 특별성명을 통해 '군정연 장안에 대한 국민투표를 9월말까지 보류하고 정치활동의 재개를 허 용한다'고 발표했다. 박의장은 또 '정부는 9월에 모든 정치정세를 종합검토하여 공고된 군정연장을 위한 개헌 국민투표를 실시하든가 기존 헌법에 따라 대통령 및 국회의원 선거를 실시한다'고 말했다.
김재춘 당시 정보부장은 박의장이 이런 양보를 하도록 만든 결 정적인 힘은 미국의 압력이었다고 주장했다. 미국은 3·16 군정연 장 성명이 나오자 '군정연장을 취소하지 않으면 식량원조를 중단하 겠다'는 압력을 넣었다는 것이다. 1962년 가을의 흉작으로 한국은 심각한 식량부족 사태에 직면하고 있을 때라 미국의 이런 압력은 주효했다는 것이다.
박정희는 미국의 압력에 양보하는 척했지만 얻은 것이 훨씬 많 은 성공적인 게임을 했다. 그가 4년간의 '군정연장안'이란 상상을 초월한 강경조치를 던져 정치권을 뒤흔들어놓는 사이에 박의장의 2·27민정불참 선언은 어느 새 휴지가 되어버렸고 주체세력의 민정 참여와 박정희의 대통령 출마는 기정사실로 변해 버렸던 것이다.그 는 또한 이 소용돌이 속에서 자신을 견제하던 군부내의 반 김종필 세력을 거세했다. 박정희는 이 봄의 위기에 적응하는 과정에서 자 신이 열정의 혁명가일 뿐 아니라 냉정한 정략가임을 스스로 입증한 것이다.
박정희는 공화당을 살려주면서 동시에 김재춘 정보부장에게는 '자유민주주의를 표방하는 민족세력이 계보나 파벌을 떠나 한데 뭉 친 애국정당'의 조직을 지시했다. 두 여권 조직을 서로 경쟁시켜 그 결과를 보고 선거에 타고나설 말을 선택하겠다는 계산이었다.
박정희는 이처럼 경쟁을 조장하거나 방치한 다음 이의 조정을 통하여 자신의 지도력을 확립하고 뜻하는 방향으로 국정을 끌고가 는 방법을 그 뒤에도 즐겨 썼다. 한국인의 민족성에 뿌리박은 분파 주의를 없앨수 없다면 그것을 적당히 이용하는 것이 지도력의 강화에 오히려 도움이 된다는 것을 발견한 것이다. '계속'.
(조갑제출판국부국장기자) (이동욱월간조선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