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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15부. 제5대 대통령선거 : 탄핵조항
 탄핵조항
 
 박상길(뒤에 청와대 대변인 역임)은 박정희 저 '국가와 혁명과 나'를 대필하던 1963년 상반기에 관찰한 박의장을 이렇게 묘사했다.
 
 <이중삼중으로 밀어닥치는 타격 앞에서 오직 고군분투 초지의 관철을 위하여 밀고나가는 박의장의 모습은 비장하기보다는 차라리 민망하고 안 스러워 보이기까지 하였다. 이 전후의 박의장의 태도, 그것은 진정 순수하였고 그야말로 불고처자, 불고가문, 불고일신으로 오직 이 난관을 뚫 고 나가 쓰러지는 조국을 건져보겠다는 그의 정신, 정열, 집념, 결단은 숭고함을 넘어 처절해보이기도 하였다.>.
 
 8월 하순, 전역식을 며칠 앞둔 밤 박의장은 박상길을 공관으로 불렀 다.박의장이 2층 서재에서 뛰어내려오는데 모습이 특이했다.
 
 '밤이 깊은데 미안합니다.'.
 
 이렇게 말한 박의장은 카키색 군복을 입고 있었는데 한쪽 다리는 무 릎 아래까지 바지를 걷어올린 상태였다. 그는 박상길을 2층 서재로 안내하였다.
 
 박의장은 박상길이 의자에 앉기도 전에 휙 돌아서면서 말을 내어뱉었다.
 
 '죽 쑤어서 개 주게 생겼습니다. 교순가 접장인가들을 시켜서 헌법을 만들라 했더니 엉망을 만들어놓았습니다. 글쎄 이것 보십시요. 국회의원 24명인가 몇이 도장만 치면 대통령은 당장 죽은 송장이 되게 되어 있어요. 탄핵조항이란 게 도대체 뭡니까?'.
 
 한해 전에 확정된 제3공화국 개정헌법은 국회가 '30인 이상의 국회의 원발의에 재적의원 과반수의 찬성'으로 대통령과 장관들에 대한 탄핵소추를 의결하여 탄핵심판위원회(위원장 대법원장)로 넘길 수 있고 의결을 받은 자는 탄핵결정이 날 때까지 그 권한행사가 정지되도록 했던 것이 다. 만약 야당이 국회의 과반수 의석을 차지하면 여당 출신 대통령을 쉽 게 탄핵의결할 수 있다는 의미이다. 박정희가 화를 낸 것은 이를 두고 한 것이다.
 
 박의장은 명함만한 메모지 한 장을 박상길 앞에 내어놓고 또 내뱉듯 이 말했다.
 
 '글쎄 이것 좀 보시오. 중앙정보부 보고인데 당장 국회의원 선거를 실시하면 여당측은 기껏해야 54명밖에 당선 가능성이 없다는 겁니다. 이렇게 되면 다 끝난 것 아닙니까. 총선거를 해도 지고 혹시 대통령이 된 다해도 30명이면 손을 놓아야 하고···글쎄 어떤 놈의 탄핵조항이 과 반수 찬성으로 직권이 정지되어야 한다는 거요? 이런 놈의 법률이 어디 있습니까.'.
 
 박상길은 자신도 이 분야에 대해서 문외한이기는 마찬가지로 뾰족한 답을 줄 수가 없었다.
 
 '이 문제는 엄중한 보안속에 법률가이면서 정치도 국회도 아는 그런 사람에게 진지하게 의논해보시는 게 좋을 듯싶습니다. 달리 방법이 없지 않겠습니까.' '어디 그런 사람이 있습니까.'.
 
 '제 생각에는 오랫동안 국회법사위원장도 지내고 생각도 건실한 박 세경씨 같은 분이 어떨까 합니다.' '내 특명입니다. 내일이라도 당장 만나셔서 좀 알아봐 주십시오. 거 협력 좀 받을 수 없을까요?'.
 
 이튿날 박상길은 자유당 온건파 출신인 박세경 변호사를 찾아갔다.박 세경은 헌법과 관계 법조항을 면밀히 검토하더니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 다.
 
 '결론적으로 이 문제는 법의 운용과 국회운영의 묘를 기하여 타개해 가는 외에 달리 방도가 없는 것이고, 이런 문제를 사전에 파악하고 연구 하여 이를 극복할 수 있는 인물을 법무장관으로 기용함이 옳을 듯싶습니 다.'.
 
 박상길은 돌아와서 박의장에게 보고했다. 듣고 난 박의장은 한참을 생각하더니 '어떻습니까. 그분 법무장관 좀 맡아줄 수 없을까요? 도무지 사람이 없습니다'라고 부탁했다.
 
 박상길로부터 박의장의 협력요청을 전해들은 박세경은 정중하게 거절 했다. 박의장은 박상길의 보고를 듣고는 입맛을 다시더니 '어떻습니까. 거, 저···엄민영(당시 의장고문)씨 한번 만나보시지요?'라고 했다.
 
 박상길이 대답을 망설이고 있는데 박의장은 다시 '이후락(당시 최고 회의 공보실장)이는 어떻습니까'라고 했다.
 
 '뭐, 지금 그럴 필요가 있겠습니까. 뒤에 차차 보겠습니다.'.
 
 박상길은 이때의 이 답변이 자신에게는 운명의 갈림길이었다고 회고 했다.
 
 박의장의 부탁을 받고 순간적으로 긍정과 망설임이 엇갈렸고 얼떨결에 잠재의식 그대로 이 주선을 거부하고 만 것이라고 한다. 박의장은 자 신의 직계참모로 엄, 이 두 사람에다가 박상길을 더할 생각이었을 것이 라 한다. 박상길은 이 순간의 거부반응으로써 '제3공화국에서 나의 2류 차원의 위치와 외로운 행진은 이미 결정된 것이었다'고 했다(회고록 '나 와 제3·4공화국'). (계속).
 
 (조갑제출판국부국장기자) (이동욱월간조선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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