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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사 11기 장교단의 등장
 육사 11기 장교단의 등장
 
 박정희 정권을 지탱하게 되는 인맥과 인재군은 1961-63년의 군정기 간에 형성된다. 김종필 중심의 공화당, 엄민영 등 경북고 출신 중심의 대구-경북 정치인, 정주영으로 상징되는 개발연대형기업인, 그리고 전 두환-노태우로 대표되는 정규육사출신 장교단.
 
 4년제 정규육사 졸업 제1기(통산11기)인 노태우 소위는 1955년에 5사단에 배속됨으로써 박정희 사단장과 처음으로 인연을 맺었다. 박정 희 준장은 신임 노소위에 대한 첫 인상이 매우 좋았다고 한다. 1956년 박 사단장은 사단을 떠나 육군대학으로 입교하기 전 노중위가 근무하 던 부대를 찾아 보기도 했다. 박정희는 그 뒤 군수기지사령관 시절엔 육사11기 출신 손영길을 전속부관으로 썼다. 5·16 이후엔 전두환대위 를 민정비서로, 이상훈(전 국방장관)대위를 경호계장으로 가까이 두었 다. 박정희는 서울대학교 학훈단에 근무하던 노태우 대위를 육군방첩대로 불러들여 근무하게 했다.
 
 노태우 대위는 박의장의 특명을 받아 1962년 겨울에서 이듬해 봄까 지 근석달간 전국 농촌실태를 조사하는 '암행어사'역을 맡기도 했다. 절량농가가 없어졌다는 최고회의의 발표에 대해 언론에서는 반론을 제기하여 박의장이 직접 노대위에게 현장 확인을 지시한 것이다. 노대위 는 전국의 벽촌과 산골을 돌아다니면서 농민들의 생활상을 조사했다. 노전 대통령은 최근 '이때의 경험은 그 뒤 나의 현실 인식에 큰도움이 되었다'고 말했다.
 
 '설악산 미시령 근처 화전민부락에서는 인간도 동면한다는 걸 발견 했습니다. 부족한 식량을 아끼려고 한 사람이 하루에 삶은 감자 한두 개만먹고는 누워서 잠만 자는 거예요. 그래서 에너지 소모를 줄였는지 의외로 건강하더군요. 박의장을 독대하여 보고를 드렸는데 절량농가가 없어지지 않았다는 이야기에 언짢아하면서도 '인간 동면'이야기에 대 해서는 아주 흥미있어 하더군요.'.
 
 박의장은 전두환, 노태우, 손영길, 이상훈, 최성택, 권익현, 정호 용, 김복동 등 많은 육사 11출신 장교들을 최고회의, 정보부, 방첩대 등 권부의 핵심부서에서 근무하도록 했다. 이들에게 박의장과 김재춘, 박종규(당시 의장 경호대장),윤필용(뒤에 육군방첩부대장 및 수경사령 관역임)의 지원 아래서 군내의 한 세력으로 커지는 계기가 마련된 것 이다. 총구와 권력의 생리를누구보다도 정확히 꿰뚫어 보고 있던 박정 희는 정규 육사 출신 청년 장교단을 키워서 장차 군부의 중심세력으로 삼으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박정희는 군이 분열하면 정치가 흔들리 고 정치가 흔들리면 경제도 돌아가지 않는다고 믿었다. 이후 박정희는 정규 육사 출신들 가운데 인재들을 골라 특별히 신경써서 관리한다. 1968 년 노태우, 손영길중령이 월남전선에 대대장으로 파견될 땐 두 사람을 청와대로 불러 육영수와 함께 식사를 대접한 뒤 자신이 쓰던 권총, 시계를 선물로 줄 정도였다.
 
 박정희는 전두환, 노태우를 비롯한 엘리트 장교들이 일선 지휘관뿐 아니라 보안사와 청와대 비서실 및 경호실에도 근무하도록 하여 자연 스럽게 '정치도 이해할 줄 아는 장교'로 양성했다. 이들은 그 때문에 정치군인이란 비난도 받았지만 이렇게 양성된 장교 집단이 박정희의 급작스런 사후에도 권력을 이어받아 그의 이념과 노선을 일정 기간 지켜간 원동력이 되었다는 점을 부인할 수는 없다.
 
 박정희가 김재규정보부장의 총탄에 사망한 직후 김종필의 공화당과 정승화계엄사령관으로 대표되는 구군부는 박정희의 유신체제에 대해서 다소 비판적인 태도를 보이면서 박정희 노선에서 이탈하려는 움직임을 보였다. 전두환-노태우를 필두로 하는 정규 육사 출신들은 유신체제를 주로 '자주국방'이란 개념으로 파악하고 있었고 박정희의 죽음을 해석 하는 시각에서도 선배들과는 달랐다. 박정희의 민족주의 노선에 의해 의식화되어 있었던 이들은 박정희의 죽음 뒤에 있는 미국의 그림자를 주시하면서 10·26을 민주화의 호기가 아니라 국가 위기로 파악했다고 한다(허화평 증언).
 
 박정희에 대한 인간적, 이념적 충성심이 가장 강했던 이들 신군부 세력이 김재규를 단죄하고 박정희 노선에 비판적인 구군부와공화당,그 리고 양김씨로 대표되던 민주화 세력을 제거하고 정권을 잡은 것은 박 정희에 대한 보은일 뿐 아니라 박정희식 국가건설 이념의 계승이란 측 면도있다. 박정희는 자신의 철학을 제대로 계승할 정당을 남기는데는 실패했으나 정규 육사 장교단을 친위세력으로 양성하는 데 성공함으로 써 자신의 사후 14년간 군인 출신 엘리트의 집권을 가능하게 했다.
 
 전두환, 노태우 두 대통령 시대에 박정희의 근대화 전략인 선경제 발전, 후정치발전이 마무리되면서 새로운 시대가 열렸으니 1963년을 전후한 시기에 박정희가 정규 육사 출신들을 키우기로 한 선택은 한국 현대사에서 결정적인 의미를 지닌다고 할 것이다.
 
 이 무렵 육사 11기 장교들과 박의장의 밀접한 관계를 보여주는 한 사건이 있다. 1963년 7월초 박의장은 수해를 입은 남부지방을 시찰하 던 중7월5일 진해에 도착했다. 박의장은 대통령 별장에서 묵고 수행한 김재춘정보부장은 해군 통제부 영빈관에 들었다. 이날 밤 서울 본부에서 이상무국장이 김재춘 부장에게 긴급보고를 해왔다. 그 요지는 이러 했다.
 
 '최고회의, 정보부, 방첩대에 있는 육사 11기 출신 장교들이 주동 이 되어 4대 의혹사건 관련자들 40여명을 체포하기로 했다는 정보가 있어 경찰에 비상이 걸렸습니다. 빨리 올라오십시오.'.
 
 (조갑제출판국부국장기자) (이동욱월간조선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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