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운 손은 우리의 적이다
1963년 여름, 박정희는 박상길(뒤에 청와대 대변인, 수협회장 역 임)이 대필한 '국가와 혁명과 나'의 원고를 작가 김팔봉에게 주어 감수를 받아본 뒤 박씨에게 돌려주면서 이렇게 말하더란것이다.
'퍽 좋습니다. 다만 원고 중에 내가 표시한 두 페이지만 삭제해 주십시오. 어쩌면 꼭 제 마음속을 다녀오신 것처럼 정확하게 써주셨 습니까. 큰 수고를 했습니다.'.
이 책은 1963년9월1일자로 출판되었다. 4×6배판 293페이지에 정 장 5천부, 보급판 5천부. 박정희는 선거를 앞두고 자신의 정치철학 과 국가근대화에 대한 소신을 밝히고 싶었던 것이다. 이 책은 박정 희의 생각을 가장 정확하게 기록한 것으로 평가되어 지금도 자주 인용되고 있다. 이 책에는 국가원수의 글로서는 너무 솔직하게 자신을 표현한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드는 대목도 많다.
<땀을 흘려라/
돌아가는 기계소리를/
노래로 듣고···/
이등 객차 에/
불란서 시집을 읽는/
소녀야/
나는, 고운/
네 손이 밉더라.
우리는 일을 하여야 한다. 고운 손으로는 살 수 없다. 고운 손아, 너로 말미암아 우리는 그만큼 못살게 되었고 빼앗기고 살아왔다. 소 녀의 손이 고운 것은 미울 리 없겠지만 전체 국민의 1% 내외의 저 특권 지배층의 손을 보았는가. 고운 손은 우리의 적이다.>.
위의 시는 박정희의 자작이 아니고 다른 사람의 시를 인용한 것 이다. 노동운동가의 시 같은 느낌이 들 정도이다. 박정희의 국가근 대화는 그의 이런 반골정신에 기반을 둔 건설이었기 때문에 대기업 위주의 경제발전 전략을 추진하면서도 농민·노동자·소외층에 대해 서도 신경을 썼다고 보는 사람들이 많다.
박정희는 '국가와 혁명과 나'에서 다가오는, 선거를 통한 민정이양 방식을 적극적으로 옹호했다.
<단 1명의 사망, 단 1명의 부상도 없이 혁명의 전 적대세력을 대 등한 위치에 개방하고, 순리와 자유경쟁의 원칙에서 혁명의 결실을 시도한 예가 세계 혁명사의 그 어느 대목에 있는가.>.
박정희가 이 책에서 가장 역점을 두어 강조한 것은 민주주의를 실천으로써가 아닌 구호로써만 외치는 구정치인들의 위선성이었다.
<진정한 민주주의는 건전한 경제적 토대 위에서 확립될 수 있 다. 또 건전한 민주주의는 진실과 정직과 법률 본위의 정치적 토대 위에 설 수 있는 것이로되 우리의 그것은 허위와 과장과 부패, 무능, 독선으로 미비되어 민주주의의 헛점을 역이용해서 왜곡된 '위장 민 주주의'를 조장해놓았다.
우리의 민주주의는 일부 한정된 지식층의 전매특허된 완상물이거 나 직업 정상배의 생활 밑천처럼 되고 국민들에게는 불평의 배출구 처럼 오용되고 있다.>.
박정희는 근대화 혁명의 공식을 '기성세력층 대 (국민의식+군인 의 힘)'이라 설명했다. 군인이 권력기반, 또는 정치적 안정을 제공 하여 국민들의 자립의지를 살려내고 조직화한 뒤 그 힘으로써 구 정 치인으로 대표되는 기성 수구세력을 약화시키고 새로운 국가를 건설 한다는 전략이었다. 박정희는 군인에 의한 혁명이 국민혁명, 즉 근대화혁명으로 발전·승화되어야 한다는 말을 되풀이했다.
<어떤 사상적 지도자로 자처하려는 위인은 4·19혁명을 대낮의 공사에 비하고 5·16혁명을 밤의 거사에 비유하여 이 혁명에 흠을 잡으려 했지만 여기서 명백히 지적하려는 것은 (거사의) 시각이 밤 이 아니고 새벽이었다는 사실이다. 새벽! 그것은 바로 이 혁명의 목 적을 상징하는 시각이다.민족의 여명! 국가의 새 아침! 김포의 혁명 가도. 30대의 청춘을 민족에 걸고, 오직 한 나라의 운명을 바로잡으 려던 저들 모습은 눈물겹도록 성스러운 인간상이었다. 흐르는 한강 을 내려다보며 본인은 그 강물이 어제 흐르지 않던 새 물결이었음을 깨닫기도 하였다.>.
박정희는 군사혁명으로 정권을 잡았을 때 '마치 불이 난, 도둑맞 은 폐가를 인수하였구나'라고 생각했다고 했다. 그는 1961년도 예산 의 52%가 미국 원조에 의존하고 있었던 것을 가리키면서 '한국에 대 한 미국의 발언권은 52%를 차지하고 동시에 그것은 한국에 대한 미 국의 관심도를 나타내었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러고도 우리는 과 연 독립된 자유, 민주주의의 주권국가라고 자부할 수 있을 것인가, 참으로 딱하고 기가 막힌 일이 아닐 수 없다'고 했다. 그는 또 이런 격한 표현도 서슴지 않았다.
<요컨대 해방후 19년간의 총결산-그것은 얻은 것보다는 잃은 것이 더 많은 반면에 단 하나의 소득이 있었다면 덮어놓고 흉내낸 식의 절름발이 직수입 민주주의의 강제이식이 있었을 뿐이다. 피곤한 오 천년의 역사, 절름발이의 왜곡된 민주주의, 텅 빈 폐허 위에 서서 우리는 과연 무엇을 어떻게 하여야 할 것인가.>.
박정희는 그러나 자유민주주의의 불가피성을 부인하지는 않았다.
<우리는 공산주의를 반대하고 자유민주주의를 원칙으로 함에서는 벗어날수 없다. 민주주의의 신봉을 견지하는 한 여론의 자유를 막을 수는 없다.'토론의 자유'속에서 '혁명의 구심력'을 찾아야 하는 혁명, 그것은 힘이 들고 어려운 일이다.>.
(조갑제출판국부국장기자) (이동욱월간조선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