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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심 읽기
 민심 읽기
 
 박정희 의장의 특명을 받고 '국민의 당' 허정후보의 사퇴를 종용하려고 서울에 올라온 박상길(뒤에 청와대 대변인)은 허정과 가까운 박 세경 변호사에게 중개를 부탁했다. 박변호사는 어려울 것이라면서도 허정과 접촉해본 뒤 '박의장과의 합작은 불가'라는 그쪽 입장을 전해 주었다. 10월2일 허정 후보는 '군정종식을 위해선 야권단일 후보가 성취되어야 한다'면서 후보사퇴를 선언, 사실상 윤보선 지지로 돌았다.
 
 그 5일 뒤엔 옥중출마한 송요찬후보도 '야권 단일 후보를 위해' 후보 를 사퇴했다. 이로써 5대 대통령선거는 박정희 - 윤보선 대결로 압축 되었다.
 
 허정과 송요찬의 후보 사퇴선언은 선거유세의 청중동원력에서 윤보 선이 월등 앞서 나간 것과도 관계가 있었다. 윤보선은 서울고등학교 교정유세에서 약4만(언론의 추산), 대구수성천변 유세에서 약8만, 부산역전 광장에서 약6만 명을 동원했다. 야당의 어느 후보보다도 많은 것은 물론이고 박정희 의장의 청중동원수를 능가하는 인기였다. 10월5 일 서울 남산 유세에서 윤보선이 약15만명의 청중을 모은 날 박정희는 대전 유세에서 약4만 명을 모았다.
 
 박정희가 제기한 '가식적 민주주의자 대 민족적 민주주의자'란 이 념논쟁보다는 윤보선 후보측에서 제기한 '군정종식' '거물간첩 황태성 과 박의장의 연루' '박의장 및 공화당의 용공성 의혹'이 훨씬 쉽게 국 민들의 가슴과 뇌리를 자극했다. 선거유세전의 주도권을 윤보선 후보 가 잡은 것처럼 보이게 만든 것은 언론의 공정보도였다. 텔레비전 방송이 없던 시대에 언론을 주도하던 신문들은 야권 후보들에게 더 많은 지면을 배분, 박의장이 수세로 보일 정도였다.
 
 10월5일 서울 남산 야외 음악당에서 열린 유세에서 윤보선은 강도 높은 연설을 했다.
 
 '나는 묻는다. 공산당이 말하는 민족적 민주주의와 박정희씨가 말 하는 강력한 민족주의에 바탕한 민주주의와는 무엇이 다른가. 공화당 의 사전조직을 실제로 한 사람은 누구이며 막대한 검은 자금의 출처는 어디인가.'.
 
 10월9일 윤보선은 안동 유세에서 과격한 발언을 했다.
 
 '민주공화당은 공산당 돈을 가지고 공산당 간첩이 와서 공산당식으 로 조직한 정당이다. 북괴무역 부상 황태성이 20만 달러를 가지고 왔 는데 김종필씨가 그를 조선호텔에 모셔다가 서울에 밀봉교육 장소를 다섯군데나 만들어놓고 공산당 식으로 점조직을 했다.'.
 
 이 안동발언은 사실 검증 없이 주요 신문의 1면 머리 기사로 올라 갔다. 한 중앙지는 '공화당은 공산당 자금으로 조직'이라는 제목을 1 면 머리에 크게 뽑았다. 윤보선은 자신의 회고록(1991년 출간)에서도 황태성이 공화당과 관련되어 있었다는 주장을 계속했다.
 
 <여당의 후보가 과거 공산주의와 깊이 관련되어 있고 여당 자체가 거물 간첩의 영향을 받았다는 사실이 알려진 이상(중략)···. 무력 으로 정권을 탈취했는데 그러한 사건쯤 그냥 덮어버리고 넘어가는 것 은 별로 어려운 일이 아니었을 것이다. 언론조차 군정의 엄격한 통제 를 받아 기사를 함부로 쓸 수 없었고 사실을 사실대로 밝힐 수 있는 자유도 없었을 때였다.>.
 
 황태성이 1962년의 공화당 사전조직에 관여했다는 소문은 당시부터 떠돌았으나 확인된 적은 없고 여러 가지 정황으로 미루어 사실이 아닌 것으로 보인다. 윤보선의 논리구조는 소문을 사실로 단정한 다음 '군 사정권이니 그런 엄청난 사실을 덮어버렸다'는 결론을 내리는 식이었 다. 이런 논리의 비약은 그가 집권자였다면 '용공조작'이라 불릴 만한 사실 왜곡이었다. 당시 민주당 대변인이던 김대중 현 대통령은 최근에 출간한 자서전에서 이렇게 지적했다.
 
 <공산당과 인연을 끊고 '반공'을 내걸고 있는 박후보에게 그 비난 은 걸맞지 않았다. 게다가 윤후보가 상대를 '공산당이다'라고 비난하 는 그 방식이 국민들에게 어두운 과거의 일을 떠올리게 하였다. 해방 후 미군 군정시절과 이승만 대통령 시절에는 반대세력을 탄압할 때 모 두 공산당이라고 날조한 뒤 숙청시켰다. 윤후보의 발언에서 만약 정권 을 잡으면 반대파를 공산당으로 몰아서 제거하는, 과거의 공포정치가 재현되는 것이 아닌가하고 대다수 국민들은 공포감을 가졌던 것이다.>.
 
 박정희는 윤보선 후보의 사상공세에 대해서 마치 용공조작의 희생 자처럼 말했다.
 
 '싸우다 힘이 부족하면 빨갱이라는 모략을 하는 것이 바로 야당이 다. 과거 한민당이 이 따위 숫법을 썼는데 오늘에 와서도 야당은 똑 같은 숫법을 쓰고 있다. 과거와 양상이 다르다면 과거는 여당이 야당 을 잡았는데 지금은 야당이 여당을 잡으려 하고 있다.'.
 
 박정희는 10월9일 부산공설운동장 유세에선 이렇게 말했다.
 
 '나는 전방 사단장도 하고 야전군 참모장도 했다. 내가 빨갱이였다 면 사단을 끌고 북으로 넘어갈 수도 있었다. 그런 위험한 사람이 혁명 을 일으켰는데 윤후보는 왜 대통령직에 앉아 있으면서 우리를 비호했 나.'.
 
 이 자리에서 박정희는 역공으로 나왔다. '근친자의 사상문제로 결 백한 사람의 출세를 막고 있는 연좌제를 시정하겠다'고 공약한 것이 다. 윤보선 후보의 사상공세에 그렇게 대응한 데는 박정희가 읽은 민심과 윤보선의 그것이 달랐기 때문이었다.
 
 박정희는 자신에 대한 용공 의혹을 제기하는 윤보선의 공격내용을 축소보도하도록 언론계에 작용하려는 측근들을 제지하면서 '그거 더 크게 내라고 해'라고 했다. 사상문제로 지옥의 문턱까지 갔다가 생환한 박정희는, 좌익전력자의 단체인 보도연맹에 소속되었다고 해서 6·25개전 초기에 억울하게 학살 된 사람들이 많은 경상도, 전라도 지역 민심을 정확히 읽었다고 평가 된다. (계속).
 
 (조갑제출판국부국장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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