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상논쟁 시작
5대대통령 선거의 성격을 이념 및 사상 논쟁으로 만든 최초의 신호탄은 박정희 후보가 1963년 9월23일 서울 중앙방송을 통해서 발표한 정견발표였다. 이 연설에서 박정희는 특유의 카랑카랑한 목소리로 민정당의 윤보선 후보로 대표되는 구정치인들을 사대주 의적 근성을 가진 '천박한 자유민주주의자'로 몰아붙였다.
박후보는 '자주국민이 되고 자립국민이 되는 것이 제3공화국의 집약 적 표현이다'고 했다. 그가 말한 자립은 미국 원조에 의존하지 않는 자립경제, 즉 물질적 기반을 가리키는 말이었다. 자주는 자주국방, 한국적 민주주의로 드러난 민족 주체성의 다른 표현이기 도 했다.
박정희는 이 연설에서 '민족의식이 없는 사람들에게 자유민주 주의는 항상 잘못 해석되고 또 잘 소화되지 않는 법이다'고 했 다. 그는 또 '사회질서를 요구하는 것은 탄압이다, 교통신호를 지키게 강요하는 것은 독재다, 외국 대사관 앞에서 데모하는 것은 자유다,하는 이런 사고방식은 모두 자유민주주의를 잘못 이해 하는 것이다'고 주장했다.
그는 이번 선거를 '사상과 사상을 달리하는 세대의 대결이다.
즉, 민족적 이념을 망각한 가식의 자유민주주의 사상과 강력 한 민족적 이념을 바탕으로 한 자유민주주의 사상과의 대결이다' 라고 선언했다. 박정희는 이런 말로 연설을 끝냈다.
'해방후 우리가 얻은 미국의 원조 40억 불을 착실히 계획적으 로 썼던들 우리는 벌써 자립할 수 있는 국가가 되었을 것입니다. 내가 바라는 한국의 민주주의는 특별한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한국사람이라는 강력한 민족주의 정신을 가지고 그 위에 민주주 의를 착실히 성장시키고 질서 있는 사회환경속에서 국민 각자가 부지런히 일하고 정부가 국민의 세금을 아껴 건설 또 건설로 줄 달음칠 때 우리 한국은 빛나는 나라가 될 것입니다. 국민 여러분 속지맙시다. 그리고 부지런히 일합시다.'.
9월24일 민정당 대통령 후보 윤보선은 민정당 완주 지구당 위 원장 집에서 기자회견을 가졌다. 한 기자가 이런 질문을 했다.
'박정희 후보는 어젯밤 선거방송연설에서 윤모는 참다운 민주 주의를 하는 사람이 아니고 더욱이나 애국하는 사람이 아니라는 취지의 말을 했는데 해위 선생님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윤보선은 이 말에 분노가 울컥 치밀었다고 한다(회고록).
<적어도 박정희씨는 그런 말을 할 자격이 없다. 천황을 위해 서 목숨을 바치기로 맹세했던 사람이 아니었던가. 해방 뒤에는 자의로 공산주의에 투신하여 두번이나 나라를 해치려 했던 사람 이 아닌가. 적반하장도 유분수다. 그가 먼저 싸움을 걸어온 이상 참을 수가 없다.>.
윤보선은 이렇게 말했다.
'내가 할 말을 박후보가 방송을 통해서 했는데 국민이 현명하 게 판단할 것입니다. 우리는 가식적, 이질적 민주주의와 대결하 고 있습니다. 나는 오히려 박의장의 민주사상을 의심해마지 않습 니다. 박의장의 '국가와 혁명과 나'라는 저서를 보면 '서구의 민 주주의가 대한민국에 맞지 않는다'라고 말했는데 이것은 무엇을 말하는 것입니까. 이 책을 보면 이집트의 낫세르를 찬양하고 히 틀러도 쓸만한 사람이라고 했는데 과연 이 사람이 민주주의를 신 봉하는 사람인가 의심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나는 어제 여수에 서 유세를 하면서 느낀 바가 있는데 여순반란사건의 관련자가 정 부 안에 있다는 것을 상기해야 합니다. 여순반란사건은 민주주의 와 민족주의를 신봉하는 사람이 한 것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윤보선이 지칭한 여순반란사건 관련자란 박정희 후보를 말하 는 것임이 명백했다. 박정희가 윤보선을 '가식적 민주주의자' 또 는 '사대주의자'라고 공격한 데 대하여 윤보선은 '당신은 용공이 아닌가'라고 직격탄을 날린 것이다. 다음날 9월25일 야당계로 보 이는 구국청년동지회의 이름으로 서울시내 곳곳에 전단이 뿌려졌 다. 그 내용은 '북한에서 밀파한 황태성 사건의 진상을 밝혀라' 는 것과 공화당에 대한 사상공세였다. '공화당 내에 6·25 당시 부역자 및 그의 가족이 월북한 자가 있다는 사실도 알고 있는가' '공화당의 중견간부인 김모씨가 6·25당시 부역을 했다는 사실을 아는가'란 질문은 일반 서민들이 가진 악몽을 상기시키기에 충분 했다.
부역자란 낱말에는 전쟁중 공산당에 편을 든 사람들에 대한 증오심보다 그런 누명을 쓰고 억울하게 죽어가거나 불이익을 받 은 사람이란 인상이 더 강하게 묻어 있었다. 박정희에 대한 윤보 선측의 사상공세는 유권자들의 반공의식에 호소하려는 계산이 있 었겠지만 서민들의 생활감정을 상당히 떠나고 있었다.
박정희는 '국민의 당' 후보로 나온 허정과 연초에 몇번 만나 고나서는 호평을 했다. 박의장은 선거기간중에도 허정과 손을 잡 는 방안에 미련을 버리지 않았다. 지방유세중 박정희는 자신을 수행한 박상길(뒤에 청와대 대변인)을 불렀다.
'오늘 밤 차로 서울을 좀 가셔야 되겠소. 김현철 수반과 김형 욱 부장이 잘해본다고 했는데 소식이 없어요. 내 생각에는 허정 씨가 승낙만 한다면 외무 국방 경제만 빼고 반 정도의 내각은 맡 겨도 좋을것 같소만···.'.
박의장은 대화중에 세 가지를 암시했다고 한다. 지금의 선거 전에서 승리를 낙관할 수 없다, 선거에 이긴다 하더라도 정국의 안정이 어렵다, 허정과 그 측근 인물들은 온건하고 신뢰가 간다.
박상길은 서울로 올라와 김현철, 김형욱의 대허정 접촉 결과 를 알아보았다. 심도 있게 이야기가 진행되고 있긴 했으나 전망 은 어두웠다. 김형욱 정보부장의 거친 접근법은 허정에게 유쾌하지 못한 인상을 주고 있었다. '계속'.
(조갑제출판국부국장기자) (이동욱월간조선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