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8군의 벙커
10월26일 밤 주한미군과 주한미국대사관의 동향을 살펴본다. 당시 주한 미8군 사령관이자 유엔군사령관이며 한미연합사령관이기도 했던 위 컴 대장은 지휘관회의에 참석차 미국에 가 있었다.
연합사 사령관을 대리하고 있었던 이는 유병현연합사 부사령관이었 다. 유대장은 미8군식당에서 저녁식사를 하고 있다가 정승화총장의 연 락을 받고 육군본부벙커로 갔다.
여기서 김재규가 미국에 대한 보안도 강조하기에 유병현대장은 이 렇게 말했다.
'서울의 특성상 내일 아침에는 시민들이 대통령서거를 알게 될 것 입니다. 이렇게 되면 김일성이도 알게 되는데 우리가 미국보다 먼저 김 일성이에게 알려주는 꼴이 되지 않습니까?'.
김재규는 말이 없었다. 유병현 대장은 연합사 사령관을 대리하는 입장에서 우선 전화로 참모장 에반 W.로젠크렌스 공군중장을 불렀다. 연 합사 주요참모들의 비상소집을 지시했다.
그리고는 연합사 작전차장 이민영소장에게 근무체제를 작전상황실 체제로 변경하고 비상대기하도록 지시했다. 유병현 대장은 이날 여러번 연합사 벙커와 육본벙커 및 국방부 사이를 오고갔다.
밤 10시30분을 넘어서 정부요인들이 국방부장관실로 옮겼을 때 유 병현 대장은 최규하 총리에게 이렇게 보고했다.
'우선 미 본국과 협조하여 데프콘(방위태세)3을 발령하도록 하겠습 니다. 그 발령의 근거로서 대통령의 유고사실을 알려주겠습니다. 미 7함대를 한국작전수역으로 끌어오도록 요청하겠습니다. 조기경보기와 오키나와에 있는 미군병력의 한국증파를 요청하겠습니다. 기타 사항은 조치를 취하면서 보완하겠습니다. 이의가 있으십니까?'.
최규하 총리와 함께 있던 서종철안보특보가 '유 장군, 빨리 내려가 서 조치해주시오'라고 했다.
유병현 대장은 최규하 총리에게 경례를 붙이고 연합사로 향했다.연 합사 벙커에는 로젠크렌스 참모장, 미8군사령관 정치담당보좌관 제임스H. 하우스맨, 미국CIA서울지부장 로버트 G. 브루스터가 나와 있었다.
유병현 대장은 '대통령이 군통수권을 행사할 수 없게 되었다'고 참 모장에게 말했다.
'지금 대한민국의 국무회의가 소집되어 대책을 논의하고 있다. 군 은 내각의 결정을 지지하고 있다.' 참모장은 '한시적인 유고인가'라고 물 었다. 유병현 대장은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고 했다. 유고 의 내용은 사망이란 사실을 간접화법으로 인정한 것이었다.
유병현 대장이 주재한 회의는 동판으로 밀폐된 방에서 진행되었다.
미군은 1급비밀을 의논하고 통화할 때는 도청방지를 위해서 이런 방안에서 하도록 규정하고 있었다. 유병현 장군과 미군측은 대통령 유고 의 '유고'를 영어로 어떻게 표현하느냐를 가지고 고민하다가 'Incapacit- ated'(기능정지)라고 하기로 했다.
유병현 대장은 미국측에게 우선사태진전을 보고하기로 했다.동판실 에서 미국합참 상황실(일명 미국군사지휘본부=Natioanl Military Command Center)을 불렀다.
이 상황실은 미국 국방부건물, 즉 펜타곤의 지하실에 있었다. 유 병현연합사부사령관은 미 합참 작전국장을 전화에 나오게 했다.
이 전화는 미8군사령관을 지냈고 그때는 육군참모차장으로 가 있던 베시 대장과 태평양지구사령관에게도 연결되어 일종의 전화 회담같이 되 었다.
유대장은 미리 초안을 잡아둔대로 미국 정부가 취해 주었으면 하 는 요점들을 유창한 영어로 불러주었다. 베시 대장은 유병현대장과는 함께 한미 연합사 창설 공동위원장으로 일한 적이 있었다.
베시 대장은 '유 장군이 이때 거기에 있어 안심이 됩니다'라고 말 했다.
유대장은 한국측에서 공식발표가 있고나서 한 시간 뒤에 미국의 조 치사항을 발표해달라고 요청했다.
이것은 외국에서 정변이 일어났을 때 미국정부가 너무 일찍 태도를 밝혀 미국정보기관이 개입되었다는 오해를 산 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미 합참상황실은 박정희이라는 이 특급정보를 즉시 백악관 지하실 에 있는 상황실에 보고했다. 상황실에서는 이 정보를 카터 대통령에게 전화로 통보했다. 그때 카터는 오하이오주의 우주비행사출신 상원의원 글렌과 요담하고 있었다. 카터는 '박정희 유고'를 글렌 의원에게 알렸다.
글렌은 요담이 끝나고 나와서는 기자들에게 이 정보를 전했다.
'박정희 유고'기사가 우리 정부의 공식발표 이전에 미국에서 먼저 보도되어 국내로 들어온 이유가 이것이다.
유병현 대장은 미국무부의 협조를 받으려면 주한미국대사를 통해서 사태를 보고할 필요가 있다는 판단을 했다.
이에 따라서 우선 참모장 로젠크렌스 중장에게 국무부가 발표해줄 성명서 요지를 구술시켰다. 이런 종류의 문서는 글라이스틴 대사를 통해 서 보고하여야 한다. 참모장을 시켜서 글라이스틴 대사집으로 전화를 하게 했다. 이때가 자정무렵. 그때까지도 대사는 아무것도 모르고 있었다.
글라이스틴 대사는 자신이 직접 승용차를 몰고대사실로 나와서 도 청방지장치가 되어 있는 통신실에서 국무부로 긴급전문을 쳤다.
최근 비밀이 해제된 미국측 문서를 읽어보아도 미군과 미 대사관이 이날 유장군이 전해준 정보에 거의 전적으로 의존하고 있었음을 알수 있 다.
미 국무부가 한국사태에 대한 성명을 발표한 것은 미국언론이 글렌 의원의 말을 인용하여 '박정희 유고'를 보도하기 시작한 직후인 한국시간 27일 새벽4시30분이었다.
김성진문공부장관이 대통령유고를 발표하고 이것이 새벽5시부터 국 내방송을 통해서 전해지기 전이었다. 이 성명에서 미국정부는 '미국정 부는 이 사태를 한국 국내문제로 간주한다'면서 '관련 당사자들의 신중한 태도를 희망한다'고 했다.
이 성명서는 또 '한국사태를 이용하려고 드는 외부세력의 기도에 대해서는 한국과의 조약상 의무에 따라 강력하게 대처할 것이다'고 천명 했다.
27일새벽6시 글라이스틴 대사는 국무부에 보낸 긴급전문에서 '유병 현 연합사 부사령관은 최규하 대통령권한대행이 내각과 군부의 지지를 받 고 있음을 통보해왔다.
유 장군은 문관에 의한 군부통제를 보장하기 위하여 제주도를 제외 하고 계엄령을 편 것이라고 설명했다'고 보고했다.
이날 오전 9시에 글라이스틴이 미 국무부에 보낸 전문도 '유병현 장군이 알려준 대통령의 죽음에 대한 설명'으로 채워졌다.
유병현 장군은 '이것은 군사쿠데타가 아니며 군부는 내키지 않으면 서도 사태를 장악해야 하는 입장에 서게 되었다'는 점을 강조했다는 것이 다.
글라이스틴은 '유병현 장군은 우리와 상대하는 데 있어서 매우 협 조적이고 솔직했다'고 보고하면서 '유 장군은 문민통치의 지속을 특별히 강조했다'고 알렸다.
글라이스틴 대사는 27일 아침 8시에는 총리공관으로 찾아가서 최규 하 대통령권한대행을 만났다. 대사는 그 대화 내용을 국무부로 보고했다.
대사는 이 전문에서 '최규하 권한대행은 갑자기 자신에게 부과된 짐의 무게 때문에 걱정을 많이 하고 있었다'면서 '지금까지 만났거나 만 날 한국의 고관들에 대해서는 이번 기회를 이용하여 지난 수개월 동안 이 나라에서 가해졌던 정치적 상처를 치유하도록 권고할 계획이다'고 보고했 다.
최규하 대통령은 글라이스틴 대사에게 '국방장관과 3군 참모총장들 을 포함한 군부 전체가 단합되어 있고 정부를 지지하고 있다'고 말했다고 한다.
글라이스틴 대사는 또 '나는 자정에 모종의 사건이 일어났다는 통 보를 받았고 새벽2시 무렵에는 사건의 내용을 알게 되었다'면서 '사태진 전상황을 우리에게 알려준데 대하여 감사를 표시했다'고 전문에서 밝혔다.
(계속)
[조갑제 출판국부국장·이동욱 월간조선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