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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사문화
 군사문화
 
 1963년 박정희 대통령 후보의 연설을 녹음테이프로 들어본다. 그의 연 설은 기교가 없고 투박하다. 당시 고등학교 2학년생이던 기자는 10월9일 부산공설운동장에서 있었던 공화당 유세를 들으러 갔다. 박의장의 연설은 한 마디로 재미가 없었다. 선동과 우스개가 없었기 때문이다. 지금이나 그때나 정치연설을 듣는 사람들은 통쾌한 공격과 재미를 기대한다.
 
 박후 보는 그냥 차분하고 깐깐하게 연설하니 청중은 흥분하거나 웃을 일이 없었다. 박정희는 또 대중 앞에 나타나 연설하는 것이 뭔가 어색한 듯 몸에 맞지 않았을뿐 아니라 수줍어하는 표정이었다.
 
 36년이 지난 뒤 다시 듣는 박정희의 연설은 달랐다. 그의 연설에는 구체성과 실질이 있고 비전이 있었으며 무엇보다도 열정이 느껴졌다. 그가 연설에서 약속한 것이 대부분 실천되었음을 확인할 수 있는 지금 그의 연 설은 당시의 청중이 아니라 역사를 향해서, 미래를 향해서 토로한 웅변이 었음을 알 수 있다.
 
 박정희는 5대대통령 선거 유세에서 군사문화의 효율성과 복종심, 그리 고 희생정신을 적극적으로 옹호했다. 함석헌-이낙선 지상 논전에서도 잘 드러났지만 이 선거는 군사문화의 실천력과 민간문화의 명분론이 대결한 장이기도 했다. 10월8일 마산 유세에서 박정희는 이렇게 말했다.
 
 <어제 어떤 소위 우리나라의 자칭 지도자라는 사람이 아마 이 고장에 도 다녀갔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는 선거전이 벌어지기 전부터 전국 방방 곡곡을 돌아다니면서 군인은 군복을 벗어도 한 3년 동안은 때가 벗겨지지 않는다, 군대 갔다 온 놈은 전부 집에 앉아서 한 삼년 동안 물을 끓여놓 고 때를 벗겨라, 이겁니다. 여기 지금 군대 갔다온 제대군인들이 많이 계 시죠. 완전히 군복을 벗고 민정에 참여하더라도 이것은 옷만을 바꾼 군정 이다, 그러니까 우리 야당 구정치인들이 정권을 잡아야겠다. 이거 여러분 들이 혹 정신을 못 차리면 감쪽같이 속아넘어갈지도 몰라요. 군인이 군대 에가서 무슨 지독한 짓을 했길래 삼년 동안 벗겨야 할 때가 묻어 있습니 까.
 
 저부터 수십년동안 군에서 복무를 했고 군에서 잔 뼈가 굵었지만 군인 이 군대 가서 배운 것은 또한 여러분들 자제가 군에 입대해서 2-3년 동안 배우는 것은 그야말로 앞으로 국민으로서 건전한 정신적인 기초를 군대에 서 닦아주는 것입니다. 자기 맡은 임무에 대해서 충성을 다하자, 국가에 대해서 충성을 해라, 상사의 명령에 대해서 복종을 해라, 동료, 단체를 위해서는 희생정신을 발휘해라, 모든 일에는 감투정신을 발휘해라. 이런 모든 것은 국민들이 모두 갖춰야 될 훌륭한 정신적인 덕목입니다. 그런데 뭐, 모처럼 배운 것을 집에와서 뭐, 삼년 동안 또 벗깁니까(와 하는 폭소). 그리고 나서 구정치인들이 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얼렁뚱땅하니 그저 남을 속이기나 하고 사기나 하고 협잡이나 하고 하는 그런 재주를 또 배우란 그말입니까?>.
 
 10월9일 부산 유세에서 박정희 후보는 낭만에 빠질 여유도 없는 것이 조국의 현실이라고 했다.
 
 <어제 마산에서 유세를 마치고 부산으로 자동차를 타고 왔습니다. 연도 의 풍경은 대단히 아름다웠습니다. 오곡백과가 대풍년을 이루었습니다.연 도에는 코스모스가 한없이 피어서 지나가는 사람들로 하여금 대단히 부드 러운 기분을 주었습니다. 한 곳을 지나오면서 보니까 땅에 납작하게 붙은 쪼매난 오막살이 주막이 있었습니다. 그 집에 코스모스가 피었는데 그 코 스모스 키가 오막살이 집보다 오히려 더 클 정도로 납작하게 붙은 주막집 입니다. 거기 어떤 농부 같은 한 두 분이 앉아서 막걸리를 이래 기울이고 있었습니다. 맑고 높은 가을하늘, 오막살리 주막집, 코스모스, 두 사람의 농부, 막걸리. 이 광경이 아주 낭만적인 것 같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이 것을 하나의 낭만이라고 듣고 버려둘 수 없는 심각한 현실이란 문제가 있 는 것입니다. 무엇이냐. 금년과 같이 이렇게 풍년이 들었더래도 우리나라 는 식량 하나 자급자족을 못하는 그런 형편에 있다 이겁니다.>.
 
 이 선거를 취재하러 한국에 온 재미동포 언론인 피터 현은 그때 뉴욕 헤랄드 트리뷴 특파원이었다. 그는 윤보선 후보를 먼저 인터뷰했다. 피터 현의 집안과 윤보선의 집안은 서로 잘 아는 사이였다. 피터 현은 장면정 부시절 프랑스 주재 한국 대사관의 문정관으로 일하다가5·16쿠데타가 터 지자 '장면 정부 임명자'로 찍혀 면직되었다. 그는 박정희에 대한 악감정 을 품고 왔다.
 
 피터 현은 윤보선을 만나 인터뷰하면서 대단히 실망했다. 국가운영에 대한 비전을 발견할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국가적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란 질문에 윤보선은 '내가 대통령이 당선되면 모든 게 잘 될 것이 다' '그런 것은 대통령이 당선된 뒤 생각해볼 문제이다'는 식으로 대답하 여 기사화할 말을 찾을 수 없었다는 것이다. 피터 현이 1963년10월6일자 뉴욕 헤랄드 트리뷴에 쓴 선거관련 기사에도 윤보선의 말은 한 마디만 소 개되어 있다.
 
 '나는 군사정부에 가장 강력하게 대항한 사람이고 박정희 일파가 몰고온 해악을 치유할 능력이 있으므로 출마했다.'.
 
 피터 현은 박정희 후보가 대구에서 유세할 때 따라내려가서 그와 인터 뷰했다. 박의장의 집권에 의해 실직이란 피해를 입었던 피터 현은 국가 건설에 대하여 설명하는 박정희의 진지성과 열정에 감복하여 선입견이 바뀌었다. 그는 사정을 끊고서 윤보선보다는 박정희에게 유리한 기사를 쓰게 된다.
 
 (조갑제출판국부국장기자) (이동욱월간조선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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