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만섭기자의 경우
5·16 혁명직후 동아일보 정치부 이만섭(67·국회의장 역임·현국민 회의 고문) 기자는 윤보선 대통령의 민정이양 발언을 보도했다는 이유로 육군형무소에 수감된 적이 있었다. 두 달 후 석방되어 다시 최고회 의를 출입하는 기자가 되었지만 혁명정부에 대한 감정은 좋을 리가 없었다. 이듬해인 1962년10월10일, 박의장의 울릉도 시찰 때 단독 인터뷰를 하면서 1박2일을 함께 지낸 뒤 이만섭 기자는 박정희란 인물을 다시 봐야겠다는 생각을 갖게 된다.
'일본 육사출신이란 인식으로 박정희를 본 것이 그 이전의 제 시각 이었다면 그 이후부터는 대구 사범 출신의 선생님이란 느낌으로 변화되 는 것이었습니다. 이 어른은 만날수록 자립경제·자주국방에 대한 집념과 강한 민족의식을 느끼게 했습니다.'.
그는 정치부 기자로서 살펴 본 박정희, 윤보선 두 사람의 인상을 이 렇게 회고했다.
'윤보선씨는 온화한 인상에 점잖은 분이었지요. 그러나 귀족출신이 라 그런지 서민의 어려움과 고통을 모르는 분이었습니다. 거기에 비해 박정희씨는 가난한 농민의 아들로 태어나 서민의 아픔을 느끼던 분이었죠.윤보선씨댁에 가면 윤씨는 화려한 비단 보료가 깔린 방 가운데에 의 자를 두고거기 앉아 기자를 만났습니다. 집도 궁궐 같은 저택이었고.박 정희 후보는 정 반대의 이미지를 갖고 있었습니다. 서구식 건물인 의장 공관부터 달랐고, 찾아 가면 소탈하게 만나주는 것이 우선 서민의 냄새가 몸에 배인 분이란 걸 느끼게 됩디다. 윤보선씨에게는 없는 불타는 정열이 박정희씨에게는 있었습니다. 큰 차이였어요.'.
이만섭 고문은 이런 차이점들이 객관적 위치에 머물러야 할 기자의 마음을 흔들게 한 원인이라고 했다.
'마음이 자꾸 박정희씨 쪽으로 기울어지고 있었습니다. 이 분이 나 라를 맡아 4년이나 8년 정도만 하면 이 나라는 달라질 수 있을 것이란 생각이 자꾸 들었어요. 그러니 윤보선씨를 취재해 기사를 쓰려면 부정 적인 마음이 앞서 펜이 기울어지려고 하는 겁니다. 중립을 지켜야 하는 기자로서는 안되는 일이기도 했고, 언론을 모독하는 느낌이 들어 미안 한 마음이 생겼습니다.'.
이만섭 기자는 '이럴 바에야 차라리 박의장 쪽에 들어가서 돕는 것 이 좋겠다고 결심했다'고 한다. 1963년 추석 다음날인 10월3일, 이만섭 기자는 서울 장충동 의장공관으로 박의장을 찾아가 말했다.
'의장님. 제가 동아일보 그만 두고 의장님을 돕겠습니다.' '너무 고맙소, 너무 고맙소.'.
이만섭 고문의 표현으로는 '백만원군을 얻은 표정'이었다는 것이다.
'의장님, 저는 구정치인들처럼 무슨 감투나 돈을 원치 않습니다.'내 가 왜 박정희 의장을 지지하는가' 그 이유를 대중들에게 밝힐 기회만 주십시오.'.
후보 지지연설을 하게 해 달라는 요청에 박정희는 즉시 이후락 공보 실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이실장은 그때 메디컬 센터에서 종합검진을 받고 있다가 전화를 받았다. 박정희는 이만섭 기자를 옆에 둔 채 전화 로 '이번 유세반에 동아일보 이만섭씨를 넣을 테니까 같이 하도록 합시 다'라고 했다.
이만섭 기자는 동아일보사에 사표를 제출한 뒤 자신의 연고지인 대 구 유세장에서부터 끝까지 박정희 후보와 선거유세를 함께 했다.
이만섭 국민회의 고문은 박정희 후보 유세 연설문의 경우, '원고는 없었고, 전국 유세를 다니면서 침식을 같이 했던 이후락 실장과 내(이 만섭)가 메모 형식으로 써 올리면 박의장은 이것을 연설에서 거론하는 식이었다'고 한다.
당시 조선일보 정치부 기자 이종식(유정회 국회의원 역임, 현 방일 영 문화재단 이사)은 '박후보는 좋은 말을 많이 했지만, 약간 딱딱해서 공화당에선 선동적인 연설을 잘하는 이들을 찬조연사로 내세우고 있었 다'고 회고했다. 이만섭 고문은 '박의장은 군생활을 오래 한 덕분인지, 원고 없이도 연설을 잘했지요. 웅변은 아니더라도 차분하고 조리있게 짚고 넘어갔습니다. 대중들을 들었다가 놨다가 하는 재주는 없었지만, 유세지역이 바뀌어도 우리가 원하는 방향으로 분명하게 연설했습니다' 라고 말했다.
박후보의 두번째 지방유세는 10월6일 대구 수성천변에서 열렸다. 연 단에 앉아있던 박정희는 인산인해를 이룬 청중들을 보면서 초조한 듯이 만섭에게 '오늘 잘 해야 돼요'라고 몇 번이나 말했다. 이효상의 사회로 시작된 이날 유세에서 첫 연사로 연단에 올라 선 이만섭은 서민들의 가 슴을 울리는 연설을 했다.
'이 나라의 대통령은 가난한 서민출신이어야 하고, 또 이 앞에 앉아 있는 구두닦이 소년, 이런 사람들이 열심히 공부해서 나중에 이 나라의 대통령이 되어야 합니다. 그래야 이 나라를 가난에서 구할 수 있고, 잘 살게 할수 있습니다. 윤보선씨는 사람은 좋지만, 한 여름에도 쎄무장갑 을 끼고 농민들과 악수를 하는 귀족입니다. 서민의 고통을 모르는 이런 사람이 대통령이 되면 나라를 어떻게 가난에서 구하겠습니까. 여기 나 와 계시는 박정희 후보는…'.
이 연설에 청중들은 열광했다고 한다. 이만섭이 연설을 끝내고 자리로 돌아오자 박정희 후보는 '야! 대웅변가야!'라며 담배 한 대를 권했다. 박의장과 이만섭이 담배피우는 장면을 청중속에서 목격한 이씨의 아버지 이덕상옹은 그날 저녁 아들을 불러다 앉혀놓고 '국가원수와 단상에서 어떻게 맞담배질이냐'며 호되게 나무랐다고 한다. (계속).
(조갑제출판국부국장기자) (이동욱월간조선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