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익 전력자들의 소굴?
1963년 10월11일자 미 CIA 특별보고서는 윤보선 후보에 대해서 이 런 표현을 하고 있다.
<(5·16군사혁명 당시) 그는 군부가 자신을 지지하여 정권을 잡게 할 것이라고 기대, 진압군을 동원하지 않았다. 박정희가 그에게 그런 정권의 초대장을 발부하지 않을 것임이 확실해진 다음에야 대통령직 에서 물러났다.>.
이 CIA 보고서는 유권자의 3분의 2를 차지하는 농촌 지역 표 덕분 에 박정희가 승리할 것이라고 내다보았다. 농부들은 '박정희가 다른 후보들보다 더 나쁠 것이 없다고 생각하든지 현존 권력자에게 반대표를 던지는 것은 분별없는 짓이라고 생각하고 있으므로 박정희 지지로 갈 것이다'고 예측했다.
10월2일 미 국무부의 극동담당 차관보 마샬 그린은 주한 미 대사 관의 문정관 그레고리 핸더슨이 작성한 '한국 정부내의 공산주의자 영향력 연구'란 보고서를 힐즈맨 차관보에게 건네주면서 이런 메모를 붙였다.
<나는 이 보고서의 균형감각을 판단할 수단을 갖고 있지 않다. 최 악의 경우 김종필은 한국을 평양에 넘겨주기 위해 활동하는 헌신적인 공산주의자이다. 최선의 경우 그는 민족주의와 반미주의를 정권유지 에 이용하는 소신 없는 모험가에 불과하다.>.
핸더슨은 이 보고서를 쓰게 된 이유에 대해서 '최근 들어서 혁명 정부 인사들의 반미경향이 노골화되고 있고 미국인들과 어울리는 것 을 싫어하며 충고를 받아들이려 하지 않을 뿐 아니라 중앙정보부와 관계 있는 막후 인사들이 큰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어 다시 한번 이들 의 사상검증을 해볼 필요가 있다'는 취지의 서문을 썼다. 그는 혁명 정부의 '좌익 핵심'이 '공산주의 프락치'인지 '좌익 전력자들의 친목 모임'인지는 알 수 없으나 이들의 존재는 미국의 국익 추구를 방해하 게 될 것이라고 했다.
박정희를 포함, 그 측근들과 사이가 나빴던 핸더슨은 자신의 보고서 요약부분에서 이렇게 말했다.
<한국 군사정부의 핵심 그룹은 전 좌익, 공산주의자 및 공산당이 사주한 반란사건 가담전력자의 압도적인 영향권 아래에 있다는 광범 위한 증거가 있다. 박정희는 1947-48년 사이 한국군에 침투하는 데 성공한 남로당 공작의 가장 중심적인 지휘자였다. 김종필은 대학교 시절에 좌익이었고 공산당에 협력한 사람들을 보호하고 그들과 관계를 맺어왔다. 박, 김 양가사람들 가운데도 공산주의자 혹은 협력자들이 들어 있다.
김종필이 중앙정보부 안에서 데리고 있었던 측근들 가 운데는 잘 알려진 좌익이나 공산당 전력자들이 많고 그들의 영향력도 광범하다. 박정희의 고문들과 친구들 가운데도 전 공산주의자들이 많 다. 여당인 민주공화당도 그런 배경을 가진 인물들을 특히 많이 거느 리고 있다. 군사혁명정부내의 좌익과 협력자들의 비율은 다른 정치조 직의 평균치보다도 훨씬 높다.>.
핸더슨은 박정희의 좌익전력의 뿌리를 만주군관학교 및 일본육사 유학생때 시절로 거슬러 올라가 설명하려 한다.
<만주군관 학교의 동기생 가운데 세 사람이 나중에 그의 좌익 음 모에 가담했다. 박정희의 일본 육사기수(57기) 전후 2년안에 졸업한 13명이 좌익 혹은 공산주의자가 되었다. 그들 가운데 9명은 박정희의 후배였다. 동양적인 연장자 존경의식 때문에 그들은 박정희의 영향을 많이 받았을 것이다. 이들 아홉 명 가운데 한 명만 빼고는 전원이 박 정희가 지휘한 음모에 가담했다. 조선경비사관학교(한국 육사의 전신) 에서 그와 함께 교관으로 근무하면서 음모에 가담했던 일곱 명의 장 교들은 그 결과로써 모두 목숨을 잃었다.>.
핸더슨은 박정희의 육사 후배나 동료들이 모두 그의 영향으로 남 로당 조직에 가입한 것처럼 과장하고 있다. 박정희가 적극적으로 조직원 포섭에 나섰다는 증거는 없다. 핸더슨의 이야기는 박정희가 어 떤 인간관계 속에서 청년장교 시절을 보내면서 좌경화되었던가를 추정할 수 있게 해주는 한도 안에서 참고가 된다.
핸더슨은 여순 14연대 반란사건 직후 시작된 군내 남로당 조직 수사에서 김창룡에게 체포되어 심한 고문을 받았다고 했다. 박정희는 자신이 반성하고 있으며 그 반성의 진의를 증명하고 용서를 받기 위해 그가 책임지고 있던 조직원의 명단을 털어놓겠다고 김창룡(미국인 들은 그를 '스네이크 킴'이란 별명으로 불렀다)에게 제의했다고 썼다. 이 제의가 받아들여지고 박정희는 김창룡의 체포조와 함께 활동하면서 남로당 조직원들의 집으로 수사관들을 데려가기도 했다는 것 이다.
<그가 털어놓은 명단이 몇 명인지는 확인할 수 없으나 12명 선일 것이다. 그의 후배 장교들도 몇 명 포함되어 있었다. 이들은 박정희 의 배반을 알고는 다른 조직원들의 명단을 불었고 붙들린 다른 조직 원들은 또 다른 조직원들을 대기 시작하여 수백 명이 체포되고 고문 받고 제거되었다.>.
핸더슨의 이 대목도 과장이다. 숙군 수사로 한국군에서 추방되거나 제거된 장교들은 약 1,500명으로 추정된다. 억울한 사람들도 적지 않았으며 대부분의 명단은 김창룡 팀이 군내 남로당 조직 책임자 이재복의 비서를 체포하여 확보한 것이었다. 핸더슨은 박정희의 배반이 남로당 소탕의 결정적인 계기였다는 식으로 부풀리고 있다.
핸더슨은 이 보고서에서 당시 혁명정부에 참여한 여러 장성급 인 사들을 좌익전력자로 분류했는데 그들의 대부분은 공산주의자가 아니 라 미군정과 친일경찰출신들에 대해 불만을 갖고 있던 사람들로서 경 찰이 그들에게 '불순분자'란 딱지를 붙여놓은 것을 그대로 인용한 것으로 보인다. 핸더슨의 이 보고서는 5대 선거에서 사상논쟁이 치열해 지자 이런 분위를 이용하여 6·25이전 사상 혼란기의 전력을 과장함으로써 박정희와 그 측근들을 용공으로 몰고 있다는 악의성을 강하게 풍긴다. '계속'.
(조갑제출판국부구장기자) (이동욱월간조선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