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윤보선 보호
공화당 서인석 대변인은 투표일 이틀을 앞두고 나온 민정당 윤보선후 보측의 폭로에 대해 '박정희 소령은 관제 공산당으로 몰린 적은 있으나 여순 사건과 관련해서 재판받은 적은 없다'고 반박했다. 이 말은 부분적 인 진실을 담고 있을 뿐이다. 공화당은 윤보선측에서 '박정희 후보는 여순반란 사건에 연루되었다'고 말하는 것을 약점으로 삼았다.
박정희는 여순 14연대 반란사건 토벌사령부의 작전장교로 근무한 적은 있으나 반 란에 가담한 적은 없고 그 이후에 있었던 숙군수사 때 체포되었던 것이다. 공화당은 윤보선측 주장의 이런 헛점을 파고들어 '박정희 후보는 무 고하다'고 우겼다. 서인석 대변인은 '이런 폭로를 투표날 직전에 발표함 으로써 해명의 기회를 주지 않고 국민을 현혹시키려 한다'고 비난했다.
투표 하루 전인 14일 민정당 임시 대변인 김영삼(14대 대통령 역임) 은 윤보선후보가 사실상 연금상태에 있다고 폭로했다. 김대변인의 발표 에 의하면 '윤보선 후보의 자택은 13일 밤부터 10여 명의 기관원들에 의해 포위되었으며 실질적으로 연금상태하에 있다. 신변 보호를 위해 5명의 경찰관이 있는데도 요청하지도 않은 감시를 받고 있다'는 것이었다. 이에 대해 서울시경은 반박성명을 발표했다.
경찰은 '민정당에서 지방당원들을 집단 상경시켜 친여정치단체회원 으로 가장, 윤씨를 습격한다는 정보가 있어 정사복 경관으로 하여금 윤 씨집 부근의 연도경비를 강화했을 뿐이다'고 했다. 김영삼 대변인의 이 엄청난 주장은 신문에 크게 보도되었고 경찰의 해명은 1단 기사 정도로 실려 선전전에선 야당이 승리했다.
1991년에 나온 윤보선의 회고록에는 이 사건에 대한 언급이 한 줄도 없고 윤보선의 행동이 제한당했다는 증거도 없다. 경찰이 증파한 경호 인원을 김영삼 대변인이 '윤후보를 연금시키기 위한 감시요원 배치'로 각색한 것으로 보인다. 당시 치안국장 이소동장군은 '연금사건이라니 그런 일은 있을 수도 없고 기억도 나지 않는다'면서 '그 뒤 야당의 항 의를 받은 적도 없다'고 했다. 이 선거를 면밀하게 감시하던 미국측의 보고에도 이 '엄청난 사건'에 대한 언급이 한 마디도 나오지 않는다.여 당에 의한 금권·관권선거와 함께 야당에 의한 이런 조작과 선동도 같 이 비판받아야 마땅할 것이다. 반민주적인 행위인 점에서는 같기 때문 이다.
1963년10월15일 아침 장충동 2가 제1 투표소에 나온 박정희 후보는 새치기를 해도 좋다는 주변의 권고를 사양하고 줄을 서서 차례를 기다 렸다. 그는 앞에 선 사람들에게 말을 건네고 어머니 등에 업힌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어주기도 하는 등 쇼를 싫어하는 박정희로선 최선을 다하 는 모습을 보였다. 기자들이 그런 행동을 지적하면서 '부동표가 많이 쏠리겠습니다'라고 농담을 했다. 박정희는 계면쩍게 웃더니 줄을 선 약 300명의 유권자들을 가리키면서 '부동표요? 기껏 요만한 부동표를 얻어 무엇한단 말이요'라고 했다.
이날 윤보선은 투표를 하고 안국동 자택으로 돌아왔으나 집안에 머 물 기분이 아니었다. 지친 심신을 좀 쉬게 하려고 집을 나섰다. 그때 지프차를 타고 집에까지 따라와 있던 한 미군이 다가오더니 백병원으로 가라고 했다. 아내와 함께 백병원에 도착하니 2층 원장실로 안내되었다. 원장은 보이지 않고 간호사같은 젊은 여자가 있었다.
그녀는 윤보선을 보자 진찰준비는 하지도 않고 원장실 뒷쪽에 난 문 을 열고는 빨리 나가라고 하는 것이 아닌가. 영문을 모른 채 문밖으로 나가서 계단을 따라 내려가니 아래에는 폭스바겐 승용차 한 대가 서 있 었고 운전석에 앉은 한 미국 부인이 시동을 걸어놓은 채 윤보선을 향해 서 타라고 손짓을 했다. 윤보선 부부를 태운 차는 한남동으로 달렸다. 미국인 부인은 자신의 집으로 윤보선 부부를 데리고 들어간 뒤 비로소 신분을 밝혔다. 윤보선의 회고록('외로운 선택의 나날')에 따르면 이 부인은 '남편은 미국 정보부에 근무하는 케디 중령이고 윤후보의 신변 을 보호하기 위해서 남편이 시키는대로 우리 집에 모시고 왔다'고 설명 하더란 것이다.
<그제서야 사실을 알게 된 나는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미국 정보부 에서는 나에게 닥칠지도 모르는 위험 때문에 신변을 감시해왔고 투표가 끝나자 안전한 곳으로 피신시킨 것이었다. 나는 그 집에서 이틀을 머물 며서 편안한 마음으로 휴식을 취할 수 있었다.>.
한 나라의 야당총재이고 강력한 대통령 후보가 이틀간 미국 정보기 관원 집에서 안전을 도모했다는 것은 약간의 검토가 필요한 사항이다. 윤보선의 당선 가능성이 대두되던 10월4일 미 국무부는 주한미국 대사관에 대해 군사정부의 강경파가 극단적인 조치를 취할 것에 대비하여 일종의 비상계획을 세우도록 지시했었다. 이 비상계획의 내용은 공개되지않고 있다. 윤보선의 증언과 연결시켜 추정하면 미국측이 투표 및 개표기간중 윤후보를보호하는 것이 그 핵심적 내용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미국측으로서는 이 일이 처음도 아니었다. 1952년 여름 부산정치파동 때 미국은 이승만대통령에 도전하던 장면을 숨겨서 보호해준 적이 있다. 장면은 그 뒤 이승만 대통령 아래에서 부통령으로 있을 때 미국측에 대해서 '만약 대통령이 유고되었을 때는 내가 대통령권한 대행으로 취임 할 때까지 48시간 정도 나의 신변을 보호해줄 것'을 요청한 적도 있었다.
(조갑제출판국부국장기자) (이동욱월간조선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