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떨이
박정희 의장의 손이 담배와 함께 덜덜 떨리고 있었다. 화가 나면 나타나는 증상이었다. 이때 춘천 유세에 연사로 참석했다가 돌아온 이만섭 전 동아일보 기자가 방으로 들어왔다. 박의장은 이만섭을 보자 마치 원군을 얻은듯 언성을 높였다.
'그렇다고 나를 공산주의자로 몰아?'.
박의장은 벌떡 일어나더니 자개 재떨이를 들어올렸다. 그리곤 마루바닥에 쾅 하고 팽개쳤다. 박의장은 슬슬 걸어 방을 나가버렸다. 김성열동 아일보 정치부장은 박정희가 화장실에 간 줄 알았는데 10분이 지나도 돌 아오지 않았다. 이후락 실장만 안절부절 어쩔 줄 몰라 하면서 안팎을 왔 다갔다 했다. 이실장은 '곧 나오실 겁니다'라고 했다. 김부장은 이실장 에게 말했다.
'회견하실 뜻이 없으면 그냥 가겠습니다. 신문사 체면도 있고, 제가 개인적으로 온 것도 아니고···' '그렇게 하시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오늘 영감이 피곤하셔셔 좀 흥분하신 것 같습니다. 원수지간도 아닌데 인사나 하고 가시지요.'.
이후락의 안내를 받아 김부장이 들어간 곳은 응접실과 붙어 있는 침 실이었다. 박정희와 육영수가 서 있었다. 김부장이 박정희에게 '저는 그만 가보겠습니다'라고 인사하니 박의장은 다가와서 말없이 손을 쑥 내밀 었다. 한복차림의 육영수는 거의 90도로 허리를 굽히면서 말했다.
'너무 무리하게 유세 계획을 짰지 뭐예요. 새벽부터 밤까지 강행군을 며칠씩 하니 저 양반이 너무 피곤해서 잠을 못이루는 날이 많았습니다. 오늘 너무 흥분하신 것 같으니 양해하세요.'.
김부장은 속으로 '야, 이렇게 얌전한 부인이 저 박의장 같이 성미급 한 남자를 만나 모진 고생을 하겠구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때 옆에 있던 박의장이 다시 고함을 치다시피했다.
'내가 형 한 사람 때문에 두고두고 공산당으로 몰리는데 내가 왜 공 산주의자요?'.
박정희는 분노로 온몸을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 김부장은 재빨리 침 실을 빠져나와 가파른 계단을 따라 1층으로 내려갔다. 뒤따라 나온 육영 수는 김부장이 계단을 따라 내려와 현관에서 신발을 신을 때까지 지켜보 면서 '미안합니다'란 뜻을 전했다. 김성열 부장은 공관을 나서면서 유혁 인기자에게 '오늘 있었던 일을 그대로 기사로 써!'라고 했다. 유기자는 '부장님, 만일 신문에 그렇게 나가고 박의장이 낙선하면 광화문 사옥이 박살날 겁니다'라고 했다. 김성열은 '군대를 잘 알던 유혁인 기자는 겁 을냈고 군대를 잘 모르던 나는 오히려 겁이 없었다'고 회고했다.
10월 14일자 동아일보 1면에는 박정희, 윤보선 두 후보와의 인터뷰 기사가 실렸다. 박정희와의 인터뷰 기사는 유혁인 기자가 끝마무리를 짓지못했던 12일 오후의 단독 회견 내용이었다. 춘천에서 대통령 선거유세 를 마치고 장충동 의장 공관으로 돌아온 박정희 후보가 유혁인 기자에게 직설적으로 자신의 감정을 표현했던 것이다.
'야당 사람들이 지금 별의 별 짓을 다해가며 선거 분위기를 흐리게 하고 있으니 개표가 끝날 때까지 또 무슨 장난을 할지 큰 걱정입니다.지금 야당 하는 사람들 하는 것을 보면 개표할 때 뭣을 집어넣든가 또는 무슨짓을 해서라도 부정이다 뭐다 하지 않을 것 같소? 이번만은 무슨 일 이있더라도 공명선거를 하려고 이렇게 노력하는데도 야당 사람들은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있으니 분통이 터질 노릇이 아닙니까. 지금 그 사람 들한테는 법이 있습니까? 잡아가라고 떠들어댄다는 것도 잘 알고 있습니 다. 그저 꾹 참고만 있습니다만 선거만 끝나면 모조리 다 그만두지 않을 테요. 나는 지금 테러를 당하고 있어요. 그저 참고 있자니···이 나라 의 원수인 나를 빨갱이로 몰아치니···. 목적을 위해 수단방법을 안가 리니 이게 바로 공산당수법과 다른 게 뭐요? 내가 빨갱이라면 이 나라가 2년 동안 빨갱이 치하에 있었단 말인가요?'.
박의장은 옷을 갈아입지도 않고 피로가 역력한 표정으로 소파에 몸을 기대어 '시험은 이제 끝났고 나는 내 실력껏 쳤으나 심사관들이 어떻게 점수를 매길지 뚜껑을 열어봐야 알지요'라고 했다. 그는 다시 이야기를 사상논쟁으로 돌려 '정적을 빨갱이로 모는 이 폐풍만은 이 기회에 뿌리 를 뽑아야지요'라고 했다.
10월13일 박정희 후보는 수원과 인천에서 마지막 선서유세를 했다. 박정희는 '지금 여건으로는 누가 집권해도 당장 잘 살게 할 수 없다'면 서 '내가 집권하면 여러분에게 근면과 내핍, 피땀 흘려 일할 것을 요구 할 것이다'고 말했다. 윤보선후보는 이날 수원, 천안 유세에서 '군정과 민정을 판가름하는 이 마당에 사상이 분명한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 가운데 누구를 선택할 것인가'라고 물었다.
윤보선 후보의 민정당은 이날 경향신문 1949년2월17일자와 서울신문 2월18일자에 실렸던 '박정희 소령 무기 징역 선고' 관련 기사를 공개했다. 박정희 소령이 72명의 다른 장교들과 함께 여순 14연대 반란 사건 이후에 있었던 군부내 남로당 조직 수사에 걸려 군법회의에 넘겨졌고 유 죄선고를 받았다는 내용이었다. 동아일보는 민정당의 이 폭로 내용을 호외로 만들어 전국적으로 돌렸다. '계속'.
(조갑제출판국부국장기자) (이동욱월간조선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