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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부의 중립
 군부의 중립
 
 5대대통령 선거운동 기간중 국군은 대체로 중립을 지켰다. 당시 육군 방첩부대장은 정승화 준장이었다. 그는 지휘관들이 혁명 정부의 치적을 홍보하는 정도만 허용하고 투개표 부정은 못하게 했다.
 
 민기식 육군참모총장은 일과 후 육본 강당에 장병들을 모아놓고 몇번 '윤보선 후보를 찍으면 나라가 위태로워질테니 박정희 후보를 찍어야 한다'고 역설했다. 민기식은 박정희, 이주일(최고회의 부의 장)과 술자리에서 격의없이 속을 털어놓는 사이였다. 호주가인 세 사람은 백화수복 정종을 섭씨 40도로 데워 맥주컵에 부어마셨다.이 무렵 박의장은 이가 좋지 않아 치료를 받고 있었는데 그래도 술을 마다하지 않았다. 민기식은 '이런 술자리를 통해서 비로소 박의장 같은 분을 중심으로 한 10년은 해야 부국강병을 이룩할 수 있겠구 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고 한다.
 
 민기식이 보니 박의장이 갖고 다니는 수첩에는 각부처에 지시한 일을 깨알같이 붉은 글씨로 메모해두고 점검하고 있었다.
 
 의장실 벽면에는 한반도 지도가 있는데 곳곳에 색색으로 개발지의 표시가 되어 있었다. 수백 가지나 되는 사업들을 일일이 챙기고 있는 박의 장에게 감복한 민기식의 선거운동은 순전히 개인 차원의 지원이었다는 것이다. 민기식은 1, 2군 사령관에게는 아무 지시도 하지 않았으나 논산 훈련소장에게는 '중장으로 승진시켜줄테니 장병들과 훈련생들이 박정희 후보를 찍도록 교육하라'고 지시했다.
 
 민기식은 미발표 회고록에서 '아마도 5대 대통령 선거에서 선거운동을 한 군 인은 나밖에 없었을 것이다. 나는 정권이 바뀌면 형무소에 갈 각오를 했다'고 썼다.
 
 10월12일 오후 동아일보 김성열 정치부장(뒤에 동아일보 사장 역임)은 박정희 후보측을 맡고 있던 유혁인 기자(뒤에 대통령 정무 수석비서관·작고)에게 '박후보가 유세를 마치면 인터뷰를 하되 이 질문을 꼭하라'고 지시했다.
 
 질문은 '만약 낙선되어도 국민의 심판을 따르겠습니까'였다. 김 부장은 박정희가 선거에서 패배하면 과연 군부가 결과에 승복하겠 는가 하는 의구심이 있었으므로 박정희의 답은 뉴스거리라고 판단 했다. 몇시간 뒤 유혁인 기자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박의장과 단독 인터뷰를 하고 있는데 타사 기자들이 몰려와 마 지막 질문을 못했습니다. 그런데 한 가지 방법은 있습니다. 저같은 평기자는 안되고 부장께서 오시면 단독 회견에 응할 것 같습니다.'.
 
 오후 7시 장충동 의장공관에 도착한 김부장은 응접실로 안내되 었다. 유혁인 기자는 미리 와 있었고 이후락 최고회의 공보실장이 자리를 권했다. 잠시 후 유세장에서 돌아온 양복차림 그대로의 박 의장이 나타났다. 의자에 앉자마자 박정희는 쏘아붙였다.
 
 '동아일보는 완전히 야당편이더군요. 부산 대구 유세 현장 취재 기자가 아무리 청중이 몇십만 명이라고 기사를 보내도 서울에 앉아 있는 정치부장이 마음대로 결정한다면서요?'.
 
 김성열 부장은 속으로 '아 그 일 때문이구나'라고 생각했다. 김 부장은 유세장의 청중수를 정확하게 계산하기 위해서 유세장의 면 적을 미리 파악하고 항공사진을 찍어 평당 인원수를 추정하기도 하는 등 나름대로 애썼는데 박의장이 오해를 하고있구나 하고 그간의 과정을 설명했다. 과학적인 방법을 동원해보니 인파수가 주최측에서 발표하는 것보다 항상 적게 나왔다. 수십만 인파라고 발표된 것도 따져보면 그 10분의 1밖에 안되는 경우가 많았다. 김성열은 이렇게 회고한다.
 
 '대구 수성천변에서 박정희 후보가 유세를 할 때 이 지역의 중 요성을 감안하여 사회부 기자들도 별도로 보냈습니다. 신문 강판 직전에 내가 현장의 사회부 팀장에게 전화를 걸어 청중수를 물었더 니 한 5 - 6만명이라고 합디다. 정치부 팀에 물었더니 다른 신문사 기자들은 수십만으로 송고하는 걸 확인했다고 하는 거예요. 다시 사진부 팀장에게 '전번 윤보선 후보 때와 비교해서 어떠냐'고 물었 더니 '비슷합니다'라고 해요.
 
 그래서 윤후보 유세 때 현장에 있었 던 여덟명의 기자들에게 일일이 물었습니다. 네 명은 윤보선 때가 많았다, 네 명은 지금이 더 많다고 해요. 마지막으로 대구 지사장 에게 물으니 전과 같다고 해서 '대체로 10만대는 넘을 것이라고 보는 견해가 가장 많다'고 써넣었어요. 다른 신문보다도 우리쪽 청중 수가 적었으니 박의장이 화를 낸 겁니다'.
 
 박정희는 김부장의 설명을 듣더니 '동아일보는 공화당 집회를 과소평가한 거죠?'라고 또 따지고 들었다.
 
 '항공사진까지 찍어서 정확을 기하려 했습니다.' '우리 공군에서도 사진을 찍었습니다.'.
 
 이걸로 청중수 문제가 일단락되는가 했더니 박정희는 다시 정색 을 하고 말했다.
 
 '그런데 내가 왜 빨갱입니까.'.
 
 박정희는 답을 기다리지 않고 '왜 내가 공산주의자라고 신문에 서 보도합니까'라고 다그쳤다. 어느 새 박의장의 손에는 담배가 들 려 있었고 김부장도 담배를 피우기 시작했다. 김부장이 설명하기 시작했다.
 
 '아시다시피 평상시에 언론은 사건이나 뉴스에 대해서 일일이 검증하여 사실에 가깝다고 판단할 때 보도합니다만 선거기간중에는 후보들의 주장이나 말 그 자체가 뉴스입니다. 박의장께서 유세장에서 하신 말씀도 여과없이 보도했습니다.'. '계속'.
 
 (조갑제출판국부국장기자) (이동욱월간조선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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