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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도 유권자의 경상도 후보 지지
 전라도 유권자의 경상도 후보 지지
 
 5대 대통령 선거 당시 재건 민주당의 대변인으로서 박정희 후보에 반대하는 입장에 있었던 김대중 대통령은 1995년1월호 월간조선과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술회했다.
 
 '당시 박대통령이 보수 수구세력에 대해 국가 개혁론을 주장하여 국민들의 관심이 있었어요. 보수귀족과 개혁파의 대립이었다고 보는 시각도 있었어요. 윤보선씨가 그때 실수한 것은 박정희씨를 빨갱이로 몬 것입니다. 미군정 3년 동안 무고하게 빨갱이로 몰린 사람들, 특히 전라도 사람들이 반발해서 박대통령을 밀어주었어요. 그러나 대통령 이 되자마자 전라도를 차별해서 나라를 이 꼴로 만들었어요.'.
 
 5대 선거의 핵심적 의미는 다수의 농민과 진보-개혁-좌파세력의 지지를 업은 박정희로 대표되는 근대화 세력이 지주계층의 지지를 모은 윤보선의 보수적 정치세력을 눌렀다는 점이다. 군인엘리트가 부국 강병론의 국가주의에 기초하여 정치적 주도권을 잡고 역사의 흐름을 이끌도록 역사적 소명을 부여받은 셈이었다.
 
 박정희는 자신의 근대화 작업이 우리 민족사에서 차지하는 의미를 해석하고 의미를 부여할 수 있는 역사관을 갖고 있었다. 박정희는 그런 역사관을 매개로 하여 미래에 대한 비전과 과거에 대한 해석을 일관성있게 연결시킴으로써 전략과 정책에 심도를 더하고 국민들을 동 원하는 정치적 무기로 활용했다.
 
 근대화 혁명가 박정희가 지녔던 혁명적 역사관의 핵심은 한민당- 민주당계열의 윤보선 세력을 조선조 양반문민정치의 생리(당파성, 사 대성,위선적 명분론)를 이어받은 봉건적 잔재, 즉 수구적 정치세력으 로 본 점이다. 박정희는 5·16주체세력을 근대적 국가엘리트라고 규정한 뒤 나라를 식민지로 전락시킴으로써 우리 민족사상 최초의 망국 을 초래했던 이런 봉건적 정치세력의 잔재를 청산하고 자조정신, 자립경제, 자주국방에 기초한 진정한 독립국가를 건설하는 것을 근대화 라고 정의했던 것이다. 문제는 그가 봉건적·사대적·파당적 정체세력으로 규정했던 구민간 정치 세력이 서구민주주의의 가장 강력한 주 창자라는 명분을 확보하여 국민들 마음 속에 자리잡고 있었다는 점이 다.
 
 박정희의 관점에서는 이들이 근대화되어야 할 수구·사대 세력이 었지만 민주주의 교육을 받은 많은 사람들의 눈에는 민주투사들로 비 쳐졌다. 그 결과가 윤보선의 많은 득표로 나타났던 것이다. 5대 선거 에 참여한 유권자들은 일단 박정희 주도의 근대화 세력에 국정의 고 삐를 넘겨주었지만 민주주의 요구세력에게도 엇비슷한 지지를 보냄으로써 강력한 견제장치를 만들어낸 것이다. 박정희는 이 견제장치로 해서 때로는 더욱 열심히 일하고 때로는 반발하고 때로는 경멸하고 때로는 타협하면서 국가를 이끌게 된다.
 
 5대 대통령 선거는 전라도 유권자들이 경상도 후보를 지지한 드문 경우였다. 호남 지방에 뿌리박은 한민당계열의 김준연 서민호 조영규 민영남 같은 인물들이 윤보선 후보 주변에서 물러났거나 밀려났고 나용균 이정래 조한백 정성태 같은 민주당 구파출신 김도연계인사들이 당내에서 푸대접을 받은 것과 무관하지 않다는 분석도 있었다. 그렇 더라도 전남북에서 박정희가 윤보선을 약35만 표차로 이긴 데는 이런 정치적 시각만으로는 설명이 되지 않는 보다 근본적인 원인이 있었을 것이다. 지역의식을 뛰어넘게만든(당시의 지역의식은 정치인들의 본격적인 선동이 이루어지기 전이므로 지금처럼 심하지도 않았다) 더 큰 명제가 표의 흐름을 결정했다는말이다.
 
 그 명제란 근대화냐 민주화냐, 민족적 민주주의냐 서구식 민주주 의냐, 사대냐 자주냐, 국권이 우선인가 인권이 우선인가, 경제발전인 가 정치발전인가로 요약·상징되는 우리 사회의 양대흐름이었다. 이 역사적 명제를 놓고 우리 국민들은 절묘한(또는 슬기로운) 선택을 했다.
 
 15만여 표차로 권력을 박정희의 근대화 세력에게 넘겨주는 대신에 민주화 세력에게는 '정신적인 승리'를 안겨주었던 것이다. 이는 양대 세력이 대한민국이란 울타리 안에서 서로 견제, 경쟁함으로써 결과적으로는 국민과 국가를 위한 충성경쟁을 벌이도록 한 셈이었다. 그런 점에서 근소한 표차로 승부가 갈린 5대 대통령 선거는 한국 현대사의 진로와 주인공을 결정한 역사적 선거였다.
 
 5대 선거 결과에 누구보다도 놀란 것은 미국이었다. 의심에 찬 눈초리로 박정희측을 감시하던 주한 미국 대사관은 10월16일 국무부에 올린 보고서에서 '윤보선의 기대 이상의 선전, 군인표의 윤보선 지지, 그리고 군사정부의 공명선거 의지'에 놀라움을 표시했다. 사뮤엘 버 거 대사가 작성한이 보고서는 '군사정부가 투표결과에 대해 과신한 때문이라고 하더라도 군사정부는 의식적으로 질서 있고 효율적인 투개표가 보장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했다'고 높게 평가했다.
 
 딘 러스크 국무장관은 버거 대사 앞으로 보낸 10월22일자 전문에 서 '민주적인 선거가 질서 있게 치러졌음'을 공인하면서 '이렇게 된 데는 귀하와 대사관의 노력이 주효했다'고 치하했다. 러스크 장관은 그러면서도 '김종필이 귀국하면 정부가 탄압적인 방향으로 변할 위험성이 있다'고 지적했다. 10월21일 윤보선의 민정당은 선거유세중 '경상도에 빨갱이가 많다'는 취지의 발언때문에 경상도 표를 많이 잃었다고 하여 김사만을 제명키로 의결했다. '계속'.
 
 (조갑제출판국부국장기자) (이동욱월간조선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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