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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 유고!
 대통령 유고!
 
 새벽2시 국방부회의실. 국무회의가 정식으로 열렸다. 최규하총리 가 몇 마디를 꺼내는데 신현확 부총리가 나섰다.
 
 '조금만 계십시오. 제가 이야기하겠습니다.'.
 
 신부총리는 목을 가다듬더니 다음과 같이 말을 이어갔다.
 
 '박 대통령께서 서거하셨습니다. 우리가 직접 병원에 가서 확인하 고 왔습니다. 그 사고의 내용은 앞으로 상세하게 밝혀지겠지만 이 사실 을 전제로 하고 국가위기의 수습방안을 의논해야겠습니다. 우리 헌법은 통치권자의 공석이 있 을 때의 승계 순위를 명문으로 규정하고 있습니다. 그 규정에 의하면 국무총리가 승계하도록 되어 있습니다. 따라서 최규하 국무총리께서 지금부터 대통령 권한대행이 되셨으니이 점을 국무회의에서 확인하고 넘어가야겠습니다.'.
 
 신현확 부총리의 사회로 국무회의는 27일새벽4시를 기해서 제주도 를 제외한 전국에 비상계엄령을 선포하기로 의결하고 계엄사령관에는 정 승화육군참모총장을 임명했다.
 
 제주도를 제외하기로 한 것은 노재현국방장관의 제안에 따른 것이 었다. 전국계엄이 되어버리면 모든 정부의 행정기관이 계엄사령관의 지 시를 받고 계엄사령관은 대통령의 명령만 받게 된다.
 
 자칫 군정이 되기 쉽다. 제주도를 제외한 부분계엄이 되면 계엄 사령관은 국방장관의 통제를 받도록 되어 있다. 정승화 총장은 자신의 회고록 '12.12사건, 정승화는 말한다'에서 이렇게 쓰고 있다.
 
 [나는 '국방장관이 계엄에 간여하고 싶은가 보다'라고 생각했다.나 는 노국방과는 허물이 없는 데다가 가급적 법적 테두리내에서 질서를 찾 고 국가를 안정시켜야겠다는 생각이 앞서서 부분 비상계엄을 순순히 받아 들였다. 그때 내가 전국일원의 비상계엄을 요구했더라도 반대할 사람은. 아무도 없을 분위기였다.]
 
 이에 대해 노재현은 '제주도를 제외하고 계엄령을 선포키로 한 것 은 최규하 총리의 생각을 따른 것이었다'고 말한다. 최총리는 군을 잘 모르기 때문에 노재현 장관을 통해서 계엄사령부를 지휘하고 싶어했다는 것이다.
 
 육군본부는 비상계엄을 선포할 경우에 취할 조치에 대해서 세부계 획서를 작성하여 오래 전부터 갖고 있었다. 정승화 총장은 그것을 갖고 와서 우선 포고문1호를 낭독하고 의견을 구했다.
 
 박찬현문교부장관이 말했다.
 
 '고등학교까지는 휴교시킬 필요가 없지 않습니까?'.
 
 정 총장도 동의하여 대학교만 휴교하기로 했다. 김치열법무장관이 질문을 던졌다.
 
 '일체의 정치활동을 정지시킨다면 국회활동도 포함됩니까?'.
 
 정총장은 계엄령에 대한 인준을 국회로부터 받아야 한다는 생각이 들어서 '국회활동은 보장하되 옥외집회를 비롯한 모든 정치활동은 허가하 지않겠습니다'라고 했다.
 
 김치열 장관은 거듭 국회의 활동이 보장되어야 계엄령에 대한 사후 인준이 이루어질 수 있다는 점을 강조했다.
 
 정승화 총장은 김장관이 '혁명적 성격의 계엄이 아님'을 강조하고 싶어하는 것으로 이해하였다. 정승화 총장은 유신체제의 심장이 멈춘지 불과 8시간이 흐른 시점에서 이미 권력의 중심이 자신을 포함한 군부로 옮겨오고 있음을 느끼고 있었다.
 
 그는 회고록에서 '나는 일체 더 이상의 발언을 하지 않고 묵묵히 국무위원들의 뒤에 앉아 그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 듣고만 있었다. 내 가 나서면 장관들이 군을 의식하고 발언을 제대로 못하는 등 위축될 염려 가 있었기 때문이다'고 썼다.
 
 국무회의는 새벽3시가 넘어서 끝이 났다. 장관들은 뿔뿔이 흩어지 기 시작했다. 발표를 책임진 김성진 문공부장관은 차를 타고도 가만히 있었다.
 
 운전기사가 '어디로 갈까요'라고 물을 때까지.
 
 허무감과 긴장… 김 장관 스스로도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르는 것처 럼 느껴졌다.
 
 '중앙청으로 가자' 중앙청 앞에서 내리니 새벽 공기가 유달리 썰렁 하게 감촉되었다. 그 길로 기자실로 갔다. 아무도 없었다. 그 위 층에 있는 국무회의실로 걸어 올라가 아무 의자에나 털썩 주저앉았다. 아 무 생각도 들지 않았다. 그런데 얼굴에서는 물줄기가 흘러내리고 있었다.
 
 박대통령이란 사람이 참으로 가엾게 느껴졌다.
 
 '한 평생을 궂은 일로 노심초사만 하고 보답은커녕 비판과 비난만 받았던 인생이 아닌가. 시골 뼈대 있는 집안의 엄한 가부장처럼 국민 을 대했건만 아비의 속마음을 모르는 자식들에게 배은망덕한 꼴을 당하고 말았구나.'.
 
 김장관은 청와대 대변인 시절 언젠가 대통령의 치사를 초잡을때 '나는 이미 이 나라 민주제단에 나의 몸과 마음을 바친 지 오래다'고 썼 다가 표현이 좀 지나치다고 생각되어 빼버린 일이 있었다.
 
 그 생각과 함께 전날 당진 송신소 중계소 준공식장에서 보았던 대 통령의 불길한 모습이 떠올랐다. 이런저런 상념에 잠겨 있는데 통행금지 해제시간이 가까워오고 있었다.
 
 급히 기자실로 내려갔다. 아무도 없었다. 벽에 걸린 흑판위에 발표내용을 쓰기 시작했다.
 
 '임시국무회의 발표. 79년10월26일23시에 긴급히 소집된 임시국무 회의는 대통령의 유고.'.
 
 이렇게 써내려가는 김장관의 등 뒤에서 인기척이 났다. 돌아보니 조선일보 정치부 김명규기자가 뛰어들어오고 있었다. 이때가 새벽4시 10분. 몇 마디 이야기하고 있는데 기자들이 순식간에 모여들었다.
 
 김 장관은 흑판에 써내려가던 발표문을 기자들 앞에서 읽어내려갔 다. 발표도중에 눈물을 보인 김장관은 부끄러운 생각이 들어 발표를 끝 내자 곧장 기자실을 빠져나와서 승용차에 올랐다.
 
 갑자기 집의 식구들이 보고싶어졌다. 집에서 찬물을 한 잔 들이킨 김장관은 총리공관으로 달려갔다.
 
 최규하 대통령권한대행이 정일권 백두진 백남억 김종필 박준규 등 여당 원로들에게 대통령의 서거를 알리고 있었다. 자세한 설명은 김계원 실장더러 하도록 했다. 김실장은 아직 마음의 안정을 찾지 못한듯 앞뒤 가 가끔 어긋나는 말을 했다.
 
 '김재규가 차지철을 겨누고 쏘았는데 그것이….' 정일권 전 국회의 장이 '그러면 각하께서 유탄에 맞았단 뜻인가'하고 묻기도 했다.
 
 설명이 끝나자 그들은 모두 고개를 떨구고 총총히 공관을 떠났다.
 
 그 모습을 바라보면서 김성진은 이런 생각에 빠졌다는 것이다.
 
 '혁명정치가 박정희의 시대는 이미 끝났구나. 그의 정치적 유지를 이어갈 사람은 저 속에는 없다. 먼 훗날에 소박했으나마 그가 가졌던 민족주의 정신을 이어받을 사람들은 반드시 나올 것이다'.
 
 [조갑제 출판국부국장·이동욱 월간조선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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